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리로 가는 길’에서 명품 카메라 ‘라이카’로 일상의 모습을 담는 주인공 앤. [‘파리로 가는 길’ 화면 캡처]
칸→프로방스→리옹→베즐레이에서 파리로 이어지는 여정. 프랑스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고, 사진 찍기가 취미인 앤이 카메라로 여러 순간을 담아낸다. 영화 원제는 ‘Paris Can Wait’이다. 프랑스인 자크가 곧장 파리로 가자고 여러 차례 조르는 미국인 앤에게 하는 말이다.
앤 “파리, 오늘은 갈 수 있나요?”
자크 “걱정 말아요. 파리는 어디 안 가요(Paris can wait).”
파리는 기다릴 수 있으니, 여유를 가지라는 의미다.
영화를 만든 감독은 엘리너 코폴라. 저명한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영화 ‘대부’와 ‘지옥의 묵시록’을 만든 할리우드의 거물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아내다. 대표작으로 남편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 촬영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 ‘회상, 지옥의 묵시록’이 있다. ‘파리로 가는 길’은 엘리너 코폴라 감독이 그의 나이 80세에 만든 첫 번째 장편 극영화다. 남편과 칸영화제에 갔다 파리 여행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 ‘파리로 가는 길’의 주인공 앤이 라이카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 [‘파리로 가는 길’ 화면 캡처]
라이카, 사진의 특수 문화
‘라이카(Leica)’는 세계적인 카메라 제조사다. 카메라 브랜드로는 에르메스, 샤넬에 버금가는 명품이다. 1849년 독일 검안사이자 수학자인 카를 켈너가 베츨라어(Wetzlar)에서 렌즈와 현미경 연구를 시작한 것이 이 회사의 시작이었다. 170년 전통의 이 회사는 오늘날 혁신적인 기술을 만나 뛰어난 이미지 퀄리티와 완벽함을 보장하는 브랜드로 통한다.일단 라이카 렌즈는 모두 수공업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라이카 렌즈로 촬영한 사진은 우수한 콘트라스트(대조·대비), 해상도, 연출력 외에 ‘자연스러움’을 잘 포착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킬리만자로산 정상 또는 사하라 사막처럼 기온 변화가 심한 곳이나 극한 조건에서도 기대 이상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25년 라이카는 세계사에 기록될 만한 전설적인 사진들로 진실과 브랜드를 알렸다. 스페인 내전 당시 촬영한 로버트 카파의 ‘총 맞는 병사(The Falling Soldier)’, 알베르토 코르다가 촬영한 쿠바 혁명가 ‘체게바라’의 초상화, 닉 우트가 베트남전쟁에서 촬영해 퓰리처상을 받은 어린 소녀의 사진, 앨프리드 아이젠스타트가 1945년 전승기념일에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촬영한 ‘VJ-DAY Kiss’ 등이 이 브랜드의 카메라로 포착한 작품들이다.
라이카 카메라는 ‘파리로 가는 길’에만 등장하는 게 아니다. 2001년 개봉한 영화 ‘스파이 게임’에서는 전 미국 중앙정보부(CIA) 요원으로 나오는 브래드 피트가 라이카 카메라를 목에 두르고 등장하기도 했다. 스마트폰 보급 이후 카메라가 쓸모없는 물건이 됐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최근 할리우드 스타들은 각자 선택한 라이카를 항상 휴대하는 것이 유행처럼 목격되곤 한다.
‘캠핑클럽’에서 라이카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이효리. [‘캠핑클럽’ 화면 캡처]
“라이카는 색깔이 유난스럽거나 인위적이지 않아서 좋아요. (중략) 물건에 대한 존경심이 아니라 물건을 만든 장인에 대해 존경심을 갖게 하는 제품이에요. 영화를 만든다는 건 여러 기술자가 모여서 일하는 것이거든요. 촬영감독, 세트를 만드는 목수, 송강호까지 다 완벽한 장인이에요.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물건을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죠.”
라이카의 다양한 스페셜 에디션
[사진 제공 · 라이카 카메라 코리아]
라이카의 스페셜 에디션 가운데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라이카 M’ 카메라다. 2013년 11월 뉴욕 소더비 옥션하우스에서 열린 RED 옥션에 출품됐던, 전 세계에 하나뿐인 카메라다. 당시 뉴욕 소더비 옥션하우스에서 열린 RED 옥션에서 라이카 M은 180만 달러(약 21억5000만 원)에 낙찰됐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디지털 카메라가 된 것이다.
라이카 M은 애플 디자이너인 조너선 아이브와 산업디자이너인 마크 뉴슨이 디자인에 참여해 경매 전부터 많은 사람의 기대를 모았다. 라이카는 이 제품의 낙찰 금액을 모두 아프리카의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 퇴치를 위해 기부했다.
라이카와 에르메스가 함께한 제품은 현재까지 세 가지 모델이 있다. 필름 카메라인 M7 카메라의 스페셜 모델, 디지털 모델인 M9-P의 스페셜 세트, 가장 최근에 나온 라이카의 쌍안경 등이다. 전부 300피스 이내 한정판으로 제작됐으며, 전부 완판을 기록해 현재는 경매를 통해서만 살 수 있다.
이런 유명 에디션 외에도 레니 크래비츠 같은 세계적인 뮤지션이 자신의 사진집과 함께 출시한 한정판 M-P 에디션, 포토그래퍼 랠프 깁슨이 함께한 흑백 전용 카메라 M 모노크롬의 ‘모노’ 에디션은 물론, 라이카를 선호하는 이들의 스페셜 에디션도 존재한다.
앤의 라이카 컴팩트 카메라
서울 강남구 ‘라이카 스토어 청담’. [사진 제공 · 라이카 카메라 코리아]
‘파리로 가는 길’에서 50대 초중반인 앤이 사용하는 카메라는 실용적인 컴팩트 카메라였다. 얇고 가벼워 휴대가 용이하고, 전문성이 없어도 쉽게 ‘일상의 기록’을 창의적으로 남길 수 있다. 앤의 카메라는 ‘라이카 C’로 지금은 단종된 모델.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컴팩트 카메라 ‘라이카 C-Lux’가 7월에 나왔다. 라이카 C-Lux에 탑재된 15배율 줌렌즈는 초당 10장의 연속 사진, 4K 동영상 촬영이 가능하다. ‘라이카 스토어 청담’을 비롯한 전국 라이카 스토어에서 구매할 수 있다.
‘파리로 가는 길’에서 앤의 남편은 ‘꽃중년’으로 유명한 배우 앨릭 볼드윈이다. 반면 자크는 주름진 이마에 연륜 있어 보이는 용모. 앤을 대하는 그의 행동과 말, 마음 씀씀이는 워커홀릭인 남편과 대조적이다.
“당신은 행복한가요(Are you happy).”
자크가 앤에게 한 질문이다. 아마도 영화를 만든 80세의 감독이 모든 사람에게 던진 질문 아닐까.
파리에 도착한 후 마지막 장면에서 자크는 앤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그는 몇십 년간 한 번도 손목에서 빼지 않았다던 팔찌를 편지에 동봉해 그녀가 좋아하는 장미 모양의 초콜릿과 함께 보낸다. 앤이 자크에게 받은 팔찌로 머리를 묶으며 미소 짓는 것이 영화의 라스트신이다. 영화가 10분만 더 길었다면 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파리는 어디 안 가요(Paris can wait)”라고 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