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대표적 재건축 예정 단지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동아DB]
10년 전 ‘인구공포론’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자주 등장하던 문구다. 그러나 적어도 최근 5년간 인구 감소와 주택 가격의 상관성을 확인해보면 ‘퍼펙트스톰’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다.
오히려 지난 5년간 인구가 6만 명이나 증가한 충남의 주택 가격은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오히려 감소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쯤 되면 오히려 ‘인구가 감소할수록 주택 가격이 오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단순히 인구의 증가 혹은 감소로는 장기적인 주택시장 흐름을 설명하기 어렵다. 필자 역시 건설사에서 실무를 담당하며 인구통계 가운데 어떤 것이 그 지역 주택시장의 중·장기 흐름을 잘 설명하는지 고민했던 경험이 있다. 인구통계를 제쳐놓고 주택시장의 미래를 예측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미래예측을 위해 여러 인구 데이터를 검증해가던 중 잘 변하지 않으면서 지역 주택시장의 중·장기 흐름을 확연히 구분해주는 인구통계를 찾아냈다. 바로 ‘인구밀도’ 데이터다.
‘인구’가 주택 수요를 대표하는 통계라면, 주택 공급(가능성)을 대표하는 통계는 ‘토지’라고 할 수 있다. 주택은 다른 재화와 달리 공장에서 무제한 찍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을 땅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택은 한번 건축되면 적어도 20년간은 그 자리에 있기 마련이라 공급 탄력성이 낮은 재화다. 따라서 ‘주택을 건축할 가용한 땅이 얼마나 있는가’로 해당 지역 주택 공급의 여지 혹은 가능성을 예측해볼 수 있다.
인구밀도 높을수록 집값 상승 확률 높아
인구밀도 통계는 이러한 주택의 수요(인구)와 공급(토지)을 동시에 보여주는 지표로,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은 ‘아파트 지을 땅은 부족한데, 인구가 몰려 사는 곳’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은 중·장기 주택 가격 상승 확률이 높은 것이다.‘표’의 데이터가 그것을 증명하는데 서울, 부산, 대전, 대구 모두 인구밀도가 km2당 2000명 이상 되는 지역들로 인구 감소와 상관없이 높은 주택 가격 상승을 기록했다. 특히 서울 인구밀도는 1만6000명가량으로 다른 도시 대비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수준이다. 서울 인구가 1000만 명 밑으로 떨어져도 왜 서울 집값이 지난 5년간 상승했는지 1만6000명의 인구밀도 통계가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인구밀도가 낮은 충청, 경상 지역은 지난 5년간 꾸준히 인구가 증가했지만 도시개발사업 등 주거용 토지 확장에 따른 대규모 주택 공급으로 낮은 주택 가격 상승률을 기록했다.
인구밀도에 따른 주택 가격 상승의 격차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글로벌 도시전문가 리처드 플로리다는 최근 발간한 저서에서 지난 30년간의 미국 대도시 데이터를 통해 ‘자연지형’의 제한에 따른 주택 가격의 뚜렷한 격차를 제시하고 있다.
‘표’에 나타난 우리나라의 사례에서도 인구가 증가한 충청·경상권의 주택 가격이 미미한 상승폭을 기록했음을 떠올려보자. 이 대목에서 ‘인구 증가=주택 가격 상승’에 반하는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어느 지역의 인구 증가는 대규모 주택 공급에 딸려오는 결과로 오히려 향후 해당 지역의 주택 가격이 안정화되거나 심지어 하락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인구 100만 명의 창원시, 80만 명의 청주시는 지난 5년간 주택 공급 후유증으로 주택시장이 몸살을 앓고 있다.
‘인구밀도’ 외에 적어도 향후 10년간 주시해야 할 통계는 ‘인구고령화’가 아닌 ‘주택고령화’다. 최근 통계 기준(2019년 2월)으로 입주 5년 차 이내인 젊은 아파트와 입주 10년 차를 넘긴 고령아파트의 3.3㎡당 차이는 ‘평균 350만 원’에 달한다. 이를 국민주택 규모인 전용면적 84㎡로 환산하면 1억 원이 넘는다. 다시 말해 비슷한 입지의 젊은 주택과 고령주택은 평균 1억 원의 시세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그런데 입주 10년 차를 넘긴 아파트의 비중이 현재 72%에 육박해 ‘주택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다.
서울 주택고령화율 83%, 신축 가치 높아져
주택고령화로 서울 신규 아파트의 희소가치가 증가하는 와중에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서울에 고분양가 사업장 기준을 적용해 분양가를 주변 시세의 110% 이내로 통제하고 있다. 정부의 청약 규제로 서울 1순위 청약률이 감소하긴 했지만, 청약 미달 혹은 부적격 당첨으로 남은 ‘잔여세대’는 현금 부자들이 가져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심화하는 주택고령화 속에서 주변 시세의 110%를 넘지 않는 ‘새 아파트’의 가치가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2030년대까지는 인구 충격에 따른 퍼펙트스톰이 없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합계출산율은 인구 충격의 시작점이 2040년에 도래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인구 감소 이외 변수도 고려해야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로 떨어지면서 주택 가격 하락도 우려되고 있지만 상관관계는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한 산부인과의 신생아실 모습. [동아DB]
지금까지 주택시장의 오래된 테마인 인구에 대한 미신을 팩트로 벗겨봤다. 적어도 향후 10년 동안은 인구 증감이 아닌 인구밀도에, 인구고령화가 아닌 주택고령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데이터는 말한다. 또한 먼 미래이긴 하지만 2040년에는 합계출산율의 충격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다만 2040년 이야기를 굳이 현재로 당겨와 ‘지금 당장 집을 팔아야 한다’ 같은 극단적 공포론을 조장하거나 맹신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