주간동아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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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오늘 점심때 마신 1500원짜리 커피의 진실

양과 맛은 부족해도 착한 가격에 소비자 반색…제 살 깎기 경쟁에 점주들 울상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6-08-29 16: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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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사람들에게 ‘식사 후 커피’는 일종의 공식과도 같다. 국내 커피 수요가 급증하면서 골목까지 카페가 들어와 있지만 창업시장에서 커피전문점은 여전히 인기다. 수요 대비 공급이 많아지면서 언제부터인가 오피스 상권을 중심으로 1500원짜리 커피(이하 아메리카노 기준)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4000원대 프리미엄 프랜차이즈점 커피에 비하면 경기불황으로 주머니가 가벼워진 직장인에게는 반가운 일. 취향을 우선시하는 커피 마니아가 아닌 이상 직장인 대부분은 휴식을 취할 요량으로 카페를 찾기 때문에 2잔에 3000원인 저가 커피 쪽으로 발길이 갈 수밖에 없다.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서 저가 커피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 씨는 “점심시간에 손님이 몰리지만, 담배 한 대 피우러 나왔다가 부담 없이 커피를 마시는 이들도 적잖다”고 말했다.

    저가 커피의 품질은 어떨까. 커피 가격을 좌우하는 것은 원두의 질과 커피 농도다. 저가 커피라 해도 임대료, 인건비, 기계비 등은 비슷하기 때문에 이윤을 남기려면 가격이 싼 원두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아메리카노 한 잔에 에스프레소 한 샷 또는 반 샷만 넣는 방법으로 단가를 낮춘다(프리미엄 프랜차이즈점 커피는 2샷이 기본). 그래서 저가 커피는 묽거나 순한 맛인 경우가 많다.  

    커피 추출에 들어가는 물은 저가 커피 전문점이라도 정수기와 온수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김씨에 따르면 “수돗물을 사용하면 맛이 확 달라져 장사하기 어렵다. 저가라도 퀄리티 유지에 신경을 써야 한다. 또 구청에서 수시로 위생 점검을 나오기 때문에 카페가 갖춰야 할 기본 사항은 다 갖췄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저가경쟁 못 이겨 줄줄이 문 닫는 카페

    맛이나 취향보다 저렴한 가격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저가 커피를 앞세운 프랜차이즈점도 증가하고 있다. 원조는 ‘1500원 커피 시대’를 처음으로 연 더본아메리카(백종원 대표이사)의 ‘빽다방’이다. 빽다방의 등장으로 그전까지 최소 2500원대를 유지하던 카페들이 줄줄이 가격을 낮췄고, 급기야 1000원짜리 커피까지 등장했다. 게다가 저가 음료가 유행하면서 1500~2000원 저가 주스전문점도 우후죽순으로 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등록된 저가 주스 브랜드 수는 12개로 전국에 점포 수가 1만 개가 넘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가 커피전문점 옆에 저가 주스전문점이 나란히 있는 광경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서울 충정로 인근 회사에서 근무하는  박모 씨는 “요즘같이 더운 날씨에는 비타민과 수분을 보충한다는 생각으로 커피보다 저가 주스를 많이 마신다. 엑스라지 사이즈 주스를 2000원이면 마실 수 있으니 가격 면에서도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가격이 저렴해 행복한 소비자와 달리 카페 창업자들의 한숨은 깊어 간다. 저가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다 보니 터무니없이 낮은 단가에 인건비는커녕 임대료도 건지지 못해 결국 문을 닫는 가게가 속출하고 있는 것.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커피전문점을 포함한 음식점 업종의 1년 생존율은 55.6%로 1년에 두 곳 중 한 곳이 문을 닫았다. 실제로 저가 커피전문점이라고 창업비용이 적게 드는 것도 아니다. 보통 39㎡(약 12평)를 기준으로 했을 때 창업보증금과 월세 등을 제외하고도 1억 원이 넘게 든다. 박리다매 특성상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이 유리하기 때문에 그만큼 임대료도 올라간다.

    이러한 구조는 개인 브랜드 카페라고 다르지 않다. 인천 송도에서 카페를 운영하다 얼마 전 문을 닫았다는 김모 씨는 “임대료를 줄이려면 매장 규모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처음부터 테이크아웃 전문점을 내걸고 9.9㎡(약 3평) 정도 규모로 운영하길 원하는 사람이 많다. 에스프레소 머신 구매에만 보통 200만~500만 원이 든다”고 말했다.

    박리다매를 넘어 매장 자체를 여러 개 운영하는 창업자도 생겨나고 있다. 3년째 서울 중구에서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하는 하모 씨는 얼마 전 관악구 신도림 근처 주택가에 커피전문점 하나를 더 냈다. 장사가 잘돼 사업을 확장하나 싶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기존 카페로는 이윤이 남지 않아 매장을 추가한 것. 하씨에 따르면 서울 중구 소재 대기업 빌딩 지하에 있는 카페는 건물 밖 손님의 유입은 적었지만 입주 회사 직원들이 수시로 이용한 덕에 그럭저럭 장사가 잘됐고 커피 값도 오랫동안 2500원을 유지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인근 카페에서 ‘900원짜리’ 초저가 커피를 내놓으면서 주변 상권이 흔들렸다. 고객을 빼앗길까 봐 주변 카페들도 덩달아 1000원, 1500원으로 가격을 낮췄다. 프랜차이즈점이라 주인 마음대로 가격을 내릴 수도 없었던 하씨는 차선책으로 새로운 매장을 여는 방법을 택했는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새 매장을 정하고 부동산 계약을 할 때만 해도 인근에 2~3개에 불과하던 커피전문점이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한 한 달 새 6개로 늘어났고 어김없이 1500원짜리 커피까지 등장한 것.

    하씨는 “아직 저가 커피전문점이 많이 들어서지 않은 곳을 골라 시작했는데 카페 문을 연 지 한 달도 안 돼 이 근방에서도 1500원짜리 커피 열풍이 불고 있다. 카페 주인들끼리 서로 눈치를 보느라 섣불리 가격을 올릴 수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하씨는 버틸 때까지 버티자는 심정으로 아메리카노 2500원을 고수하고 있다. 그 대신 수시로 ‘2+1’ 식의 가격 인하 이벤트를 열어 고객을 유인한다.



    커피는 미끼상품, 다양한 메뉴로 승부해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국 저가 커피시장은 포화상태를 넘어 ‘제 살 깎아 먹기 식’ 경쟁에 돌입했다는 목소리가 높다. 인터넷 블로그에서 ‘창업통’이란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김상훈 스타트비즈니스 소장은 올해 창업시장에서 실패율이 가장 높은 아이템으로 저가 커피 전문점을 꼽았다. 김 소장은 “1000원짜리 커피를 100잔 팔아봤자 얼마가 남겠나. 이건 초등학생이 계산해도 답이 나온다. 일부 잘되는 곳도 분명 있지만 모두가 그들처럼 장사할 수는 없다”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카페 창업에 몰리는 이유는 ‘장사하기 쉽다’는 생각 때문이다. 김 소장은 “카페는 일반 식당업과 비교해 매장 자체가 깔끔하고, 특별히 조리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몸이 편한 것을 떠나 돈을 벌 수 있는지를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 남들이 파는 커피와 똑같은 것을 판다는 생각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재 커피전문점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김 소장은 저가 커피전문점이라도 객단가(인당 평균 매입액)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저가 커피는 유인책 정도로 여기고 일단 매장에 들어온 고객이 커피 말고 다른 아이템을 선택하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것. 결국 얼마나 싸게 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매력적인 물건을 파느냐가 매출을 좌우하는 주요 요소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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