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Images]
2016년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할 당시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글이다. 이때만 해도 한국 OTT(Over The Top·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서비스는 통신사들의 주무대였다. 통신사의 OTT 서비스는 지상파와 인기 케이블TV채널의 콘텐츠를 전부 아우르고 있었다. 이에 반해 넷플릭스나 왓챠플레이 같은 서비스는 해외 영상과 영화가 주요 콘텐츠였다. 해외 드라마나 영화 마니아가 아니라면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는 서비스였다.
하지만 3년 만에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 개발에 나서고부터다. 직접 제작해 해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은 미니시리즈 ‘킹덤’ 외에도 tvN ‘미스터 션샤인’ ‘아스달 연대기’, KBS ‘동백꽃 필 무렵’ 등 국내 콘텐츠 제작업체와 협업도 늘고 있다.
이처럼 넷플릭스가 한국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유는 콘텐츠 때문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한국이 단순한 진출지가 아니라 한국 콘텐츠를 통해 아시아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태국, 일본, 대만 등 넷플릭스가 진출한 다른 아시아 국가와 비교해서도 한국 편애 현상은 두드러진다.
시장 정복자 넷플릭스, 아시아를 겨냥
지난해 11월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가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콘텐츠 라인업 발표회에서 신작을 소개하고 있다. [동아DB]
넷플릭스는 아시아시장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아시아시장 진출만으로 매출 규모가 크게 늘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넷플릭스의 시장별 매출 규모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아시아에 진출하기 시작한 2016년과 2017년을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2016년 넷플릭스의 총매출은 9조9212억 원, 이듬해인 2017년에는 13조1355억 원으로 늘었다. 가입자도 증가했다. 2018년 아시아 진출 3년 만에 가입자 수가 총 5800만 명을 넘어섰다. 10년 넘게 모은 넷플릭스 미국 가입자 수가 6023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빠르게 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아시아는 넷플릭스가 유일하게 점령하지 못한 시장이기도 하다. 현재 넷플릭스의 북미시장 점유율은 87%.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아마존), ‘훌루(Hulu)’ 등 후발 주자의 등장으로 소폭 하락했다. 2014년까지는 시장점유율이 90%였다. 유럽시장에서도 넷플릭스의 시장점유율은 압도적이다. 지난해 미국 보스턴컨설팅그룹의 로이모건리서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영국 등 영어권 유럽 국가에서 넷플릭스의 시장점유율은 83%였다. 영어권은 아니지만 영어가 통용되는 독일, 스웨덴, 핀란드 등에서도 시장점유율이 76%였다. 자국 내 콘텐츠 보호 규제가 엄격한 프 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시장점유율이 68%로 떨어졌다. 하지만 넷플릭스를 선택하지 않은 가정은 아마존, 훌루, HBO 대신 국내 업체의 OTT 서비스만 사용하고 있었다.
반면 아시아에서는 시장점유율이 지난해 기준 9%. 아직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시장이다. 관련 업계는 아마존, 디즈니 같은 걸출한 경쟁자가 선점을 노리고 있다고 본다. 실제로 후발 주자의 부상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RBC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아마존으로 영화와 TV 프로그램을 시청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54%(복수응답)였다. 1년 전과 비교해 17%p 증가한 수치다. 디즈니는 훌루를 인수한 데다 마블, ESPN 등 인기 콘텐츠를 많이 보유하고 있어 넷플릭스의 가장 큰 경쟁 상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환경이 좋으니, ‘테스트베드’로 제격
올해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왼쪽)과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영화인 봉준호 감독의 ‘옥자’. [넷플릭스 홈페이지]
국내에서는 생소한 스탠드업 코미디도 내놓았다. 넷플릭스가 스탠드업 코미디 프로그램을 만드는 국가는 아시아의 경우 아직 한국뿐이다. 지난해에는 방송인 유병재의 ‘유병재 : 블랙코미디’와 ‘B의 농담’을 내놓았다. 올해는 개그우먼 박나래의 스탠드업 코미디 ‘박나래의 농염주의보’가 10월 16일 업로드될 예정이다.
올해는 드라마 제작에도 뛰어들었다. 사극과 좀비물을 섞은 ‘킹덤’ 외에도 ‘좋아하면 울리는’ ‘첫사랑은 처음이어서’ 등 총 3개의 자체 제작 드라마를 내놓았다. 자체 제작 외에도 판권 구매 등 투자 형식으로 참여한 작품도 많다. 2016년 MBC ‘불야성’을 시작으로 2017년에는 tvN ‘비밀의 숲’ ‘아르곤’ ‘화유기’와 KBS 2TV, JTBC, OCN 드라마를 합쳐 총 7개, 지난해에는 tvN ‘미스터 션샤인’, SBS ‘사의 찬미’ 등 총 7개, 올해는 tvN ‘아스달 연대기’, MBC ‘신입사관 구해령’ 등 총 11개 작품이다.
아시아 문화 콘텐츠 허브, 한국
국내시장에 들어온 후 넷플릭스가 참여 혹은 투자한 국내 콘텐츠는 총 48개. 먼저 진출한 일본은 참여 및 투자 콘텐츠가 애니메이션을 제외하면 총 19개다. 애니메이션을 포함해도 38개에 불과하다. 중국과 대만, 필리핀 등지에도 넷플릭스 관련 콘텐츠는 있다. 하지만 각각 10개 남짓이다.그렇다면 왜 한국일까. 온라인 서비스 업계는 그 이유를 한국 통신망에서 찾는다. 유무선 통신의 품질이 세계 최고 수준인 데다 인터넷, 스마트폰 보급률도 높기 때문. 당연히 잠재적 고객이 많고, 서비스 변동에 따른 시장 반응에도 기민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리서치 전문기관 퓨리서치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은 성인의 96%가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었다. 스마트폰 사용 비율도 94%에 달했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 넷플릭스 가입자는 가파르게 증가했다. 올해 6월 기준 한국 넷플릭스 가입자 수는 184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2% 늘었다.
넷플릭스의 한국 편애는 통신망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류, 케이팝(K-pop) 등 한국 글로벌 콘텐츠의 영향력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2019 해외한류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 국가에서 한국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은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자국 내 인기 있는 외국 콘텐츠 통계를 살펴보면 아시아시장에서는 한국 드라마(42.9%)와 예능프로그램(38%)이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미국 드라마(36.4%)와 미국 예능프로그램(35.3%). 일본과 중국의 콘텐츠가 가장 인기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10%를 밑돌았다. 보고서는 ‘한국 동영상 콘텐츠에 관해서는 넷플릭스로 이용한다는 응답이 40% 이상으로 높게 나타났다’며 ‘한국 동영상 콘텐츠의 주요 유통 플랫폼이 변화한 지금 온라인·모바일 OTT를 통해 글로벌시장에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기업 또는 정책의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넷플릭스도 한류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넷플릭스 측에 한국 콘텐츠 개발에 집중하는 이유를 묻자 “한국은 훌륭한 수준의 제작 인프라와 뛰어난 스토리를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좋은 이야기를 찾고 있는 넷플릭스에게 한국은 중요한 국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창작자들의 뛰어난 역량과 글로벌 팬덤을 보유한 한국 콘텐츠의 힘을 믿고 올해 5월 서울에 상주하는 한국 콘텐츠팀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까지 공개된 작품 외에도 10편 이상의 한국 오리지널 작품이 제작 및 공개를 앞두고 있다. 한류를 이끄는 창작자 커뮤니티와 상생을 도모해 한국 콘텐츠를 전 세계로 알리고자 힘을 쏟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