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토제닉 다이어트는 체중 감량 이상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GettyImages]
2018년 미국인들이 다이어트 관련 검색어로 가장 많이 입력한 것은 ‘키토제닉 다이어트’였다. 한국에서는 ‘저탄고지 다이어트’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다이어트법이다. 처음에는 밥 안 먹고 삼겹살만 많이 먹는 다이어트처럼 잘못 알려졌다가 나중에는 키토제닉 다이어트의 주요 음료 레시피인 방탄커피가 인기를 끌면서(필자도 덕분에 유튜브 구독자가 늘었다.) 한국에서도 저변이 넓어졌다. 코스트코의 광활한 무질서를 헤매다 한국 업체에서 만든 인스턴트 방탄커피가 판매 중인 걸 목격했을 때의 놀라움과 반가움을 잊을 수가 없다.
이 정도로 널리 알려진 다이어트법이니 흔히 화제의 다이어트 법을 소개할 때처럼 이 다이어트로 살을 많이 뺐다는 유명인의 사례를 굳이 주워섬길 필요는 없겠다. 대체 그 인기의 비결은 뭘까. 이것도 그냥 몇 년 후면 잊힐 한때의 유행은 아닐까. 많은 관심을 받고 그만큼 돈이 걸린 만큼 키토제닉 다이어트에는 허와 실이 존재한다.
식욕이 억제될까
키토제닉 다이어트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살이 빠진다’는 것 외에도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건 ‘식욕이 억제된다’는 것이다. 기분만이 아니다. 2014년의 한 메타분석은 키토제닉 다이어트를 실천한 사람들이 덜 배고픔을 느끼고 더 포만감을 느꼈다고 기술했는데 이는 케토시스 덕분인 듯하다고 판단했다.케토시스란 몸이 케톤을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인체는 포도당(탄수화물)과 케톤(지방)의 두 가지 에너지원을 주로 사용한다. 우리는 포도당을 쓰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탄수화물 섭취가 줄어 포도당을 더 생산할 수 없게 되면 인체는 자연스레 다른 연료인 케톤을 쓰기 시작한다. 케톤은 식욕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케토시스를 초래하는 다이어트가 바로 키토제닉 다이어트다. 사람마다 케토시스에 돌입하게 되는 요건은 다르다. 학계에서는 하루 섭취하는 탄수화물의 양이 50~150g일 경우를 ‘저탄수화물 키토제닉 다이어트’로 분류하고 50g 미만일 경우는 ‘극저탄수화물 키토제닉 다이어트’라고 부른다. 보통 키토제닉 다이어트를 하게 되면 자연스레 일반적인(고탄수화물) 식단보다 단백질과 지방을 많이 섭취하게 된다.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의 주요 3영양소 중 단백질은 가장 포만감을 많이 주는 영양소다.
많이 먹어도 살이 빠질까
키토제닉 다이어트를 광고하는 일부는 키토제닉 다이어트를 실천하면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먹어도 살이 빠진다고 주장한다. 방탄커피의 창시자 데이브 아스프리는 자신이 2년간 매일 4000~4500kcal씩 섭취했지만 오히려 45kg을 감량했다고 말한다.그러나 체지방 감량 차원에서 아직은 칼로리가 관건이라는 게 과학의 결론이다. 2006년 한 실험에서 모두 하루 섭취 칼로리를 동일하게 두고 저탄수화물 다이어트와 저지방 다이어트, 고지방 다이어트를 실시했는데 체지방 감량 결과는 세 다이어트법 모두 큰 차이가 없었다. 많은 경우 ‘마음대로 먹었는데도’ 살이 빠졌다는 건 앞서 설명한 케토시스 상태에서 식욕이 억제되는 효과가 있는 것과 단백질 섭취 증가로 인한 포만감으로 인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는 체지방 감량은 결국 섭취하는 열량보다 소모하는 열량이 클 때 성립된다는 상식의 손을 들어준다. 키토제닉 다이어트가 다른 다이어트보다 특별히 우월할 까닭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키토제닉 다이어트가 다른 다이어트보다 효과적이라는 근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다이어트도 다른 다이어트 못지않게 제한사항이 많지만 의외로 저지방 다이어트나 채식 다이어트에 비해 천착하는 비율이 높은 편으로 알려졌다. 사람들이 간과하는 다이어트의 최대 관문은 사실 목표 체중을 달성한 후 이를 유지하는 것이다.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천착하는 비율이 높을수록 목표 체중 달성 이후에도 계속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성향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기에 모두에게 키토제닉 다이어트가 유용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건강에 좋지 않다고?
키토제닉 다이어트가 많은 관심을 얻으면서 부작용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의료 전문가들이 많이 지적하는 것은 콜레스테롤 증가로 인한 심혈관 질환 위험의 증가다. 흔히 ‘나쁜 콜레스테롤’이라 일컫는 저밀도지단백콜레스테롤(LDL)이 키토제닉 다이어트를 하면 증가한다는 점이 부연된다.실제 연구 결과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키토제닉 다이어트를 하면 LDL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나(몇몇 실험에서는 감소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좋은 콜레스테롤’이라 하는 고밀도지단백콜레스테롤(HDL)도 함께 증가하며, 또 다른 위험 콜레스테롤인 중성지방은 오히려 많이 감소한다. 2019년의 한 연구는 2년간 키토제닉 다이어트를 실시한 때도 HDL과 LDL이 증가한 상태가 유지되는 걸 관측했다.
이 때문에 처음부터 LDL 수치가 우려스러운 사람을 제외하면 키토제닉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데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다만 LDL 수치를 잘 관찰하면서 섬유질이 많이 든 식품을 섭취하고 버터, 코코넛유 대신 올리브유, 견과류, 아보카도 등을 섭취하는 쪽으로 LDL을 관리하는 게 좋다.
키토제닉 다이어트는 혈당과 인슐린 민감도 개선에는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가 나오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어 당뇨 환자들의 체중관리용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는다. 다만 키토제닉 다이어트 적응기에 저혈당 상태가 오는 경우가 많아(기저 질환이 없는 사람들에겐 괜찮다) 당뇨 환자는 이 시기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사전에 전문가와의 상의가 필수적이다.
질병 완화의 가능성
키토제닉 다이어트 식품. [GettyImages]
20세기 초 키토제닉 다이어트가 처음 연구된 것은 다이어트가 아닌 간질 발작 치료를 위해서였다. 특히 어린이의 간질 발작 치료에 키토제닉 다이어트가 효과적이라는 임상 사례가 여럿 보고됐기 때문이었다. 아직 정확한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포도당 대신 케톤을 쓰면서 이것이 뇌와 신경계에 미치는 영향 때문으로 짐작된다. 어쩌면 이것이 알츠하이머병 등의 완화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일 수 있다.
2019년의 한 리뷰는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같은 신경 퇴행성 질환에 키토제닉 다이어트가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논문들을 분석했다. 동물 실험은 물론이고 인간에 대한 실험 5건에서 키토제닉 다이어트를 실시한 실험군이 대조군보다 기억력이 향상됐다. 파킨슨병도 2건의 임상시험에서 키토제닉 다이어트가 파킨슨병의 증상을 일부 완화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아직 데이터가 많지 않고 기간도 짧아 더욱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암의 경우에는 비교적 많은 실험이 이뤄진 편이나 여전히 어떠한 판단을 내리기에는 태부족이고 상반되는 결과도 많다. 다만 신경교종(뇌와 척수 내부의 신경교세포에서 발생하는 희귀 암)의 치료관리에 키토제닉 다이어트를 사용한 기존 연구에 대한 2018년 리뷰에서는 일부 긍정적인 효과를 관측하긴 했으나 실험의 한계로 이를 입증할 수는 없었다고 평가한다. 연구자들은 향후 5~10년 내로 관련 연구 결과가 추가로 발표되면 키토제닉 다이어트가 각종 질환에 미치는 영향이 더 분명하게 규명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어쩌면 나중에는 키토제닉 다이어트가 체중 감량이 아닌 질병 치료를 위한 다이어트법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참조> Gibson et al., Do ketogenic diets really suppress appetite?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Obesity Reviews, 2014 등 연구 논문 5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