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9월 28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헌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 사건 심문을 마친 뒤 청사를 나서며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동아DB]
친윤 대 비윤 6 대 4
윤 대통령과 윤핵관의 푸대접은 이어질 전망이다. 윤 대통령이 이 전 대표를 내각으로 부르지 않을 것이고, 윤핵관이 차기 총선에서 공천을 줄 리도 만무하다. 이 전 대표의 겨울이 길어질 수 있지만 최근 흐름은 결코 불리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하락 후 장기간 정체 상태다. 차기 전당대회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국민의힘 차기 지도부의 주된 역할은 2024년 총선 승리다. 윤 대통령과 윤핵관은 윤핵관 지도부를 구성해 ‘윤석열 마케팅’으로 이기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 테다.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높아야 성사 가능한 시나리오다. 최소한 윤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 궤도에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라도 공유돼야 한다. 지지율 회복이 일어나지 않으면 윤 대통령과 윤핵관의 국민의힘에 대한 통제력은 이듬해 총선까지 ‘6개월 천하’로 끝날 수 있다.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만 놓고 볼 때 친윤석열(친윤)계와 비윤석열(비윤)계의 세력 구도는 6 대 4로 추정된다. 9월 19일 치른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윤계 주호영 의원은 61표, 비윤계 이용호 의원은 42표를 획득했기 때문이다. 윤핵관 중 윤핵관인 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주 의원을 전폭적으로 지원한 상황에서 나온 결과다. 차기 당대표 경선을 유사한 구도로 치른다면 친윤계 후보가 어렵게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구도가 급변할 여지도 있다. 윤핵관 지도부의 윤석열 마케팅으로는 차기 총선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경우다.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 정체가 차기 전당대회 때까지 이어지면 불안감이 커질 것이다. 혹여 지지율이 추가 하락하는 국면이 펼쳐진다면 친윤계 의원 중에서도 이탈자가 발생하고, 당심도 크게 요동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전 대표가 비윤계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원한다면 경선 구도 변화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이 전 대표는 책임당원이 20만 명이었을 때 대표 경선에서 승리했다. 당심이 보수 핵심 지지층 위주로 짜였을 때 당대표가 됐다는 의미다. 이 전 대표 당선 후 책임당원이 80만 명까지 급속히 늘었다 지금은 60만 명 정도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진다. 새로 가입한 책임당원 모두가 이 전 대표를 지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선 국면에서 윤 대통령을 지지하고자 입당한 이도 적잖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 전당대회 때와 비교하면 이 전 대표를 지지하는 이들의 비율이 큰 폭으로 증가했을 것으로 봐야 한다.
차기 전당대회에서 이 전 대표가 미는 후보가 대표로 당선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장 먼저 윤리위가 이 전 대표 징계에 대한 재심 절차에 들어갈 것이다. 당원권 정지 1년 6개월이라는 징계가 과도하다며 기간을 줄여주는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 연장선에서 차기 총선 공천도 보장해줄 확률이 높다. 대선 및 총선에 대한 기여도도 재평가받게 될 것이다. 윤 대통령이나 윤핵관의 눈에 들려고 애쓸 필요 없이 사실상 자력으로 구제받는 길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당시 대표(오른쪽)가 7월 4일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했다. [동아DB]
“당 떠나지 말고 차라리 접수하자”
앞선 상황이 아니더라도 이 전 대표에게 현 상황은 나쁘지 않다. 일련의 갈등을 겪는 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대척점에 서 있는 정치인으로 이미지를 확실하게 구축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높으면 최악의 상황일지 모르지만 현실은 반대다. 권불십년은커녕 ‘권불오년’이라는 말이 더 알맞은 요즘이다. 사회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정권 재창출도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대통령과 같은 정당 출신이라도 차별화를 해야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 이 점에서 이 전 대표는 범여권 대권 주자 가운데 가장 앞서 있다.이 전 대표 역시 최대의 적은 본인이다. 강점이 많은 반면 단점도 적잖다. 윤 대통령과 윤핵관이 이 전 대표를 몰아내도록 만든 대선 동안의 갈등과 관련해서도 이 전 대표의 책임이 없지 않다. 두 집단 간 갈등이 없었다면 비교적 여유 있게 대선에서 승리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는 실정이다. 최근 벌어진 극한 갈등 과정에서도 이 전 대표가 정치적 결단을 내릴 기회가 많았다. 윤석열 정부도 살리고 본인도 살 수 있는 길도 있었다.
“어느 누구도 탈당하지 말고, 각자 위치에서 勿令妄動 靜重如山(물령망동 정중여산).” 이 전 대표는 10월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순신 장군의 말까지 인용하며 지지자들에게 탈당 금지 권고를 했다. 본인을 지지하는 책임당원들에게 “당을 떠나지 말고 차라리 접수하자”고 호소한 것이다. 이 전 대표 입장에서는 책임당원들의 일치단결된 행동이 필요할 것이다. 이 전 대표는 그들의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당대표 시절 정치력과 관련해 긍정평가와 부정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그의 정치력이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