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명의신탁’이라는 용어를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명의를 실제 소유자 이름으로 하지 않고 다른 사람 이름을 빌려서 하는 것을 일컫는다. 실제 소유주를 신탁자, 명의상 소유주를 수탁자라고 한다. 과거 부동산 명의신탁이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때가 있었다. 요즘처럼 과정이 전산화돼 있지 않고, 탈세나 채무면탈을 위해 타인 이름으로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을 증식하던 시절 이야기다.
1995년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일명 부동산실명법)이 제정되면서 종중재산과 종교재산 등 일부를 제외하고 부동산 명의신탁은 불법행위로 규정됐다. 명의신탁한 수탁자와 신탁자 모두 처벌받을 수 있다.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처벌을 피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부동산가액의 30%를 과징금으로 내야 할 수도 있다.
예전에 산 건 괜찮을까
직장에 다니는 20, 30대가 세무조사를 받는다면 부동산구입자금 출처가 문제가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GettyImages]
이제는 경제적 공동체인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부동산 소유자 이름은 실제 소유자로 신고하고 관리해야 한다. 조정대상지역에 주택을 취득할 경우 주택취득자금 조달 및 입주계획서를 소유권 이전 전부터 작성해야 한다. 자금조달 계획이나 조달자금 지급 방식을 꼼꼼히 검토해 작성한 서류를 해당 시군구청에 제출해야 한다.
그렇다면 예전에 자식 명의로 사놓은 부동산은 괜찮을까. 흔히들 지금이 문제이지, 시간이 흐르면 괜찮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증여세 부과 제척기간은 10년이다. 제척기간은 증여 후 10년 동안 세금을 징수할 권리가 국가에 있다는 의미다. 즉 증여가 의심되는 행위를 했다면 10년은 마음이 편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증여는 무상으로 재산을 이전하는 것인데, 타인 명의로 부동산을 취득한 것 역시 취득 당시 실제 소유자로부터 자금을 증여받아 산 것으로 의심할 수 있다. 명의자의 소득신고상 능력이 안 되는 것 같은데 부동산을 취득했다면 과세 관청에서는 증여나 소득 누락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세무 조사가 나오면 자금에 대해 소명해야 한다. 이런 소명을 ‘자금출처조사’라고 한다.
직장에 잘 다니는 20, 30대가 세무조사를 받는 것은 대부분 부모가 자녀 명의로 취득한 부동산의 자금 출처가 문제인 경우다. 부모와 자식 간 자금 거래는 성인의 경우 5000만 원까지는 문제 삼지 않는다. 단, 해마다 5000만 원이 아니라 10년 동안 총 5000만 원이다. 이를 초과한 돈으로 부동산 취득자금을 조달했다면 부모로부터 빌리거나 증여받은 것으로 본다. 돈을 빌렸다면 금전소비대차계약서를 작성하고 원금 및 이자를 상환해야 실제 빌린 것으로 인정된다. 증여받았다면 증여계약서를 작성하고 증여신고까지 했어야 자금 출처를 인정해준다.
부모 단계에서 형성된 자금이 그다음 세대인 자녀들의 명의로 변경되거나 그들의 명의로 자산이 이전되는 경우 세금 이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본인의 자산 증식도 중요하고 자녀에게 이전되는 과정을 계획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한다. 자녀에게 몰래 줄 수 있는 자금은 얼마까지인지, 세무조사에 걸리지 않으려면 얼마씩 인출하면 되는지, 어느 정도 가격대의 부동산을 매입해야 문제가 되지 않는지를 말이다. 그럴 때마다 “상식적인 범위에서 생각한다면 그게 가능할까요”라고 우문현답할 수밖에 없다.
부모로부터 빌린 돈, 이자는?
그렇다면 부모로부터 빌린 자금에도 이자를 내야 할까. 자금을 준 것이 아니니 증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돈을 증여했을 때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낮은 이자율로 돈을 빌려줬을 때도 증여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특수 관계인이 아니라면 돈을 빌려줄 때 당연히 이자를 받을 것이다. 대여자와 차입자 간 사적 거래이므로 이자율은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대부에서는 법정 최고 이자율을 24%로 정해놓고 이 이상으로는 못 받게 한다. 국가에서 정해놓은 법정 이자율은 4.6%이다.2억 원을 부모로부터 빌렸을 때 이자율이 4.6%라면 이자는 연 920만 원이다. 2억 원을 무이자로 빌린다고 해도 증여세 과세 범위에 들어가지 않으므로 이자를 안 받아도 괜찮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전세자금으로 4억 원을 빌린다고 가정해보자. 신용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은행에서 빌릴 경우 이자율을 약 3%로 잡았을 때 이자는 연 1200만 원가량이 되고 월 100만 원씩 은행에 지급해야 한다.
만약 이 돈을 부모로부터 빌리면 어떻게 될까. 국세청이 정한 4억 원에 대한 법정 이자는 4.6%로 연 1840만 원이다. 은행보다 낮은 이자율로 부모와 금전소비대차계약을 작성해 2.2%를 적용한다면 연 880만 원이 이자가 될 것이다. 법정 이자인 1840만 원과 실제 지급한 880만 원의 차액이 1000만 원을 넘지 않으므로 증여세 과세 대상이 아니다. 역산해보면 은행에 3% 이자를 주는 것보다 특수관계인으로부터 이자율 2.2%로 돈을 빌리는 게 훨씬 유리하다. 다만 이것은 빌려준 자금의 법정 이자율과 실제 지급한 이자의 차액이 연 1000만 원을 넘지 않는 경우에 한한다. 빌리는 돈이 증가할수록 이자는 비과세 한도를 넘게 되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부모가 자금을 빌려줬다면 자녀가 적정 이자를 냈는지에 따라 조사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자녀가 결혼할 때 지원해주는 전세자금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부모가 자녀 몰래 사놓은 부동산도 명의신탁으로 문제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이제 더는 국세청의 레이더를 피할 편법은 없다. 탈세 방법을 찾기보다 최적화된 세금 관리 전략을 세워야 한다.
윤나겸은… 세무 전문 채널로 유명한 유튜브 ‘절세TV’ 대표 세무사. 저서로 ‘2021 세금 읽어주는 부자’, 공저로 ‘시장을 읽는 부동산 투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