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뉴시스
3년 후 김재박 감독은 2006 도하아시아경기대회를 통해 명예 회복을 노렸다. 류현진과 손민한이라는 최고 투수들이 있었기에 금메달을 자신했다. 특히 일본은 아시아경기대회에 프로선수들을 보내지 않아 사실상 적수는 대만뿐이었다. 그러나 ‘도하 참사’라고 기억될 만큼 참담한 패배를 당했다. 대만과 일본에 완패, 동메달을 목에 걸고 귀국한 야구 국가대표팀을 환영하는 시선은 없었다. 이후 김 감독에게서 ‘명장’이라는 타이틀은 사라졌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한국 프로야구를 지배하던 현대를 이끈 최고 야구감독이었지만 ‘국내용’ ‘선수복(福)’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독이 든 성배,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 연속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류중일 삼성 라이온스 감독은 201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을 지휘했지만 복병 네덜란드에게 패하며 1라운드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성적을 냈다. WBC 1라운드 탈락에 대한 비난은 류 감독이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을 딴 이후에도 종종 이어졌다.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를 왜 ‘독이 든 성배’라 부르는지 느껴지는 사례들이다. 수십 년간 쌓은 선수와 지도자로서의 명예가 단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자리가 국가대표 사령탑이다. 최근 수년간 국가대표팀의 선전으로 팬들 사이에 ‘야구만큼은 우리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자긍심이 생겼다. 프로야구의 강력한 경쟁력이다. 그러나 그만큼 눈높이도 높아졌다. 가장 명예스러운 자리지만 모두가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한사코 고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두가 큰 두려움에 국가대표팀 감독을 망설일 때마다 김인식(68) 감독은 “국가가 있고 야구가 있다”는 말을 남기며 지휘봉을 잡았다.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은 11월 21일 일본 도쿄돔에서 미국 팀에게 승리하며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프리미어12 초대 우승을 차지했다. 이틀 전인 19일 일본과 준결승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후 결승에 올라 우승까지 했다. 프리미어12에 출전한 대표팀은 주요 선수들의 부상과 해외 진출 등으로 대회 전부터 역대 최약체 팀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현역 감독들은 모두 대표팀 사령탑을 고사했다. 결국 2009년을 끝으로 현장을 떠나 있던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이 대표팀을 맡았다.
대표팀 사령탑으로 2002 부산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과 세계 최고 선수들이 다투는 WBC에서 4강(2006), 준우승(2009)을 이끈 김인식 감독이었지만 대회 직전 주축 투수 3명이 불법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불운까지 겹쳤다.
그러나 김 감독은 또 한 번 우승을 차지했다. “모든 스포츠는 선수가 잘하면 감독도 올라가게 돼 있다. 프리미어12 우승은 선수들이 잘해줬고 코치들이 제구실을 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모든 공을 선수와 코치들에게 돌렸다. 하지만 김 감독이 아니었다면 우승까지는 힘들었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11월 2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15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프리미어12’ 미국과 결승전에서 8-0으로 승리해 우승한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김인식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다. 스포츠코리아
카리스마가 아니라, 마음으로 끌리는 사람
김인식 감독의 리더십은 과연 어떤 힘을 갖고 있을까. 먼저 김 감독은 주위에 적이 없다. 야구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다. 불같이 화를 내거나 강력한 카리스마를 구축하지도 않지만 많은 선수나 코치가 “마음이 먼저 끌리는 분”이라고 말한다. 김 감독이 두산 베어스 사령탑으로 있던 시절 소속 선수였던 정수근 스포츠 해설가는 지금도 연말이면 김 감독의 운전기사를 자청한다.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어 바쁘지만 “감독님 모실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 달려간다. 한번 인연을 맺은 선수들은 김 감독의 따뜻한 리더십을 잊지 못한다. 박찬호는 대표팀에서 짧게 만났지만 한국에 올 때마다 김 감독을 찾아가 함께 식사를 했다. 류현진은 CF 제의가 들어오자 “감독님과 함께 찍고 싶다”며 특별한 보은을 하기도 했다. 미국 진출 이후 잘 던질 때나 못 던질 때나 김 감독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했다.프리미어12는 선수 구성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선동열 전 KIA 타이거즈 감독, 이순철 전 LG 트윈스 감독, 김시진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 송진우 해설위원, 김동수 LG 2군 감독 등 초호화 코칭스태프를 구축했다. 김인식 감독이 아니면 한 팀으로 모을 엄두조차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메이저리그 도전을 앞둔 박병호와 김현수, 그리고 일본에서 막 시즌을 끝내고 역시 미국 무대 진출을 계획한 이대호도 김 감독이라는 큰 산 아래 모두 모였다.
큰 경기에 강한 김인식 감독 특유의 전략·전술도 대표팀 선수들에게는 강한 믿음으로 작용했다. 정대현, 우규민, 심창민, 이태양 등 4명의 잠수함 투수를 선발했을 때 의아한 시선을 보내는 이도 있었지만, 우완 정통파 강속구 투수가 부족한 대표팀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차선책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안정된 제구가 돋보이는 정대현 등 잠수함 투수들의 활약 속에 대표팀 마운드는 프리미어12 8경기에서 방어율 1.93이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올렸다. 2006 WBC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박찬호를 마무리투수로 기용해 4강 신화를 썼던 김 감독 특유의 상식 파괴 전술이다.
모든 스포츠 종목을 통틀어 김인식 감독은 유일하게 ‘국민감독’이라는 대단히 명예로운 호칭을 갖고 있다. 가장 최악의 순간에 모든 전력을 한 곳으로 모아 큰 성과를 얻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김 감독은 프리미어12를 치르며 “감독도 패배를 많이 경험해야 한다. 좋은 팀에서 늘 이기다 보면 감독이 잘해 이긴다고 착각할 수 있다” “국가대표 감독은 나라를 위하는 뜨거운 가슴, 경기를 풀어가는 냉철한 머리, 그리고 선수들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이 있으면 해낼 수 있다” 등 오래도록 기억될 말을 여럿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