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S)·파생결합펀드(DLF)의 대규모 손실이 추석 이후부터 순차적으로 현실화된다. 우리은행이 판매한 1255억 원어치(8월 7일 판매 잔액 기준)의 독일 금리 연계 DLF 가운데 9월 19일 첫 만기가 돌아오는 투자금은 2406억 원. 이 투자금의 8월 26일 기준 수익률은 -98%로, 사실상 원금 전액을 날리게 됐다. 이후 11월까지 순차적으로 만기가 돌아오는 나머지 투자금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 상품은 독일 국채금리가 -0.25% 아래로 내려갈 때부터 손실이 발생해 -0.65% 밑으로 떨어지면 원금 대부분을 잃게 되는 구조다. 9월 초 현재 독일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0.7% 안팎까지 내려간 상태다(그래프 참조).
영국과 미국 이자율스와프(CMS) 금리 연계 상품도 9월 25일부터 내년 9월까지 차례로 만기가 돌아온다. 우리은행이 판매한 영국 CMS 금리 연계 DLF 2700억 원과 KEB하나은행이 판매한 영국·미국 CMS 금리 연계 DLF 3850억 원의 8월 26일 기준 수익률은 거의 대부분 -40%에서 -60% 사이에 머물러 있다. 아직 만기가 길게는 1년이 남은 만큼 최종 손실액은 향후 달라질 수 있지만, 글로벌 경제 흐름을 볼 때 ‘역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OEM 상품 아니냐”
3월 12일 우리은행 한 영업점에서 고객에게 보낸 독일 금리 연계 DLF 안내 문자메시지.
금융감독원(금감원)은 8월 23일부터 DLS와 DLF를 설계·제조·판매한 금융회사들을 상대로 합동 검사에 들어갔다. 검사의 초점은 우선 불완전판매 여부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경영진 책임으로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는 게 금융업계의 시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글로벌 주요 국가의 금리 하락이 예상됐던 올해 상반기에 유독 두 은행이 금리 연계 파생상품 판매에 열을 올렸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 파생상품이 은행의 요구로 만들어진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 상품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고 전했다. 금감원은 은행 경영진이 상품 개발 과정에 개입했거나, 판매 수수료 같은 비이자 이익 목표치를 제시했는지 여부 등도 검사할 계획이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이번 DLF 사태에 대해 “금융사가 수익 창출을 위해 고객에게 위험을 전가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며 “고객 신뢰를 흔드는 행위에 대해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불완전판매 정황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을 통해 이번에 문제가 된 DLF에 가입한 고객 중 만 70세 이상 고령자가 655명으로 전체(3123명)의 21%에 달했다(표 참조). 90세 이상 초고령 고객도 하나은행은 11명, 우리은행은 2명을 유치했다. 70세 이상 고령자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돈을 DLF에 납부했다. 인당 평균 2억5000만 원을 투자했지만, 70세 이상 고객은 이보다 2000만 원 많은 인당 평균 2억7000만 원을 투자했다(법인 제외). 특히 하나은행의 80대 고객 144명은 총 661억 원어치의 DLF에 가입해 인당 평균 4억6000만 원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은 “문제의 DLF는 투자성향 등급 1단계(공격투자형)에 해당하는 초고위험 상품인데, 만 70세 이상 고령자가 상당수인 만큼 투자자들이 상품을 제대로 이해한 상태에서 가입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하나은행 측은 “고령이라 해도 상당수가 투자 경험이 있는 고객들”이라고 밝혔다.
올 상반기 우리·하나은행의 비이자 이익 늘어
우리은행이 판매한 유경PSG자산운용의 독일 금리 연계 DLF의 상품판매서에는 ‘원금 100% 손실 가능’ 문구가 적혀 있다. 해당 DLF 투자자들은 “이 상품판매서를 우리은행으로부터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금융정의연대와 키코공동대책위원회, 약탈경제반대행동은 8월 23일 우리은행을 DLF 사기 판매 혐의로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하면서 우리은행이 판매한 독일 금리 연계 DLF의 운용사 중 하나인 유경PSG자산운용의 상품판매서를 공개했다. 3월 22일자로 펀드를 설정하는 이 상품판매서에는 ‘과거 스트레스 시장 상황 및 향후 전망을 고려할 경우 독일 국채금리 하락 가능성이 있으며, 높은 레버리지(200배)로 인해 원금 100% 손실 가능’이라는 문구가 붉은색으로 적혀 있다. 금융정의연대 측은 “피해자들의 제보에 따르면 이 상품판매서를 우리은행으로부터 교부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은행이 원금 손실 가능성을 미리 알고 있으면서도 투자자에게 원금이 100% 손실될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3월 12일 우리은행 한 영업점에서 발송한 ‘특판 안내’ 문자메시지에는 ‘독일 국채금리가 현재 0%였다가 점차적으로 오르는 추세. 지금 시점에 가입하시면 좋은 상품이며 국채 10년 금리가 -0.2% 하락하지 않으면 됩니다. 확률적으로 현 시점에서 유리한 상품이라 판단되어 추천 드립니다’라고 돼 있다. 금융 지식에 해박한 사람이 아니라면 안전한 상품이라고 오해할 여지가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열흘 뒤인 3월 22일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는 2016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영역에 진입했다.
은행이 어떤 투자상품을 판매할 것인지는 본부장급에서 결정한다. 본부장급 간부가 주관하고 자산 관리, 트레이딩, 리스크, 영업점 등 유관 부서의 팀장급 실무진으로 구성된 상품선정위원회가 투자상품 판매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이번 DLF 사태의 경우 은행장 이하 경영진과는 무관할 수 있다. 그러나 펀드 판매 수수료를 포함한 비이자 이익 확대가 최근 은행들의 숙원 과제였던 만큼 경영진이 관련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은행은 DLF 판매의 대가로 투자금의 1%를 선취수수료로 가져간다. 이 수수료 수익은 고객이 투자한 펀드가 이익 혹은 손실을 냈는지 여부와는 관계가 없다.
우리은행 안팎에서는 우리은행장을 겸임하는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연임을 위해 실적 압박이 컸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관계자는 “손 회장 임기가 연말까지라 상반기 실적이 특히 중요해 금리 하락이 가시화되는 5~6월에도 DLF 상품을 판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측은 “손 회장 임기는 2019년도 실적이 결산된 이후인 내년 3월 주주총회 때까지라 올해 상반기 실적이 특히 중요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밝혔다.
우리은행은 손 회장이 우리은행장에 취임한 2018년 이후 비이자 이익 확대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이 1조1790억 원으로 경상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냈는데, 비이자 이익이 크게 성장한 것이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펀드 판매 수수료 등이 포함되는 비이자 이익 부문에서 우리은행은 올해 상반기 6114억 원 실적을 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5%, 전분기 대비 25.5% 증가한 수치다. 손 회장은 2~3년 안에 비이자-비은행-해외 수익 비중을 각각 40% 수준으로 끌어올리자는 ‘40-40-40’을 우리금융그룹의 중장기 비전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하나은행도 올해 상반기 3990억 원의 비이자 이익을 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3% 늘어난 실적이다.
“전사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서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바른미래당 지상욱 의원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번 DLF 투자자 10명 중 2명이 펀드 등 투자상품을 사본 적 없는 이들이었다. 지 의원실 관계자는 “은행은 실시간으로 정보를 파악하며 자신의 위험은 관리하면서, 고위험 투자상품의 경우 판매하기만 할 뿐 고객이 지는 위험은 등한시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DLF 사태에서 드러났다”며 “경영진이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이번 사안을 불완전판매로만 접근하면 프라이빗뱅커(PB)와 고객 중 누가 덜 잘못했느냐의 게임밖에 되지 않는다”며 “전사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서야 어떻게 해외 금리 하락으로 손실이 날 가능성이 큰 상품을 계속 판매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