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DB]
다시금 평화 분위기가 조성돼 군사적 긴장 상태가 해소된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남북미 판문점 회동을 두고 “사실상 종전선언”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 ‘북한의 비핵화’라는 커다란 목표에 과연 얼마만큼 다가가고 있는지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이뤄져야 하겠지만, 한자리에서 함께 웃고 있는 세 정상의 모습이 전 세계에 방송되면서 세계인은 우선 안심하고 보자는 분위기다.
하지만 안도의 마음을 계속 가지기엔 아직 이르다고 할 수 있다. 향후 재개될 북·미 실무협상에서 과연 북한이 진정한 비핵화를 향해 나아갈 것인지, 경제제재 완화를 목적으로 일부 비핵화만 시도하며 시간 끌기에 주력하는 것은 아닌지, 혹여 현 수준의 핵동결을 주장하면서 오히려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방향을 점치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는 북한의 의중만 작용하는 건 아니다. 당연히 협상 당사국이자 강대국인 미국의 의중이 더욱 중요하게 작용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생존을 위협받을 수도 있는 대한민국의 의중도 마땅히 반영돼야 한다.
미국은 대북제재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 하고, 북한은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국이 새로운 셈법을 들고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판문점에서의 깜짝 회동에도 상황은 여전히 복잡하다. 필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트럼프, 김정은, 문재인 세 정상의 마음가짐을 추정, 분석해보고자 한다. 이들의 생각이 향후 한반도의 운명, 더 나아가 세계평화와 국제질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임은 자명하다.
“으르렁대지 말고 조용히 있어달라”
[동아DB]
그리고 정말로 김 위원장이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맞이하며 “My Friend”라고 했다. 이 말 한마디로 핵심적인 메시지를 던졌다고 본다. ‘당신은 내 친구이므로 앞으로 나를 비방하거나 실망시키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다오’란 뜻이다. 친구끼리는 사이좋게 지내야지, 싸우는 것은 옳지 않다는 보통의 관념에 맞게 앞으로 함께 일을 풀어나가자는 의미다. 실무협상에서 이견이 잘 좁혀지지 않더라도,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충분한 대가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으르렁대지 말고 조용히 있어달라는 바람이다.
또 내년 말 미국 대선 때까지 천천히 상황을 풀어나가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가 보인다. 대선 직전 대타협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북한에 슬쩍 주면서, 그러나 이는 대선 판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읽힌다.
김 위원장의 생각은 어떨까. 그는 판문점으로 웃으며 달려와 한미 두 정상에게 반가움과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오랫동안 이어온 양국의 적대관계를 청산하자”며 북한 땅을 밟아볼 것을 제안했다. 다시 말해 경제제재를 좀 풀어달라는 뜻이다.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에만 매달리지 말고 북한의 숨통을 좀 트이게 해주면 좋겠다는 속마음이 읽힌다.
김 위원장은 판문점으로 오면서 많은 기대를 하는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 내심 걱정되고 불안했을 것이다. 트럼프의 파격적인 제안에 파격적인 응답을 내놓은 것은 트럼프 대통령을 자신에게 더욱 유리한 방향으로 돌려놓고자 하는 노력으로 보인다. 그는 ‘당신이 통 큰 마음을 먹으면 우리의 문제가 다 풀립니다’라는 자신의 속마음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자신은 북한 유일의 권력자지만 미국 대통령은 혼자서 다 결정할 수 없다. 의회와 여론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은 ‘당신도 나처럼 강한 리더십과 권력을 행사해 양국 문제를 해결해봅시다’라며 상대의 권력 욕구를 자극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비록 국력 차이는 크지만 미국에서 당신(트럼프)의 힘보다 북한에서 나(김정은)의 힘이 비교 불가할 정도로 세다는 것도 은연중에 과시했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북한을 통치하려면 핵 보유가 필요하므로 이쯤에서 그만하고 넘어가자는 절박함, 그리고 그 아래 깔린 공포심도 엿보였다.
감추지 못하는 절박함과 불안감
6월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미국과 북한의 두 정상이 만난 모습을 시민들이 서울역사 내 TV로 지켜보고 있다. [뉴시스]
[동아DB]
하지만 중도 세력이 점차 많아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문 대통령은 좀 더 확실한 결실을 맺고 싶을 것이다. 자신의 중재 아래 북한은 비핵화하고, 미국은 대북 경제제재를 해제한다면 가장 좋은 결론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직접 만나 대화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한반도 운전자’임을 자처했지만, 트럼프와 김정은에 의해 한반도가 운전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니 체면도 좀 구겨졌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진정한 평화주의자요, 민족주의자라는 생각으로 ‘체면 좀 구겨지면 어떤가’라며 합리화할 수 있다. 이번 회동에서 자신이 먼저 ‘두 분 또는 우리 셋이 판문점에서 만나면 어떨까요’ 하고 제안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 역시 남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이 또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임기 내 업적을 달성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되든 안 되든 개성공단 재개와 남북철도 연결을 계속 주장할 것이다. 이 일들이 실현되려면 트럼프 대통령의 용인이 반드시 있어야 하므로 내심 불안감을 감출 수도 없다.
결론적으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둘 다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를 유심히 살펴야 하는 처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마음도 들여다봐야 한다. 한반도의 운명이 참으로 기구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잘 버텨온 우리 민족이기에 앞으로도 잘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