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칸영화제 개막작 ‘더 데드 돈트 다이’. [IMDB]
1997년부터 2017년까지 1999년을 제외하곤 19차례 칸영화제를 찾았던 소위 ‘칸 전문가’(?)로서 내 답변은 “반반”이다. 객관적으로는 무리다. 봉 감독도 국내 기자회견에서 수상을 기대하지 않으며 초청만으로도 영광이라는 의견을 밝혔는데, 그것은 립서비스가 아니라 진심일 터이기 때문이다. 명실상부 칸의 하이라이트인 경쟁 부문 진출작 면면이 그만큼 화려하고 빵빵하다. 놀라지 말라. 총 21편의 경쟁작 가운데 무려 5편의 감독이 이미 황금야자상을 거머쥔 거장·명장이다.
‘어벤져스’급 감독들의 출사표
[IMDB]
이들 가운데 켄 로치와 다르덴 형제 감독은 두 차례나 칸을 정복했다. 각각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로제타’(1999)와 ‘더 차일드’(2005)였다. 맬릭은 ‘트리 오브 라이프’(2011)로, 타란티노는 ‘펄프 픽션’(1994)으로, 케시시는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3)로 황금야자 맛을 본 바 있다. 필자가 기억하는 한 일찍이 이렇게 다수의 쟁쟁한 황금야자상 수상자들이 자웅을 겨룬 적은 없다. 2019 칸영화제의 최대 관심사는, 따라서 이들 가운데 누가 최종 승자가 될 것인가에 쏠려 있음이 틀림없다.
화제의 초점은 물론 그들만이 아니다. 제목에서부터 이미 좀비 이야기임을 천명하는 개막작 ‘더 데드 돈트 다이’의 짐 자무시나 현존 최고의 유럽 감독이라 할 페드로 알모도바르(‘페인 앤 글로리’), 이탈리아 뉴 웨이브의 숨은 고수라 할 마르코 벨로키오(‘더 트레이터’) 역시 대가의 반열에 오른 감독이다. 현 프랑스 영화의 자랑인 아르노 데스플레생(‘오 머시!’), 팔레스타인 영화의 보물인 엘리아 술레이만(‘잇 머스트 비 헤븐’), 오스트리아의 거장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적자인 예시카 하우스너(‘리틀 조’)도 강력한 경쟁자다. 크리스티안 문쥬와 함께 루마니아 영화의 쌍두마차로 불리는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더 휘슬러스’), 월터 살레스와 더불어 브라질 영화를 대표하는 명장으로 급부상한 클레버 멘돈사 필로(줄리아노 도르넬레스와 공동 연출한 ‘바쿠라우’), 그리고 이제 갓 서른을 넘은 나이에 ‘칸의 총아’로 위상을 굳혀 ‘캐나다판 타란티노’로 불리는 그자비에 돌란(‘마티아스 앤드 맥심’)은 다크호스다.
9년간의 무관행진 종지부 찍을까
4월 22일 영화 ‘기생충’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왼쪽)과 ‘기생충’ 스틸컷. [김진환 스포츠동아 기자]
앞에서 반반이라고 했으나, 역설적으로 봉 감독의 수상 가능성을 다소 높게 점치는 것은 그래서다. 21편 중 2편밖에 되지 않는 아시아 영화니, 어찌 남다른 주목을 끌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욱이 ‘기생충’은 칸이 전통적으로 선호해온 가족 드라마 아닌가. 전원 백수로 살길이 막막하나 사이만은 나쁘지 않은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 장남 기우(최우식 분)에게 명문대생 친구가 연결시켜준 고액 과외 자리는 모처럼 싹튼 고정 수입의 희망이다. 온 가족의 도움과 기대하에 기우는 박사장(이선균 분) 집으로 향하는데,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최고경영자(CEO)인 박사장의 저택에 도착하자 젊고 아름다운 사모님 연교(조여정 분)가 기우를 맞이한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 뒤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를 미처 보지 못했으니, 평할 수는 없는 노릇. 하지만 간단한 줄거리 소개만으로도 흥미를 끌기에 모자람이 없다. 예고편으로 짐작건대 영화 분위기나 스타일 역시 큰 호기심을 유발한다. 감독이 역설했듯, 대한민국 특유의 문맥(Context)을 칸영화제 경쟁 부문 9인 심사위원단이 충분히 따라갈 수 있을까 싶긴 하나, 그런 백수 가족 이야기가 어찌 우리네 대한민국의 것이기만 하겠는가.
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AP뉴시스]
남성 넷, 여성 넷으로 구성된 나머지 8인의 심사위원단에 엘르 패닝을 포함해 배우가 2명밖에 되지 않는 것도 ‘기생충’의 수상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다. 배우를 무시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영화 보기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만큼 감독들에 비해선 감정이나 취향에 적잖이 좌우될 수밖에 없을 터이기에 하는 말이다. 모쪼록 '기생충'이, 이창동 감독의 '시'가 2010년 각본상을 안은 이후 2018년 '버닝'에 이르기까지 8년간 이어진 무관행진에 종지부를 찍어주기를 바란다.
제2의 제인 캠피언 나올까
여성 감독이 지난해보다 1명 더 늘어 4명이라는데, 그들이 어떤 성과를 일굴지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그 4명의 감독은 칸과 인연이 그다지 끈끈하지는 않았다고. 예시카 하우스너를 비롯해 셀린 시아마(‘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온 파이어’), 쥐스틴 트리에(‘시빌’)는 이번이 첫 경쟁 진출이고, 마티 디오프(‘아틀란티크’)는 아예 칸 입성이 처음이란다. 남성 감독의 경우도 라지 리(‘레미제라블’)는 칸 첫 초청이며, 아이라 잭스(‘프랭키’)는 첫 경쟁 부문 초청이다.과연 칸 최고 영예는 어느 나라, 어느 영화, 어느 감독의 품에 안길까. 칸 역사상 최초로 황금야자상 3회 수상자가 나올까. 한 차례 수상 경력이 있는 세 감독 중 그 누군가 두 번째로 그 영예를 가져갈까. 자무시나 알모도바르처럼 비록 황금야자상은 받지 못했어도, 현존 세계 최고 감독으로 평가돼온 거장이 그 주인공이 될까. ‘피아노’의 제인 캠피언 이후 26년 만에 여성 감독이 위너가 될 수 있을까. 칸의 신예 가운데 누가 파란을 일으킬까. 두 편의 아시아 영화는 어떤 결과를 이뤄낼까…. 이래저래 올해 칸영화제는 그 어느 해보다 관전 포인트가 즐비한, 흥미만점의 영화제이지 않을까 싶다.
한편 한국 영화는 ‘기생충’ 외에 이원태 감독의 ‘악인전’이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서, 연제광 감독의 ‘령희’가 학생 단편 경쟁 부문 시네파운데이션에서 공식 선보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7년 단편애니메이션 제작지원작’인 정다희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움직임의 사전’이 사이드바로 불리는 병행 섹션, 감독 주간에서 선보인다.
문득 밀려드는 의문. 왜 칸은 지난 2014년 창감독(본명 윤홍승)의 ‘표적’ 이래, 2015년 ‘오피스’(홍원찬), 2016년 ‘부산행’(연상호), 2017년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변성현)과 ‘악녀’(정병길), 2018년 ‘공작’(윤종빈), 그리고 2019년 ‘악인전’에 이르기까지 6년 연속 동일한 심야 상영 섹션에 한국 영화를 한두 편씩 공식 초청하는 것일까. 한국 액션영화를 향한 칸의 각별한 애정일까. 영화제 흥행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내셔널 시네마’로서 한국 영화에 어떤 고정관념이 덧씌워지지 않을까 싶은 우려에서 가져보는 의문이다. 그리고 크고 깊은 유감 하나. 공식 섹션인 칸 클래식에 30편 가까운 세계 영화사의 문제작이 대거 선보이는데, 제작 100주년을 맞이한 한국 영화는 왜 한 편도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