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울산 울주군 상북면 향산동길 48
준공 2015년 9월
설계 발효건축(김민규)
[홍중식 기자]
울산 울주군 상북면 향산리에 있는 복순도가는 ‘샴페인 막걸리’로 유명한 술도가다. 이곳 막걸리는 살짝 흔든 상태에서 병뚜껑만 돌려 공기를 약간 주입해도 탄산거품이 올라온다. 인공탄산이 들어 있을 경우 뚜껑을 열면 탄산이 한꺼번에 올라온다. 하지만 복순도가 막걸리는 병을 45도 각도로 눕히고 뚜껑을 닫았다 열었다를 반복하면 그때마다 탄산이 오르락내리락한다. 3대째 이어온 전통누룩으로 물에 담긴 쌀을 28일 이상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생성된 천연탄산 효과라고 한다. 향을 맡으면 복숭아 같고, 사과 같은 상큼한 향이 난다. 이 역시 전통누룩의 고유한 향이다.
항공사진으로 본 울산 울주군 복순도가의 술도가. 향산마을 일대 논에 둘러싸인 걸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제공 · 발효건축]
복순도가는 김녕김씨 일가에서 전통누룩으로 술을 빚던 가양주(家釀酒)를 브랜드화했다. 명절 때마다 집안 전통방식으로 빚어 동네 사람들과 나눠 마시던 술을 김정식-박복순 부부가 건축과 수학을 전공한 두 아들과 함께 2000년부터 프리미엄 막걸리로 제품화했다. 업체명은 직접 손으로 술을 빚는 박복순 씨 이름을 따서 지었다.
흙, 벼, 쌀, 술의 순환이 담긴 건축
논농사 짓는 농촌마을 한복판에 위치한 복순도가의 다양한 풍경들. 복순도가 술맛의 비결로 꼽히는 전통 항아리들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사진 제공 · 발효건축]
원래 논에 지어진 이 술도가는 먼저 독특한 인디언잉크 빛깔부터 눈길을 잡아끈다. 낮에 햇빛이 반사될 때도 범상치 않지만 타는 저녁놀을 받거나 밤에 자체 조명을 받으면 신비해 보이기까지 한다. 놀랍게도 이는 볏짚을 태운 잿빛을 형상화한 것이다.
“전통 쌀막걸리를 빚는 데 볏짚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누룩을 빚을 때도 볏짚이 필요하고 한 번 쓴 항아리를 소독할 때도 볏짚을 태워 소독합니다. 제가 1년간 쌀농사 짓는 것을 죽 관찰했는데,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할 때 볏짚을 태우는 것이 제의의 속성이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볏짚을 태운 재로 색깔을 내고, 일부는 볏짚을 꼰 새끼를 가미한 콘크리트로 외벽을 지었습니다. 지붕 역시 그 빛깔에 맞춰 특별 주문한 징크(아연) 지붕을 올렸습니다. 그 대신 내부는 이곳 황토로 빚은 벽돌로 꾸몄습니다.”
[사진 제공 · 발효건축]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술도가 내부와 천정, 외벽 사진. 태운 볏짚을 섞은 콘크리트로 독특한 잿빛을 빚어낸 복순도가의 외벽에선 볏짚을 꼰 새끼를 포함해 다양한 볏짚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빛깔을 내고자 인디언잉크 빛의 징크(아연) 천장을 특수 주문해 올렸다. 외부로 술도가의 빛을 흘려보내기 위해 외벽과 천장 사이에 길게 유리창을 설치했다. [홍중식 기자]
술 익는 소리, 숨 쉬는 모습을 형상화하다
복순도가는 손으로 빚은 손막걸리라는 점을 마케팅 포인트의 하나로 잡는다. 박복순 씨가 막걸리를 빚는 모습과 이산화탄소 기포가 발생하는 모습도 동영상으로 제작했다. [사진 제공 · 발효건축]
[사진 제공 · 발효건축]
뚜껑을 딸 때 탄산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투명한 통을 사용하는 점도 차별화 포인트다. [사진 제공 · 발효건축]
복순도가를 관리하고,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으로 술을 빚는 김정식-박복순 부부 [홍중식 기자]
어떤 면에서 복순도가 자체가 술항아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아리 안에서 술이 익어가는 소리와 모습은 볼 수 있지만 완전히 술이 익을 때까지는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 복순도가 역시 숙성실 외에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지만, 지붕과 외벽 사이에 환한 유리창을 설치해 안에서 작업할 때 실내에 은은한 조명을 흘려보내고 마이크를 통해 술 익는 소리를 들려줌으로써 그 안에서 술이 익어가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그 술도가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숙성실. 황토색 벽돌 사이로 뚫어 놓은 일곱 개의 유리창을 통해 술이 익어가는 내부를 엿볼 수 있도록 했다. [홍중식 기자]
“복순도가 막걸리는 울주군에서 재배된 쌀과 미나리꽝으로 유명한 울주군의 물, 그리고 이곳 토양에서 배양된 전통누룩으로 빚어집니다. 그래서 복순도가가 위치한 향산마을 공동체의 삶이 투영된 흙, 벼, 볏짚, 누룩을 오브제 삼아 그분들의 삶이 온축된 공간을 지어보고자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