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 김민경]
11월이 코앞인데 겨울 준비를 하나도 못 했다. 준비라고 해봐야 내년 3~4월까지 먹을 차를 만드는 정도다. 즐겨 만드는 건 딴딴한 모과를 잘게 썰어 설탕에 켜켜이 잰 모과차다. 모과는 하도 야물어 3~4개만 손질해도 손목이 얼얼하다. 수분이 적어 설탕이 녹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달콤한 모과차를 마시면 은은한 향과 뜨끈한 기운에 기분까지 따사로워진다. 다음으로는 굵고 연한 햇생강을 잔뜩 사다 껍질을 벗긴 뒤 한 무리는 큼직하게 썰어 냉동실에 넣고, 다른 한 무리는 잘게 썰어 꿀을 부어 둔다. 시나몬 스틱 또는 계피 조각이 있으면 모과나 생강을 재운 병에 끼워 넣는다. 참고로 얼린 생강에 남은 과일이나 마른 과일, 다른 차를 섞어 끓여 마시면 겨울철 차가워진 몸에 온기를 더할 수 있다. 하루면 해치울 갈무리지만 올해는 이대로 건너뛰나 했다. 집으로 탱자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피부 가려움과 피로를 없애주는 약효가 가득~
텃밭을 가꾸면서 다양한 토종 씨앗을 심고, 그 수확물도 아낌없이 선물하는 지인이 있다. 철마다 땀으로 일군 귀한 산물을 보내주는데 이번 꾸러미에는 참깨, 토란, 빨간 고추, 탱자가 가득했다. 특히 야무지게 생긴 탱자가 눈에 들어왔다. 유자와 가까운 사이인 것 같고, 색은 귤색이며, 살구처럼 보드라운 털로 덮여 있다. 생김새는 금귤(낑깡)처럼 동그랗고, 꼭지가 작으며, 과육은 꽤 단단하다. 탱자 특유의 향이 아주 진하게 퍼지는데 향내로 치면 유자나 귤은 비교도 안 된다. 잘 익은 모과처럼 농후하지만 산뜻하고 새금하다.따뜻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 탱자는 봄 끝자락에 흰 꽃이 핀다. 6월부터 작은 초록색 열매가 맺히고 10월이 되면 노랗게 익는다. 탱자는 잘 익혀 먹기보다 초록색일 때 수확해 약재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확 시기에 따라 ‘지실’ ‘지각’으로 불리는데, 주로 말려서 유통된다. 잘 알려진 약효로는 피부 가려움증을 진정시키고, 더부룩하거나 체한 속을 가라앉히는 것이다. 이외에 피로를 풀어주고 눈, 혈관, 장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특히 아토피피부염 같은 피부 질환이나 피부 건조로 고생하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탱자즙을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좋은하루식품’의 김기태 농부 역시 그 시작이 아토피 때문이었다. 탱자즙을 꾸준히 마시고, 탱자즙과 물을 섞어 몸을 헹구거나 피부에 바르니 가려움증이 쉬이 가라앉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차부터 드레싱까지 요리에 다양하게 쓰여
[사진 제공 · 김민경]
1 탱자 향이 나는 버터연어구이. 2 탱자 제스트와 올리브 오일을 올려 구운 토란. 3 탱자청은 설탕, 꿀, 탱자를 섞어 만든 뒤 병에 보관한다. [사진 제공 · 김민경]
싱싱한 탱자는 소스나 드레싱을 만들 때도 활용할 수 있다. 먼저 탱자를 도톰하게 썬 뒤 씨를 뺀다. 달군 팬에 버터를 녹이고 탱자를 넣어 뭉근하게 볶아 향을 충분히 낸다.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한 뒤 구운 생선이나 고기에 뜨겁게 끼얹어 먹는다. 욕심을 내 핑크 솔트를 몇 알 통째로 뿌리거나, 아스파라거스 같은 채소를 함께 낸다면 눈과 입이 훨씬 즐거워진다. 기름에 마늘이나 대파를 볶아 향을 내듯이, 탱자도 기름에 볶으면 톡 쏘는 향이 그대로 우러난다. 취향에 맞게 요리에 탱자를 사용할 수 있을 듯하다. 탱자 겉껍질은 얇게 깐 뒤 잘게 썰면 오렌지나 레몬껍질처럼 요리에 제스트로 쓸 수 있다. 탱자 제스트와 즙을 오일에 섞어 새콤하면서도 향긋한 드레싱을 만들면 된다. 단, 탱자 껍질과 즙은 레몬이나 라임보다 떫은맛이 있으니 신맛 전체를 탱자로 내기보다 독특한 향을 더하는 정도로 사용하길 권한다.
[사진 제공 · 김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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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넘치고 쓰임새 많은 탱자
우리나라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탱자나무가 여럿 있다. 그중에는 수령이 400년 가까이 된 것도 있다. 탱자나무 줄기에는 장미와 엄나무조차 겁먹을 만큼 뾰족하고 커다란 가시가 줄지어 나 있다. 희고 여린 꽃, 노랗고 탐스러운 과일과 상반된 나뭇가지 모양 덕에 탱자나무는 예부터 울타리 대용으로 많이 심겼다. 오랫동안 주변에 있었는데도 탱자는 과일로서는 사랑받지 못했다. 우연한 기회에, 이런저런 방법으로 먹어본 탱자는 개성도 넘치고 찬란하도록 매력적인 과일이었다. 싱싱한 것을 바짝 말려 약용으로만 쓰기에는 아깝다는마음이 들 정도였다.
신선한 탱자즙 모으는 곳
[사진 제공 · 좋은하루식품]
좋은하루식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