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이런 조치를 내린 것은 미국의 치안 상황이 최근 들어 갑자기 나빠졌기 때문이 아니다. 중국 정부 측 의도는 유커의 여행 제한조치를 통해 미국 정부에 압박을 가하겠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는 점에서 중국 정부가 2016년 한국 정부가 미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허용했을 때 비공식적으로 유커의 한국행을 금지한 것보다 더욱 강화된 조치라고 분석할 수 있다. 중국 정부가 대미(對美) 보복으로 여행 제한조치를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중국인의 해외여행 규모는 1억6000만 명이나 된다. 이들이 해외에서 인당 2000달러만 써도 연 3200억 달러(약 377조6640억 원)의 엄청난 돈이 움직이는 셈이다. 이에 중국 정부는 유커를 무기로 삼아 자국과 갈등을 빚거나 대립하는 국가들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지 않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을 압박하고자 유커의 대만 여행을 대폭 통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만 여행업계와 숙박업계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국제사회는 그동안 중국 정부의 이런 조치를 비판해왔지만 중국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유커, 50% 더 지출하는 큰 손
중국인 여행객들이 미국 뉴욕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왼쪽). 중국인 여행객들이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GMA]
중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대미 보복을 위한 일종의 비대칭 전략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7월과 8월 각각 340억 달러, 16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맞서 중국 정부도 같은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동일한 보복 관세로 대응했다. 예를 들어 미국 정부가 지난해 9월 2000억 달러어치 중국산 제품에 10%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 정부 역시 6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5~10% 관세를 매기며 보복했다. 또한 미국 정부는 5월 10일 2000억 달러어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10%에서 25%로 올렸다. 이에 6월 1일 중국 정부도 미국산 제품 600억 달러어치에 대해 품목별로 최대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맞대응에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는 앞으로 3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이다. 중국의 지난해 대미 수출액이 총 5395억340만 달러(약 637조450억 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제품 전체에 관세를 매기겠다는 의도다. 반면 중국 정부는 미국산 제품에 더는 보복 관세를 부과할 수 없는 처지다. 지난해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액수가 1135억 달러(약 134조1000억 원)였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 11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5~25% 보복 관세를 부과해왔다. 따라서 중국 정부로선 미국산 제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효과를 낼 수 있는 비대칭 카드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 교육부가 6월 3일 미국에서 공부하려는 학생들에 대해 ‘2019년 제1호 유학경계령’을 내린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교육부는 “미국에서 유학생 비자 심사 기간이 연장되고 비자 유효 기간이 축소되거나 비자 발급을 거절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미국 유학을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이 조치는 사실상 자국 학생들의 미국 유학을 통제하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2019년 제1호 유학경계령
중국인 유학생들이 미국 컬럼비아대 졸업식에서 졸업을 축하하고 있다. [글로벌 타임스]
중국 정부는 앞으로 영화 등 미국 문화 콘텐츠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를 내릴 수도 있다. 중국은 미국 영화와 TV 드라마 등 문화 콘텐츠의 가장 큰 해외시장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미국 영화업체 등이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 전에 중국 정부는 유커의 한국 관광 금지와 함께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K-pop) 수입을 비공식적으로 금지하기도 했다. 이렇듯 중국 정부가 미국에 대한 비대칭 보복 카드를 본격적으로 꺼내 들면서 양국의 대립과 갈등은 더욱 증폭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