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2월 5일 장쩌민 전 주석의 유해를 바라보고 있다. [AP뉴시스]
중국 세계무대 진출시킨 장쩌민 전 주석
중국 정부가 방역 완화 조치를 발표한 12월 7일 시민들이 베이징 거리를 걷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장 전 주석은 톈안먼 민주화 시위 주동자들을 대대적으로 체포하고, 종교 단체인 파룬궁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며, 티베트 독립운동을 강력하게 진압하는 등 인권 유린을 자행해 국제사회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장 전 주석은 퇴임 후에도 중국공산당 파벌 중 하나인 ‘상하이방’(上海幇: 상하이 출신 정재계 파벌) 원로로서 막후 영향력을 행사했다. 후임자인 후진타오 전 주석을 ‘허수아비’로 만들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장 전 주석의 막강하던 힘은 2013년 ‘태자당’(太子黨: 혁명 원로들의 후손 파벌) 출신인 시진핑 주석 취임 이후 소멸되기 시작했다. 시 주석 집권 5년 만에 상하이방 인사 300여 명이 부패 혐의 등으로 숙청됐다. 장 전 주석이 마지막으로 공개석상에 등장한 것은 2019년 10월 1일 건국 70주년 기념식에서였다.
중국에서 장 전 주석 애도 물결이 이는 것은 시 주석의 독재 체제에 대한 불만이 담긴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장 전 주석도 재임 중 권위주의 통치를 했지만 시 주석보다 덜 독재적이었기 때문이다. 홍콩 일간지 ‘더 스탠더드’는 “중국 국민의 상당수는 장 전 주석의 죽음을 시 주석에 대한 은근한 비판 기회로 삼고 있다”며 “이는 시 주석의 철권통치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하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국 국민은 대부분 시 주석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고강도 봉쇄 조치에 상당한 거부감을 보여왔다. 제로 코로나 정책은 중국 정부가 14억 명 인구 중 단 1명의 코로나19 확진자도 발생하지 않게 하겠다는 목표로 추진해온 고강도 방역조치다. 중국 정부는 특정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 아예 그 지역을 봉쇄하고 주민 출입을 통제한 채 전 주민을 상대로 확진자가 1명도 나오지 않을 때까지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한 후 봉쇄를 해제하는 방역조치를 시행해왔다. 중국 정부가 지금까지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오미크론 변이가 유행하면서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도 시험대에 올랐다. 각국은 기존 코로나19보다 전염성은 몇 배 강하지만 중증 위험도는 약한 오미크론 변이를 막기 어려워지자 ‘위드(with) 코로나’ 정책을 추진해 단계적으로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 반면 중국 정부는 그동안 수도 베이징을 비롯해 상하이 등 수십 개 도시를 봉쇄해왔다. 이 때문에 엄청난 경제적 피해는 물론, 인권 침해 등 각종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다.
톈안먼 민주화 시위 이후 첫 동시다발 시위
중국 상하이 주민들이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봉쇄 조치를 반대하는 ‘백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KYODO]
11월 26일부터 30일까지 상하이는 물론, 수도 베이징과 광저우, 충칭, 우한, 항저우 등 최소 24개 도시에서 봉쇄 반대 시위가 발생했다. 특히 상하이 우루무치중루(中路)에서 주민 수백, 수천 명이 몰려나와 우루무치 참사에 항의했다. 상하이 우루무치중루는 우루무치에서 따온 이름으로, 소수민족인 위구르인이 모여 사는 지역이다. 톈안먼 민주화 시위 이후 중국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위가 발생한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 자발적으로 모인 주민들 중 일부가 외치는 구호 수위가 높아 충격을 던졌다. 일부 주민은 “공산당은 물러나라(共産黨 下臺)” “시진핑은 물러나라(習近平 下臺)” 같은 구호를 외쳤다. 중국 정부는 공안과 무장 경찰까지 동원해 봉쇄 반대를 외치는 시위대를 강제해산하고 주동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체포했다.
그러자 주민들은 20, 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백지(白紙)’를 손에 들고 봉쇄 조치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른바 ‘백지 시위’다. 아무런 구호도 적히지 않은 A4 용지 크기의 백지는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검열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공개적인 비판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중국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는 국민들이 항의 의미로 백지를 든 것이다. 백지 시위는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통과를 반대하는 시위에서도 등장한 바 있다. 당시 홍콩 국가보안법에 따라 집회와 시위가 금지되고, 경찰이 시위대를 폭력으로 진압하자 홍콩 시민들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항의하는 의미로 백지를 들었다. 게다가 중국 대학생 등 젊은 층은 인터넷 우회 접속 프로그램인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해 SNS로 시위 상황을 퍼 날랐다. 중국 공안은 VPN이나 텔레그램, 인스타그램 등 외국 소셜미디어 애플리케이션이 깔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주민들의 휴대전화를 검사하지만 백지 시위를 막지는 못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장 전 주석 사망을 계기로 백지 시위가 더 확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시 주석의 정적이면서 개방적이고 소탈했던 장 전 주석을 향한 대대적인 추모 바람이 현 체제에 대한 불만과 겹쳐 민심을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기관지 ‘학습시보’ 부편집인을 역임한 덩위원 평론가는 “제로 코로나 정책을 지금처럼 계속한다면 국민 봉기가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톈안먼 사태도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사망으로 촉발했다. 후 전 총서기는 1982년 공산당 총서기직에 올라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꼽혔지만 1986년 발생한 학생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1987년 실각했다. 이후 후 전 총서기가 1989년 4월 사망하자, 전국에서 추모 분위기가 일기 시작해 같은 해 6월 톈안먼 민주화 시위가 폭발하는 도화선이 됐다.
중국 정부는 제2의 톈안먼 사태를 막기 위해 12월 6일 장 전 주석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르는 등 시위로 격화된 분위기를 가라앉히려 애쓰고 있다. 특히 중국 공안과 사법기관을 지휘하는 공산당 정법위원회는 인터넷 검열을 대폭 강화하라고 지시하는 등 온라인 추모 열기가 오프라인 추도 집회와 반정부 시위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자 총력전에 나섰다.
中 내년 2월 전면 개방 전망
또한 시 주석과 중국 정부가 지난 3년간 금과옥조로 여겨오던 제로 코로나 정책을 대폭 완화했다. 중국 정부는 12월 7일 10개 방역 완화 조치를 발표했다. 그 내용을 보면 ‘상시 PCR 검사’와 코로나19 확산 지역에서 강제 실시하던 ‘전수 PCR 검사’를 폐지했다. 무증상·경증 확진자는 ‘자가 격리’한다. 주거지 장기 봉쇄 조치도 없앴다. 코로나19 고위험 지역이라도 닷새 연속 확진자가 나오지 않으면 즉시 봉쇄 조치를 해제하기로 했다. 지역 간 이동 때 PCR 검사 의무도 폐지했다.조업·생산·영업 중단도 하지 않기로 했다. 홍콩 일간지 ‘밍바오’는 “중국 정부가 최대 명절인 춘제(음력설)가 지나고 내년 2월쯤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기하고 전면 개방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시 주석 입장에서 볼 때 이 조치들은 자신의 정책 실패로 간주될 수 있기에 상당한 수모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시 주석은 성난 민심에 ‘백기’를 든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