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균]
[김도균]
2. 2017년 가장 많이 팔린 과자는 빼빼로입니다. 1년간 902억 원어치가 팔렸습니다. 꼬깔콘(901억 원), 초코파이(865억 원), 새우깡(786억 원)도 만만치 않지만, 빼빼로의 위상을 넘지는 못했습니다.
3. 빼빼로가 항상 많이 팔리느냐, 그렇진 않습니다. 빼빼로데이가 포함된 지난해 사사분기(9~12월) 매출액이 550억 원으로 연간 매출의 61%를 차지했습니다.올해 이사분기(4~6월) 과자 · 초콜릿류 매출액 순위를 보면 빼빼로는 121억 원으로 13위에 불과합니다. 지난해 출시된 ‘신입생’ 꼬북칩(140억 원 · 8위)보다 20억 원가량 덜 팔렸습니다.
4. 그런데 빼빼로는 ‘원조’가 따로 있다고 합니다. 일본 글리코사의 ‘포키(Pocky)’입니다. 1966년 출시됐으니, 1983년에 탄생한 빼빼로보다 열일곱 살 많은 형인 셈입니다. 글리코는 가는 막대과자 ‘프리츠(Pretz)’를 먼저 내놨고, 거기에 초콜릿을 입혀 포키를 선보였습니다.
‘빼빼로’의 원조로 알려진 ‘포키’와 ‘프리츠’. 해태제과와 일본 글리코의 합자회사인글리코해태를 통해 국내에서 생산, 판매되고 있다.
5. 일본 과자가 원조인 한국 과자는 빼빼로만이 아닙니다. 꼬깔콘은 일본 하우스식품의 ‘돈가리콘(とんがりコ-ン)’, 새우깡은 일본 가루비의 ‘갓파에비센(かっぱえびせん)’이 원조인 것으로 소문났습니다.
[김도균]
7. 2017년 매출액 순위 1~4위가 모두 외국에 원조를 두고 있는 셈입니다.
8. 초코송이, 고래밥, 카라멜콘땅콩 등도 일본 과자를 모방한 것으로 의심(?)받습니다. 메이지의 ‘기노코노야마(きのこの山)’, 모리나가의 ‘옷톳토(おっとっと)’, 토하토의 ‘갸라메루콘(キャラメルコ-ン)’이 각각의 원조라는 겁니다.
9. 제과업체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다른 회사는 베꼈을지 몰라도 우리는 아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그 나름의 차별점이 있다”고요. 하지만 맛, 과자 모양, 패키지 디자인 등이 비슷한 것은 사실입니다.
10. 한국 제과산업의 뿌리가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제과업을 하던 일본 기업들에 있다는 점, 1960~80년대에는 비단 제과뿐 아니라 자동차, 가전 등 거의 모든 산업이 선진국인 일본과 미국을 벤치마킹하며 성장해왔다는 점에서 그 시절 ‘외국 과자 따라 하기’는 이해할 만합니다.
1970년대 금성전자 공장(위)과 현대자동차 쏘나타의 1세대 모델.
11. 하지만 문득 궁금해집니다.
12. 1980년대 어린이는 ‘모래요정 바람돌이’ ‘빨강머리 앤’ 같은 일본 TV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며 자랐습니다.반면 요즘 어린이는 ‘뽀로로’ ‘헬로 카봇’ ‘콩순이’ 등 국산 만화를 주로 시청합니다. 그런데 왜 과자는 여전히 일본이 원조인 과자가 대세일까요.
13. 두 아이의 아빠 최모(41) 씨는 “얼마 전 일본 여행을 갔을 때 아이들이 편의점에서 자기들이 평소 즐겨 먹는 새우깡과 초코송이로 오해하고 갓파에비센과 기노코노야마를 골랐다”며 “과자는 왜 독립하지 못했는지 이유가 궁금해졌다”고 말했습니다.
14. 제과업계에서는 그 이유에 대해 “사람들 입맛이 좀처럼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입맛만큼 무서울 만큼 정확하고 오래도록 변치 않는 것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shutterstock]
[김도균]
카카오 이모티콘 어피치와 유사하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돼 히트한 오리온 ‘마이구미 복숭아’.
17. 하지만 일본 과자 모방 의혹을 받는 과자는 ‘장수 과자’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요즘도 심심찮게 일본 과자를 베낀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신제품이 출시되곤 합니다.
히트 신제품으로 꼽히는 오리온 ‘꼬북칩’도 일본 과자를 베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18. 전문가들은 제과업계가 좀 더 적극적으로‘K-과자’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합니다. 과거에는 일본 식(食)문화가 훨씬 앞서 있었지만, 현재는 꼭 그렇지만도 않기 때문입니다. 한류 붐을 타고 K-푸드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요즘입니다.
[shutterstock]
“지금도 일본 과자를 벤치마킹한다는 것은 국내 제과업계가 쉬운 길을 택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국내 제과산업의 역사도 50년이 넘은 만큼 역량은 충분하다고 본다. 한국의 여러 산업이 글로벌 선두를 달리고 있다. 제과업계의 각성이 필요한 때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