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광둥성 선전에 있는 화웨이 본사 건물. [위키피디아]
1983년 대규모 감군 당시 그는 군복을 벗고 광둥성 선전에 있는 국영 석유기업에 배치됐다. 4년 뒤인 1987년 광둥성 선전에서 자본금 2만1000위안(약 362만 원)으로 중국 우전부(郵傳部·한국의 옛 정보통신부) 소속 정보통신연구소 연구원 5명과 함께 화웨이를 창업했다. 당시 화웨이는 홍콩으로부터 소형 교환기를 수입해 판매했다. 1992년 독자적으로 개발한 전자식 교환기를 쓰촨성 부성장을 지낸 장인의 도움으로 국영기업 등에 대거 납품하면서 성장가도를 달렸다. 1990년대 후반에는 중국 메이저 통신장비업체로 부상했으며, 특히 인민해방군의 프로젝트를 독점 수주해왔다.
2004년 글로벌시장 진출 당시엔 중국 국가개발은행으로부터 100억 달러(약 11조7150억 원)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 2012년 이후 매년 30% 이익증가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현재 170개국에 통신장비를 판매하는 등 통신장비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31%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5세대(5G) 통신 분야에서도 선두주자다. 글로벌 통신기업 40개 업체와 5G 통신장비 공급 계약을 맺었고, 설치된 기지국 수도 7만 곳에 이른다. 스마트폰 부문에서도 미국 애플을 제치고 삼성전자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런정페이 회장 지분은 1% 불과
화웨이 스마트폰 생산라인. [Huawe]
화웨이라는 회사 이름은 ‘중화민족에 미래가 있다’는 뜻의 ‘중화유위(中華有爲)’를 줄인 말이다. 런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말 그대로 군대식이다. 그는 1997년 6장 103조로 구성된 ‘화웨이 기본법’을 만들고 이를 경영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이 법의 제4조 ‘정신’에서는 ‘조국을 사랑하고 인민을 사랑하고 사업을 사랑하고 생활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응축된 힘의 원천이다’라고 강조한다. ‘조국’이 가장 먼저 나온다. 제5조 ‘이익’에서는 ‘우리는 결코 레이펑(雷鋒)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돼 있다. 레이펑(1940~1962)은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을 위해 멸사봉공하다 과로사한 인민해방군 병사로, 레이펑처럼 멸사봉공 정신이 있는 사원을 우대하겠다는 뜻이다.
런 회장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마오 전 주석이다. 또 제7조 ‘사회적 책임’에선 ‘화웨이는 산업을 통해 국가에 보답한다. 위대한 조국의 번영을 위해, 중화민족의 진흥을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민간기업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 매우 특이하다.
이 때문에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화웨이가 중국 인민해방군과 국가안전부 등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도 화웨이를 자발적으로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지령에 따라 기밀을 훔치고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며 미국의 적성국과 수상한 거래까지 하는 기업이라고 규정했다. 미국 정부가 화웨이의 5G 장비 등에 대해 사용 금지 조치를 내린 근거다.
최근 화웨이 지배구조에 대한 미국 학자들의 보고서가 발표되면서 화웨이의 오너가 누구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도널드 C. 클라크 미국 조지워싱턴대 로스쿨 교수와 크리스토퍼 볼딩 풀브라이트대 베트남학교(FUV) 교수는 보고서(4월 17일자)에서 “직원 노조가 화웨이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속임수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직원들로 구성된 무역노조위원회(무역노조위)가 화웨이의 지분 99%를 갖고 있지만 실체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며 “무역노조위가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구성원과 리더들이 누구인지 베일에 가려 있다”고 밝혔다.
대주주 노조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깜깜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 [BAIDU]
이런 의혹에 대해 화웨이 이사회의 장시성 비서실장은 “무역노조위가 직원들의 주식을 관리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중국 유한회사는 주주 50~200명을 둘 수 있는데 화웨이 직원(18만8000명)은 이보다 많아 일종의 가상 주식을 배분하고 이를 무역노조위에서 관리만 한다는 것이다. 무역노조위가 화웨이의 대주주지만 경영은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런 회장도 “화웨이는 민간기업이며, 중국 정부나 공산당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국 ‘뉴욕타임스’는 “화웨이는 창업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지분이 외부에 매각된 적이 없고, 심지어 직원이 퇴사하면 지분을 사들이기까지 한다는 점에서 화웨이가 누구 소유인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화웨이의 지배구조를 보면 ‘베이징’으로부터 독립돼 있다는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렇듯 전 세계적으로 최첨단 기술을 보유한 화웨이의 지배구조는 글로벌 500대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베일에 싸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