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도 극찬한 가슴 설레는 도시, 파리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는 행운이 그대에게 따라준다면, 파리는 움직이는 축제처럼 평생 당신 곁에 머물 것이다. 내게 파리가 그랬던 것처럼.”(어니스트 헤밍웨이)

195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가 7년간의 파리 생활을 추억하며 쓴 책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그는 22세 때인 1921년 캐나다 ‘토론토 스타’의 해외특파원 자격으로 첫 번째 아내 해들리와 함께 파리로 이주했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 같은 많은 역작을 낸 대문호이지만, 그의 22세는 무척이나 어두웠다. 당시 무명작가였던 그는 찢어지게 가난했다. 돈이 없어 점심식사를 거르기 일쑤였고, 파리지앵들이 햇볕을 즐기려고 나오는 ‘뤽상부르 공원’에서 살찐 비둘기를 몰래 잡아 하루 양식을 해결하기도 했다.

파리 랜드마크 에펠탑. [GETTYIMAGES]

여행 로망 실현 가능한 파리

초라하기 그지없던 시절이지만 헤밍웨이는 ‘축제(Feast)’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파리에서의 시간들이 행복했다”고 고백한다. 파리의 어떤 매력 때문이었을까. 작가 수업을 하는 시절이었기에 그는 작품을 구상할 때면 센강변을 하염없이 걸었다. 그러다 파리의 양대 문학예술 카페인 ‘레 되 마고’나 ‘드 플로르’를 작업실 삼아 글을 썼다. 신진·무명작가들의 대모 역할을 하던 미국 소설가 거트루드 스타인을 필두로 F. 스콧 피츠제럴드, 이디스 훠턴, 에즈라 파운드, 헨리 밀러, 프랑수아 트뤼포, 윌리엄 포크너 등과 교류하며 문학적 자양분도 쌓았다. 때로는 ‘뤽상부르 미술관’에서 마네, 모네, 세잔의 그림을 마음껏 감상했다. 아마도 이런 시간들이 그에게 파리를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하게 하진 않았을까.

헤밍웨이가 파리에서 보낸 시간을 축제로 기억하는 건 이 도시를 한 번이라도 다녀와 본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일 테다. 이상하게도 파리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렌다. 도시 곳곳에는 사랑과 열정, 예술과 낭만의 매력들이 넘쳐난다. 살다 보면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계획 없이 불쑥 떠난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설레는 자유를 오롯이 누리고 싶을 때도 있다. 눈앞에 펼쳐진 이국적 풍경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과 기쁨이 몰려오기도 한다. 처음 보는 이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낯선 이와 어느새 친해져 일상을 함께 나누는 것도 여행지에서는 가능하다. 이처럼 여행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모든 로망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파리다. 자, 이제 세상 사람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예술과 낭만의 도시 파리로 나만의 축제를 찾아 떠나보자.

먼저 파리를 상징하는 대표 랜드마크 ‘에펠탑’으로 가보자. 에펠탑은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파리만국박람회’의 출입 관문으로 교량 기술자 귀스타브 에펠(1832~1932)이 독특하고 파격적인 철골로 디자인해 세웠다. 높이 324m, 무게 1만100t에 육박하는 이 거대한 철탑은 1930년 미국 뉴욕 크라이슬러 빌딩이 세워지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죽기 전 꼭 봐야 할 아름다운 건축물, 매년 700만 명 이상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명소,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세계 1위…. 에펠탑을 수식하는 문장은 하나같이 찬란하고 화려하다. 그러나 에펠탑의 첫 시작은 비참했다. 파리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흉물스러운 철골 조형물은 절대 공존할 수 없다며 극심한 반대 여론에 부딪쳤다. 급기야 1887년 당시 가장 유력한 일간지였던 ‘르탕’에 대문호 에밀 졸라, 작곡가 샤를 구노, 건축가 가르니에 등 예술인 46명이 서명한 에펠탑 반대 탄원서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수많은 논란과 역경이 있었지만, 에펠탑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머물며 전 세계인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프랑스 상징물이 됐다.

도보 여행의 묘미 느낄 수 있어

파리는 걸어서 다녀야 제맛인 도시다. 지하철과 버스가 관광지 구석구석을 촘촘히 연결하고 있지만, 웬만하면 도보 이동을 고려한 코스를 짜길 추천한다. 걸어야만 보이는 매력이 가득하니까. 에펠탑에서 개선문까지도 30분이 채 안 걸리니 이왕이면 걸어서 이동하자. 1900년대로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한 풍경들을 배경 삼아 걷다 보면 금세 개선문에 도착한다(인근 메트로 역은 ‘조르주 생크(George V)역’이다). 높이가 51m, 폭이 45m나 되는 웅장한 개선문은 로마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따라서 지은 것이다. 1806년 나폴레옹 황제의 지시로 세워진 개선문은 루브르궁, 콩코르드 광장, 샹젤리제, 라 데팡스 등 8㎞ 구간을 잇는 직선대로인 그랑닥스(Grand Axis: 파리시 도시계획의 기본 축)의 중심에 있다. 개선문이 세워진 샤를 드골 광장(옛 에투알 광장)을 축으로 12개 거리가 갈라져 위에서 보면 마치 ‘별(Etoile)’ 모양과 같다고 해 에투알 개선문으로도 불린다. 개선문은 해 지기 직전 전망대에 오르면 인생 일몰을 볼 수 있고, 해가 완전히 진 후에는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개 도로에서 나오는 불빛과 에펠탑의 야경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인생 일몰을 볼 수 있는 개선문. [박진희 제공]

개선문에서 ‘샹젤리제 거리’까지도 산책 겸 걸어서 이동하자. 샹젤리제 거리는 개선문에서부터 프랑스혁명의 역사적 장소인 ‘콩코드 광장’까지 약 2㎞에 걸쳐 있는 대로다. 왕복 10차선 도로 양쪽으로는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는 ‘엘리제궁’을 비롯해 레스토랑, 극장, 카페, 기념품점, 유명 명품점 등이 몰려 있다. 샹젤리제는 파리에서 가장 넓고 화려한 거리이기에 이 길을 걷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여유가 있다면 반나절 정도 샹젤리제 거리에 투자해도 좋다. 골목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사진을 찍고,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거리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만 봐도 좋은 추억이 된다.

센강을 따라 거닐다 보면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오랑주리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을 순서대로 만나게 된다. 프랑스 근대 회화를 주로 전시하는 오랑주리 미술관은 한 전시관의 모든 벽면에 걸쳐 있는 모네의 ‘수련’ 작품이 가장 유명하고, 세계 3대 박물관인 루브르 박물관은 규모는 물론 소장 작품 수가 38만 점에 달할 정도로 광대하기에 방문 전 꼭 보고 싶은 작품들을 미리 결정한 뒤 동선을 파악해놓는 것이 좋다. 인상파 작가들의 걸작을 만나볼 수 있는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밀레의 ‘만종’과 ‘이삭줍기’,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등 교과서 속 명화들을 만날 수 있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루브르 박물관. [GETTYIMAGES]

‘퐁네프 다리’에선 야경 감상을

오랜 시간 버텨온 역사적 건축물들과 새롭게 지어진 모던한 건물들을 구경 삼아 걷다 보면 이내 마지막 종착지인 파리의 심장 ‘노트르담 대성당’에 도착한다. ‘시테섬’ 동쪽에 자리한 노트르담 대성당은 중세 건축 고딕 양식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서쪽 광장은 로맨스 영화의 대명사 ‘비포 선셋’과 ‘미드나잇 인 파리’의 배경이 된 명소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히틀러가 노트르담을 폭파하라고 명령했는데 스위치를 누를 병사가 노트르담의 아름다움에 압도돼 폭파 스위치를 누르지 못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이처럼 전 세계인으로부터 사랑받고 인류 모두의 유산으로 존경받던 노트르담 대성당이 큰 화재에 휩싸인 사건이 있었다. 2019년 4월 15일 보수공사 도중 발생한 불로 93ｍ 높이 첨탑이 무너지고 목조 지붕 대부분이 소실됐다. 그러나 성당의 기본 구조는 남아 있어 화재 이전 모습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오랜 기간 복원 작업을 거쳐 내년 12월 다시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화재 아픔을 안고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위로차 방문하는 일정도 꼭 챙겨서 넣자.

중세 건축 고딕 양식의 걸작으로 꼽히는 노트르담 대성당. [GETTYIMAGES]

노트르담 대성당을 지나 강변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한 ‘생트 샤펠’에 도착한다. 성스러운 예배당이라는 의미로, 루이 9세가 십자군전쟁 때 비잔틴제국에서 가져온 예수의 가시관을 보관하려고 지은 성당이다. 이곳을 나와 시테섬 명소 ‘도핀 광장’을 지나면 이름마저 낭만적인 ‘퐁네프 다리’가 보인다. 센강을 가로지르는 퐁네프 다리의 야경은 놓쳐서는 안 될 순간이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퐁네프를 건너면 영화 ‘비포 선셋’에서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재회하는 장면을 촬영한 책방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가 나온다. 지금도 책방 영업을 하는 곳이니 에티켓을 지키며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인생 책도 구매해보자.

일상의 여운과 로맨틱한 낭만이 가득한 도시 파리. 어느 곳 하나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을 수 없는 특유의 감성과 함께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발산하는 파리는 우리의 로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삶이 축제임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파리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_{재이 여행작가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 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