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한 장면. 식품의약품안전처 인증을 받지 않아 방역 효과가 불분명한 ‘공산품 마스크’를 의료진은 사용하지 않는다. [tvN]
날씨가 더워지면서 보건용(KF) 마스크보다 얇고 가벼운 덴탈마스크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방역 당국이 “덴탈마스크를 써도 생활방역을 실천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탈(脫)KF’에 한몫하고 있다. 김미나 서울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또한 최근 ‘대한의학회지’에 ‘KF94’ ‘N95’ 같은 보건용 마스크보다 덴탈마스크가 공중보건 유지 측면에서 더 적합하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방역 당국과 의료계가 말하는 덴탈마스크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인증을 받은 ‘의약외품’ 덴탈마스크. 하지만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덴탈마스크는 대부분 의약외품 인증을 받은 제품이 아니다. 식약처는 “의약외품 인증을 받지 않은 마스크는 방역 효과가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장당 1500원에 팔기도
인터넷쇼핑몰에서 유통되는 덴탈마스크 광고 문구들.
인천 부평구의 박모(63) 씨는 최근 국산 덴탈마스크 50장을 4만5000원에 구입했다. 그는 “KC(Korea Certification·국가통합인증마크) 인증을 받았다는 광고 문구를 보고 신뢰감이 들어 샀다”고 말했다.
KC 인증은 안전, 보건, 품질 등을 표준 규격으로 평가해 일정 기준 이상에 이른 공산품에 부여하는 국가 인증 시스템으로, 방역 효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KC 인증을 근거로 ‘품질 검사를 거쳤다’고 광고하는 것은 해당 마스크가 공산품으로서 자격을 갖췄다는 의미일 뿐”이라며 “식약처가 검증하기 전까지는 방역 효과가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승인받은 제품이라는 광고 문구도 경계 대상. 경기 안양시의 이모(29) 씨는 약국에서 덴탈마스크 50장을 2만5000원에 구입했다. 이씨는 “약사가 유럽 CE(Conformite European) 인증을 받은 제품이라고 해 믿고 샀다”고 했다. CE 인증은 KC인증과 유사한 유럽의 공산품 인증마크. 식약처 관계자는 “CE 인증이나 미국 FDA(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았다고 해도 한국 기준의 검사를 통과한 제품은 아니다”라며 “식약처의 의약외품 인증 없이 방역 효과를 보증한다고 광고해 판매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멜트블로운(MB)필터 장착’ 광고 문구도 주의해야 한다. MB필터는 폴리프로필렌(PP) 같은 열가소성 고분자를 녹여 노즐을 통해 압출·방사하는 제조 방법으로 만든 부직포 필터다. 비말, 에어로졸 등을 막아주는 기능이 있어 보건 및 의료용 마스크에 널리 쓰인다. 의약외품 인증을 받지 않은 덴탈마스크 중에서도 이러한 MB필터를 장착했다고 내세우는 제품이 적잖다. 하지만 식약처 관계자는 “MB필터의 성능이나 함량에 따라 차단 효과가 다르기 때문에 MB필터로 만든 제품이라고 다 방역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의사들은 ‘공산품 마스크’ 사용 안 해
서울지하철 1·4호선 서울역사 내 한 가게에 덴탈마스크가 진열돼 있다. [뉴스1]
식약처에 따르면 방역 효과가 입증돼 의약외품 허가를 받은 일회용 마스크를 가리키는 정확한 용어는 ‘수술용 마스크’. 식약처 관계자는 “의약외품 인증을 받지 않은 일회용 마스크는 수술용 마스크와 구분해 ‘공산품 마스크’라고 부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5월 25일 기준 식약처가 밝힌 수술용 마스크의 하루 생산량은 70만 장. 같은 날 공적마스크가 933만 장 공급된 점을 감안하면 수술용 마스크의 비중은 현저히 작다. 그마저도 수술용 마스크의 80%는 의료진에게 우선 공급된다. 일반 국민이 수술용 마스크, 즉 방역 효과가 입증된 덴탈마스크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인 셈이다. A씨와 식약처 관계자는 “지금 국민이 사용하는 덴탈마스크는 대부분 공산품 마스크일 뿐”이라고 말했다.
의료진은 방역 효과가 불분명한 공산품 마스크를 기피한다.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는 “우리 협회는 각 병원에 식약처 인증을 받은 마스크만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도 “아무리 마스크 수급이 어려워도 우리 의료진은 공산품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전 수술용 마스크의 장당 가격은 100원, 공산품 마스크는 10원가량이었다. A씨는 “공산품 마스크는 반도체 공장 등에 대량공급되는 용도였다”며 “두 종류의 마스크 모두 생산단가가 워낙 낮고 일반 소비자 수요도 없어 중국으로부터 수입해 의료진 및 공장에 공급해왔다”고 전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마스크 수요가 폭증하자 방역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공산품 마스크가 장당 500원 이상 비싼 값에 팔리는 상황이다. 국산 공산품 마스크는 오히려 중국산 수술용 마스크보다 더 비싸게 팔리고 있기도 하다(표 참조).
식약처, “공산품 마스크 방역 효과 검사한 적 없다”
많은 국민이 방역 효과가 없는 공산품 마스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식약처는 이러한 마스크의 ‘방역 효과’를 검증하거나 단속하지 않는다. 식약처 관계자는 “공산품 마스크의 샘플을 수거해 살펴본 적은 없다”고 밝혔다.다만 식약처는 6월 1일 보건용 마스크보다 가볍고 통기성이 좋은 ‘비말차단용 마스크’의 기준과 규격을 고시했다. 양진영 식약처 차장은 “서너 개 마스크업체로부터 비말차단용 마스크 인증 신청이 들어왔다”며 “빠르면 6월 첫째 주 후반부터 시중에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