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으로 갔다 되돌아오고 있다.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이후 교착상태에 빠졌던 북·미 간 비핵화 협상 동력이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회복됐다는 점은 성과로 꼽힌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53분간 만나고 한국을 떠난 뒤 ‘북한 비핵화’는 또다시 실무협상팀 몫으로 남게 됐다.
빅터 차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미 정상회동에 대해 “리얼리티 TV쇼였다”며 “대단하다. 우리는 실무 차원의 회담을 다시 이어가고자 정상회담을 했다”고 꼬집었다.
의제 협상팀이 의전 협상?
6월 30일 오후 판문점 남한 측 자유의집에서 3차 북·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그런데 이번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 역시 비핵화 협상에 실질적인 진전이 있었다기보다 실무협상을 재개하기로 한 수준에 머물렀다. 비핵화라는 난제를 실무협상팀에게 다시 떠넘긴 의전용 만남이었다는 비판론이 대두되는 이유다.
북·미 정상,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까지 포함한 남북미 정상이 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만났음에도 기대보다 우려가, 성과보다 아쉬움이 더 큰 것은 비핵화라는 알맹이보다 만남 자체에 너무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들은 “하루 전 제안해 성사된, 급조된 정상회담이라 내용이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며 “트위터로 정상회담을 제안하는 것이 정상적인 과정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이 하루 만에 이뤄지면서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할 것인가’라는 의제보다 ‘어떻게 만날 것인가’ 등 의전 및 경호가 더 시급한 문제로 대두됐다고 한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앨리슨 후커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한반도담당 선임보좌관 등은 6월 29일 청와대 만찬에 참석하는 대신, 저녁 8시 30분부터 판문점에서 북한 최선희 제1부상,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 등과 함께 다음 날 있을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촉박한 일정 탓에 북·미 실무자들은 4·27과 5·26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 당시 매뉴얼을 참고해 의전과 경호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정상회담 때 한국 경호원이 있던 자리에 미국 경호원이 서 있게 하는 식의 북·미 간 경호 및 의전 합의가 이뤄졌다는 것. 한 외교 소식통은 “정상회담 전 의제를 협의할 고위급 접촉이나 실무협상 없이 곧바로 정상회담이 이뤄졌기 때문에 하루 전날 이뤄진 실무협상에서는 회담 내용보다 회담장 좌석 배치 등 의전에 치중한 협상이 이뤄졌을 개연성이 높다”며 “북한보다 미국 측 의전과 경호 준비가 덜 됐을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지난해 판문점에서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치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회담을 준비할 수 있었지만, 경험이 부족한 미국 측은 전적으로 우리가 제공한 매뉴얼을 참고할 수밖에 없었다는 관측도 나왔다.
특히 북·미 정상회담을 실무적으로 준비한 비건 특별대표나 후커 선임보좌관 등 미국 측 인사는 비핵화 등에 대한 의제 협상을 하는 전문가이지, 동선과 경호 등 실무 의전을 다루는 전문가가 아니다.
실제로 판문점에서 남북미 3자 정상회동 때 경호와 의전은 물론, 취재 동선까지 한꺼번에 무너졌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가식 없는 리얼리티 쇼의 묘미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생사가 걸린 북한 핵문제를 쇼 하듯 성급하게 해치우는 것이 옳으냐는 의구심을 자아냈다.
트럼프 대통령 각본, 감독, 주연의 판문점 리얼리티 쇼는 한여름 밤의 꿈처럼 1시간여 만에 끝이 났다. 남은 것은 2~3주 내 실무협상이 재개돼 비핵화 협상이 본궤도에 오를지 여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