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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직장인 A씨는 현대해상 실손보험료 3월분을 현대카드로 내려고 총 닷새 동안 담당 부서에 20여 차례 전화를 걸었다. 한 번도 담당자와 통화하지 못했고, 보험료 ‘미납’ 위기에 처했다. 결국 본사 대표번호로 전화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전화를 몇 차례 돌리며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한 뒤에야 권한이 있는 담당자를 연결받아 “이번 달 보험료를 카드 결제해달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낸 현대해상 2021년 3월 보험료. A씨는 우여곡절 끝에 보험료를 결제한 뒤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짓’을 다음 달에 또 해야 해?
카드 결제가 되긴 하는데…
현대해상은 홈페이지에 신용카드 정보를 등록할 수 있지만, 실제 결제는 매달 각 지점에 직접 전화를 걸어야 가능하다. [현대해상 홈페이지]
현대해상은 홈페이지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등을 통해 보험료를 카드로 납부할 수 있다고 안내한다. 인터넷창구-장기보험계약관리-신용카드 등록/변경/삭제 메뉴를 통해 카드 정보를 입력하는 것까지는 가능하다. 하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담당 설계사나 지점에 전화해야 카드 결제가 이뤄진다는 안내가 나온다. 카드 등록은 할 수 있지만 결제는 매달 담당 설계사가 해야 하는 구조다. 또한 카드 결제가 이뤄지더라도 기존에 신청한 현금 자동이체는 스마트폰 앱에서 수동으로 해지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보험료가 중복으로 청구될 수 있다.
답답하지만 누구도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고, 현대해상 관계자들은 “우리도 소비자 불편이 있다는 걸 안다. 송구하다. 하지만…”이라며 앵무새처럼 같은 답변을 반복하니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소비자가 직접 민원을 넣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주요 커뮤니티에서는 “현대해상에서 매달 카드 결제를 할 때마다 담당 설계사나 지점에 전화하라고 해 금융감독원에 문제 제기했더니 그다음부터는 전화하지 않아도 자동이체가 되더라”는 내용이 ‘꿀팁’으로 공유된다.
여신전문금융업법 제10조에 따르면 신용카드가맹점은 카드로 거래한다는 이유로 카드 결제를 거절하거나 카드 회원을 불리하게 대우하지 못한다. 다만 현대해상 측은 그 뒤에 이어지는 ‘신용카드가맹점은 신용카드로 거래할 때마다 그 신용카드를 본인이 정당하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를 이유로 “카드 소유자 동의 없이 무단으로 카드가 결제돼 발생하는 금융 사고를 방지하고자 매월 고객 요청에 따라 계약 담당자가 카드 수납 처리를 한다”고 주장한다. 카드 결제는 이상 없이 받고 있으니 소비자가 번거롭든 말든 법이나 절차상 문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도 보험사가 보험료 카드 결제를 거부하거나 앞서 언급한 대로 카드 결제를 번거롭게 해 현금 납부를 유도하는 행위 등이 문제로 지적된 바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정문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보험업계의 보험료 카드 결제 비중은 생명보험사가 3.9%, 손해보험사가 22.7%에 그쳤다. 이 의원은 “카드 수수료와 저축성 보험의 특수성을 이유로 보험료 카드 결제를 꺼리는 보험업계 때문에 애꿎은 소비자가 피해를 보고 있다”며 “금융당국이 갈등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업권별로 보면 라이나생명이 35.1%로 카드 결제 비중이 가장 높았고 AIA생명 14.6%, 신한생명 12.0%, KB생명 10.1% 등이 뒤를 이었다. 대형 3사인 삼성생명은 0.1%에 그쳤으며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은 아예 카드 결제를 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명보험은 24개 보험사 중 18개 보험사만이 카드 결제를 받았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관련 이슈에 대해 소비자 민원을 종종 받는다”면서 “보험사가 카드 결제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기에 추가로 제재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보험료를 카드 결제하려면 매달 영업점에 전화해 카드 승인을 요청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방식이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이 짓을 100번 더?
요즘 시대에 신용카드 결재가 안 되는 상품이 있을까. 실제로 현대해상을 비롯한 일부 보험사가 보험료 카드 결제 절차를 번거롭게 해놨다. [GettyImages]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해상도 이 문제를 오래전부터 인지했다. 국회에서도 관련 논의가 여러 차례 이뤄졌지만 결과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 카드 결제를 열어놓긴 했지만, 앞으로도 카드 결제 절차를 번거롭게 만들고 부담을 줘 소비자가 현금으로 결제하도록 하겠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카드 결제가 일상화된 시대, 보험료 카드 결제 비중이 여전히 적자 정치권에서도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이정문 의원은 지난해 9월 14일 보험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보험사가 보험료를 신용카드나 직불카드, 선불카드 결제로 납부받을 수 있도록 하고, 카드로 보험료를 결제하는 보험계약자를 불리하게 대우하는 보험사에 대해 별도의 처벌 규정을 둔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20대 국회에서도 유사한 취지의 보험업법 개정안이 발의된 적이 있다는 점에서 입법이 실제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A씨가 2010년 가입한 현대해상 보험 상품은 20년 납부 100세 만기 상품이다. 올해 3월까지 납부 횟수는 125회. 남은 납부 횟수는 115회다. 앞으로 만기 때까지 최소 115개월 이상을 매달 수십 차례 전화하고 담당자와 통화하는 데 성공해야 보험료를 카드로 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A씨는 “시간도 소중하고 전화하기도 귀찮으니 포기하고 예전처럼 현금 자동이체를 해야 할까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A씨를 위한 보험사의 각성과 소비자를 위한 변화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