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의 말과 생각, 감정과 행동은 뇌과학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우리를 움직이는 뇌. 강석기 칼럼니스트가 최신 연구와 일상 사례를 바탕으로 뇌가 만들어내는 마음의 비밀을 풀어준다.

10월 1일 세상을 떠난 제인 구달 박사. GETTYIMAGES
침팬지-인간 유사성 밝힌 제인 구달
구달 박사의 삶은 드라마틱하다. 1960년 26세 나이에 아프리카 탄자니아 밀림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야생 침팬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발견을 잇달아 보고하며 ‘인간’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구달 박사가 야생 침팬지 현장 연구를 시작했을 무렵만 해도 인간은 여느 동물들과 뚜렷이 다른 존재로 인식됐다. 다윈 진화론이 정설이 돼 창조론이 설 자리는 없었지만, 당시만 해도 인간 계열은 과거 어느 시점에 비인간 유인원 계열과 갈라진 뒤 독자적 진화를 거듭해 사실상 새롭게 창조된 존재로 여겨졌다. 인간만이 지닌 특징으로 직립 보행과 도구 사용, 언어 등이 거론됐고 그 배경에는 커진 뇌 용량이 있었다.
화석 증거에 따르면 인간 계열은 진화 과정에서 뇌 부피가 3배로 팽창했으나, 침팬지나 고릴라 같은 현생 유인원은 여전히 공통 조상과 비슷한 크기에 머물렀다. 추가로 늘어난 뇌 용량에서 인간만의 특성이 생겨난 셈이다. 그런데 구달 박사는 현장 연구 3년 만에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다듬은 나뭇가지를 흰개미집에 넣었다가 꺼내 달라붙은 흰개미를 핱아 먹었고, 멧돼지 새끼를 사냥해 잡아먹었다). 그때까지 침팬지는 기껏해야 벌레를 먹는 채식 동물로 알려져 있었다.
침팬지와 인간의 유사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침팬지 두 무리가 전쟁을 했으며(반복적으로 상대 구성원을 습격해 살해했으니 단순 싸움이 아니다), 편을 먹고 우두머리 수컷 자리(권력)를 쟁취했다. 게놈 분석 결과도 둘의 유사성을 뒷받침했다. 유인원 진화 역사에서 가장 먼저 갈라져 나온 것으로 인식되던 인간이 실은 약 700만 년 전 침팬지와 공통 조상에서 갈라진 것으로 드러났다. 오랑우탄, 고릴라 계열은 그것보다 일찍 공통 조상에서 갈라졌다. 즉 침팬지는 고릴라보다 인간에 가까운 종인 것이다.
그럼에도 언어는 여전히 다른 유인원과 확연히 구분되는 인간만의 특징으로 남는 듯했다. 발성(vocalization)에 기반한 야생 침팬지의 의사소통 방법에서 발화(speech·말)로 이뤄진 인간의 소통 방식이 진화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 언어는 구문을 발명했다는 점에서 여느 동물들과 차원이 다른 경지에 있다. 구문이란 단어를 구와 문장으로 조합해 사실상 무한한 의미를 만드는 과정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뇌 구조를 좀 더 정밀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서 인간 언어의 뇌 회로가 영장류는 물론, 포유류의 기본 구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인간의 언어 회로는 뇌 부피가 3배로 늘어날 때 새로 생겨난 게 아니라 기존 구조를 바탕으로 추가, 변경을 거쳐 재구축된 셈이다.
뇌 부피 커져 언어 능력 생긴 것 아냐
포유류는 발성 능력이 있어서 울음, 포효, 부름(호출) 등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다. 여기에는 성문(vocal tract), 즉 후두(성대)에서 인두, 구강, 비강에 이르는 조직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중뇌와 변연계 영역(일차 발성 운동 네트워크라고 부른다)이 관여한다. 그런데 영장류 계열이 진화함에 따라 대뇌피질이 커지면서 왼쪽 전두엽의 특정 영역(브로카 영역)이 언어에 특화됐고, 이에 좀 더 정교하고 복잡한 발성이 가능해졌다. 이것을 자발적 조음 운동 네트워크라고 부른다. 대뇌피질이 중뇌와 변연계 발성 조절 영역에 관여하며 언어 회로가 다듬어진 것이다.이후 인간으로 진화하면서 자발적 조음 운동 네트워크가 더 커지고 정교해졌으며, 특히 이곳의 운동 피질(M1)과 중뇌 의문핵(ambigual nucleus) 사이에 새로운 연결이 형성되면서 인간이 발화 능력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런 설명 역시 인간의 언어 진화를 설명하는 여러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로, 아직 널리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한편 올해 4월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침팬지속 중 하나인 보노보 또한 인간처럼 구문을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의 관찰 논문이 실렸다. 멜리사 베르테 스위스 취리히대 동물 의사소통 연구원은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 코콜로포리 보호구역에서 야생 보노보 무리를 8개월 동안 추적했다. 베르테는 60여 년 전 구달 박사가 그랬듯이, 보노보 무리가 나무 위 잠자리를 떠나기 전인 새벽 4시쯤 현장을 찾아가 하루 종일 이들을 쫓아다니며 발성을 녹음하고 그 맥락을 기록했다. 녹음된 발성의 종류는 약 700가지로 맥락에 따라 두 소리를 합쳐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최근 여러 과학 분야에서 인공지능(AI)을 도입해 데이터 더미에서 패턴을 찾는 데 성공하고 있다. 보노보 사례를 비롯해 다른 많은 야생 동물의 발성 데이터와 맥락 데이터를 AI가 분석한다면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복잡한 의사소통의 실체가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구문 생성이 인간만의 고유한 언어 능력이라는 정의도 머지않아 폐기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강석기 칼럼니스트는… 서울대 화학과 및 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 연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를 거쳐 2012년부터 과학칼럼니스트이자 프리랜서 작가(대표 저서 ‘식물은 어떻게 작물이 되었나’)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