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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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된 우리 공군 주력 F-15K, 미사일 한 발 날려보지 못하고 잿더미 될라 [웨펀]

주변국 신형 전투기와 맞서도록 하려면 레이더와 전자장비 성능 업그레이드 필요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0-07-18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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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공군의 주력기종인 F-15K 전투기. [동아DB]

    우리 공군의 주력기종인 F-15K 전투기. [동아DB]

    7월13일, 美 증권가에 파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미 공군이 보잉이 개발한 4.5세대 전투기 F-15EX 76대 구매를 확정하고, 그 초도양산 물량으로 8대를 계약했다는 소식이었다. 미 공군은 12억 달러의 예산으로 8대의 F-15EX를 우선 주문하고, 향후 5년간 228억 달러, 한화 27조 5060억 원을 들여 76대의 F-15EX를 사들일 예정이라는 계획도 발표했다. 

    보잉사의 F-15 전투기 프로그램 담당 매니저는 보도자료를 내고, “F-15EX는 F-15 계열 가운데 가장 첨단의 기종이며, 작전반경이나 무기 적재량, 가격 등 모든 부분에서 미 공군의 훌륭한 선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납득이 가지 않는 결정

    이 소식이 국내 언론을 통해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 공군은 세계 최강의 전투기로 불리는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22A 랩터를 195대 구입했고, 현재는 이보다 더 진일보한 F-35A 1763대를 도입 중이다. 일선에 5세대 전투기가 대량으로 보급되고 있는 와중에 스텔스와는 거리가 먼 F-15를 80대 가까이 구매한다니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결정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F-15 이글(Eagle)은 1960년대 기술로 개발된 전투기다. 공대공 전투용으로 개발된 최초의 이글이 1972년에 첫 비행하며 데뷔했으니 올해로 데뷔 48년차다. 지상 공격 능력을 대폭 강화해 다목적 전투기로 만들어진 F-15E 스트라이크 이글(Strike Eagle)이 1986년 데뷔했으니 스트라이크 이글의 데뷔도 34년이나 됐다. 

    이 때문에 지난 2002년, 우리 공군이 차기 전투기 사업(FX)를 진행하며 F-15E의 개량형인 F-15K를 선정했을 때 국내 언론과 온라인 커뮤니티, 반미단체들을 중심으로 미국의 구닥다리 전투기를 비싼 값을 주고 사온다며 극렬한 반대 활동이 전개되기도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최종 후보였던 프랑스의 라팔은 이제 막 개발이 진행 중이던 최신 기종이었고, F-15E는 데뷔한지 16년이나 지난 상대적 구식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F-15가 구닥다리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것이 벌써 18년 전인데, 미 공군이 그 F-15를 무려 27조 원이 넘는 돈을 들여 80대 가까이 구매한다니 당연히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국내 언론들은 미 정부가 최근 신종 코로나 여파로 여객기 구매가 급감하자 경영난에 빠진 보잉을 살리기 위해 미 정부가 보잉의 구닥다리 전투기를 구매해 주는 것이라는 분석들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보잉의 전체 매출에서 방산부문은 20%를 조금 넘는 수준이고, 이 가운데 전투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며, 보잉 전투기 매출의 대부분은 F-15가 아닌 F/A-18 슈퍼 호넷과 F-35 프로그램 일부 하청에서 나온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미 정부가 보잉을 살리기 위해 구식 전투기를 구매해 준다는 분석은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결정적으로 이번 F-15 구매는 미 정부가 요구한 것이 아니라 실제 수요자인 미 공군에서 요구한 사업이었다.

    가성비 뛰어난 전투기, F-15EX

    F-15EX는 가성비가 뛰어난 전투기로 평가받는다. [동아db]

    F-15EX는 가성비가 뛰어난 전투기로 평가받는다. [동아db]

    당초 미 공군이 요구한 F-15EX의 구매 수량은 144대였다. 미 공군은 F-15C/D는 물론 F-15E 전투기 대체용으로 F-15EX를 점찍었고, 지난해부터 최소 144대의 F-15EX 구매를 정부에 요구해 왔었다. F-22와 F-35를 가지고 있는 미 공군이 이전 세대인 F-15EX 전투기 구매를 요구한 이유는 ‘가성비’, 즉 가격 대비 성능이 5세대 전투기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F-15EX는 사우디아라비아용으로 개발된 F-15SA에 기술적 바탕을 두고 설계된 최신 개량형이다. 풍부한 오일 머니로 돈이 넘쳐나는 사우디는 일찌감치 F-15를 도입해 운용하고 있었지만, 기존 F-15S는 이스라엘의 입김 때문에 지상 공격 능력이 크게 다운그레이드된 기종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 미국에 대한 로비에 힘입어 지난 2011년 F-15E를 근본부터 재설계한 환골탈태 버전인 F-15SA 구매 계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했다. 

    사우디는 F-15SA 신규 생산 84대, 기존 S사양 70대를 SA 사양으로 개조하는 대가로 무려 294억 달러, 한화 35조 3100억 원을 지불했다. 대당 2200억 원이 넘는 돈을 준 셈인데,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가 F-15K를 대당 1200억 원 정도에 구매했다는 점을 되짚어보면 사우디는 거의 2배 가격에 전투기를 구매한 셈이었다. 

    사우디가 이처럼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한 것은 기술 개발 때문이었다. 사우디라는 대어를 낚은 보잉은 사우디에서 받은 돈으로 필요한 모든 기술을 개발해 F-15에 적용했고, 그 결과물로 탄생한 F-15SA는 F-15E 스트라이크 이글의 계열 기체로 보기 어려울 만큼 비약적으로 성능을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우선 조종 계통이 바뀌었다. 기존의 F-15E의 기계식 플라이 바이 와이어(Fly-By-Wire) 시스템 대신 디지털 방식의 FBW가 적용되어 조종 반응성과 기동성이 크게 향상됐다. 레이더는 기존의 기계식을 제거하고 현존 최고의 전투기용 레이더 중 하나로 꼽히는 AN/APG-63(V)3 능동전자주사식(AESA) 레이더가 탑재됐다. 

    레이더와 신형 디지털 미션 컴퓨터의 도입으로 F-15SA는 280km 떨어진 표적을 탐지하고, 10개 이상의 표적을 동시에 추적해 공격할 수 있는 가공할 공격 능력을 갖추게 되었으며, 차세대 전자전 장비인 DEWS(Digital Electronic Warfare System)를 갖춰 나에게 날아오는 적의 공대공 미사일을 교란해 떨어뜨릴 수 있는 강력한 방어 능력도 구비했다.

    ‘미사일 캐리어’로 운용

    보잉은 사우디 공군용 F-15SA를 개발하면서 스트라이크 이글의 성능을 한 단계 높이고, 이후 수주한 카타르 수출 계약을 통해 레이더와 조종계통, 항공전자장비를 추가 개량한 F-15QA를 만들어 내면서 기존 4세대 수준이었던 F-15를 4.5+세대 이상의 가공할 전투기로 탈바꿈시켰다. 그 F-15QA 기술을 기반으로 더욱 개량된 것이 F-15EX다. 

    F-15EX는 280km 이상 거리에서 적 전투기를 탐지하는 것은 물론 적 전투기에 직접 전자전 공격을 가할 수 있는 가공할 성능의 차세대 레이더 AN/APG-82(V)1을 탑재한다. 레이더를 보조하는 센서로 고성능 전방적외선감시기(FLIR)이 기본 장착되어 있으며, 사우디 공군용보다 더욱 진일보한 DEWS 전자전 장비도 갖췄다. 기체에 장착된 모든 센서를 통해 수집된 정보는 고성능 미션 컴퓨터를 통해 융합되며, 융합된 정보는 1면 와이드 스크린 디스플레이와 조종사의 헬멧에 장착된 HMD 고글에 표시됨과 동시에 실시간 데이터 링크를 통해 아군에게 공유된다. 

    무장 능력도 크게 강화됐다. F-15EX는 무장 장착대 변경을 통해 AIM-120D급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무려 22발이나 동시 탑재 가능하다. 기존 F-15E가 10발 정도를 탑재했던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늘어난 탑재량이다. 여기에 탑재되는 AIM-120D는 최대 200km까지 공격이 가능하므로, F-15EX는 혼자서도 적 전투기 1~2개 편대를 원거리에서 일방적으로 공격해 격멸할 수 있는 가공할 공격 능력을 갖는다. 

    미 공군은 F-15EX의 미사일 탑재 능력을 이용해 이 전투기들을 ‘미사일 캐리어(Missile Carrier)’로 운용할 구상을 가지고 있다. 적의 레이더에 잘 탐지되지 않는 F-35 스텔스 전투기를 전면에 배치하고, 적의 레이더 경보장치에 탐지되지 않는 전자광학조준장치(IRST)로 은밀하게 표적을 조준한 뒤 표적 정보를 2선의 F-15EX에 보내 200km 거리에서 대량의 미사일을 날려 적 편대를 일거에 날려버리는 전술이다. 

    F-35가 없다면 조기경보기와 F-15EX를 데이터링크로 묶어서 조기경보기가 보내준 표적 정보로 미사일을 발사하는 방법도 있다. F-15EX는 일반적인 전투기 3~4대분의 미사일을 탑재하므로 F-15EX를 운용하는 측은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로도 다수의 적과 교전할 수 있는 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미 공군이 이러한 고성능 F-15EX 도입 구상을 밝히자, 일본은 잽싸게 F-15 성능개량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일본은 지난해 11월, 98대의 F-15MJ 전투기를 미 공군이 구상했던 F-15EX에 준하는 사양으로 개량하는 45억 달러 규모의 개량 사업을 발표했다. 

    일명 ‘슈퍼 카이(Super 改)’로 불리는 이번 개량 사업을 통해 일본의 F-15MJ는 AN/APG-63(V)3 AESA 레이더와 신형 임무컴퓨터, 디지털 전자전 시스템(DEWS) 등을 장착하고,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인 JASSM과 공대함 미사일 LRASM 운용 능력을 추가해 본격적인 멀티 롤 전투기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성능 개량에 대당 400~500억 원 소요

    따라서 우리나라 역시 F-15K 전투기의 성능 개량을 서둘러야 한다. 우리 공군이 보유한 F-15K는 60여 대로 지난 2000년대 초반 도입된 후 아직 별다른 개량 없이 15년 가량을 써 왔다. 이 F-15K 60대를 일본보다 우수한 사양인 AN/APG-82(V)1 레이더, 디지털 전자전 시스템과 신형 임무컴퓨터 등을 적용해 개량하려면 대당 400~500억 원 가량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최대 3조 원가량의 예산이 소요되는 이 사업은 현재 다양한 전력증강사업을 벌여놓고 있는 군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이 되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예산 부담을 이유로 개량을 미룬다면, 대당 1200억 원이 넘는 F-15K는 주변국의 신형 전투기를 상대로 미사일 한 발 날려보지 못하고 잿더미가 되어버릴 공산이 크다. 

    미 공군이 F-15EX 대량 구매 계획을 밝힌 지금은 한국에게 큰 기회다. 미 공군용 전투기에 들어가는 각종 레이더와 전자장비 등이 대량으로 생산돼 가격이 크게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량 사업을 미 공군의 성능개량 및 신조기 구매 사업과 연계해 대외군사판매(FMS) 형태로 도입하면 예산 절감의 폭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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