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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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저하의 진짜 이유

고학력 여성일수록 결혼 안 하는 21세기 현상…답은 노동시장에 있다

  • 김창환 미국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 chkim.ku@gmail.com

    입력2015-12-07 11:2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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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산율 저하의 진짜 이유

    동아일보

    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정부는 12월 중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주재하고 5년간 150조 원에서 최대 200조 원을 투입하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지금까지 여러 정책적 대안을 내놓았고 100조 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비용을 투입했지만 아직까지 가시적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뭐가 부족해서일까.
    혹자는 출산율정책을 정권 비판의 소재로 삼기도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대통령직속 기관으로 위원회를 만들고 저출산정책을 시행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장관 소속으로 위원회를 격하했고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직속 기관으로 다시 격상했지만 별 대책이 없었다는 식이다. 그러나 결과가 나오지 않는 정책으로 정부를 비난하기는 쉽지만, 정부 정책이 항상 효과를 발휘하기는 어렵다. 천문학적 비용을 투입한 저출산 대책이 완전히 실패한 것인지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한국 합계출산율은 2014년 현재 1.21이다. 한 여성이 전체 가임 기간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가 평균 1.21명이라는 얘기다. 인구학자들은 한 사회가 같은 인구수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을 2.1 정도로 본다. 현재의 초저출산율이 지속되면 한국은 장기적으로 인구가 줄어들고, 극단적으로 민족 자체가 소멸한다. 일반적으로 경제 선진국이 발전도상국보다 낮은 출산율을 보이지만 한국은 그중에서도 유독 낮은 편이다. 전 세계 224개국 중 219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는 가장 낮다. 미국은 2.01이고 프랑스는 2.08, 스웨덴은 1.91이다. 한국과 비슷하게 출산율이 낮은 국가는 일본,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경제가 발전한 아시아 국가들이다.

    보육 부담? 혼인 부담!

    지금까지 저출산 대책은 육아 부담을 줄여주는 보육정책에 초점이 맞춰져왔다. 저출산 대책 예산 가운데 절반 정도가 영·유아 보육료 지원이다. 육아 부담을 줄여서 출산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을 없애는 것이 정책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최근 인구학 연구에 따르면 초저출산이 지속되는 가장 큰 원인은 결혼 후 출산 기피가 아니라 결혼 자체의 감소다. 2012년 ‘한국인구학회지’에 발표된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991년 이후 합계출산율 감소 전체를 기혼 여성의 비율 감소로 설명할 수 있다. 수년간 100조 원을 투입했던, 육아를 보조해 기혼 여성의 출산율을 높이는 정책은 사실 일정 정도 성공을 거뒀다. 기혼 여성의 출산율은 저출산 대책이 시행된 2005년 이후 증가해 결혼 감소에 따른 출산율 저하를 미약하나마 상쇄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기존 저출산정책은 성공했음에도 정책의 목표 자체가 잘못돼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혼인율 감소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복지 수준이 낮은 미국과 영국이나, 복지 수준이 높은 스웨덴 같은 북유럽 복지국가에서도 모두 혼인율이 감소하고 있다. 실제 혼인율은 이들 서구 국가가 한국보다 더 낮다. 그럼에도 출산율은 서구 국가들이 한국보다 높다. 왜 그럴까.
    이들 서구 국가와 한국 등 아시아 국가의 큰 차이점은 미혼 여성의 출산율이다. 한국은 미혼 여성의 출산율이 매우 낮지만 서구에서는 결혼과 출산이 분리된 현상이다. 스웨덴(55%), 노르웨이(55%), 덴마크(46%) 등 북유럽 복지국가에서 태어나는 유아의 절반 정도가 혼외 출산이다. 프랑스(53%)와 영국(45%)도 다르지 않고,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미국도 2012년 현재 41%의 아이가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서 태어났다. 이에 반해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혼외 출산 비율이 1.5%로 일본(2.0%)과 더불어 독보적으로 낮다. 한국 사회도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고 혼외자를 백안시하는 문화가 바뀌어야겠지만, 그렇다고 혼외자 비율이 높은 서구의 행태를 따라갈 필요는 없다. 높은 혼외자 비율은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낳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는 대책은 혼인율을 전반적으로 높이는 것이다. 혼인 장려는 젊은이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라고 강요하거나 “우리 때는 안 그랬다”고 윽박지른다고 이뤄질 리 없다. 집값 지원 등 일회성 지원의 효과도 얼마나 클지 의심스럽다. 혼인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삼포세대’가 겪는 노동시장에서의 전반적 어려움, 특히 여성의 어려움을 줄여야 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노동시장에 대한 대책 없이 혼인율을 높이기란 어렵다는 얘기다. 지난 사반세기의 혼인율 변화 양상을 보면 이러한 결론은 더욱 자명해진다.
    출산율 저하의 진짜 이유

    페미니즘 없이는 복지도 없다

    ‘그래프1’은 인구주택총조사 원자료를 이용해 필자가 계산한 35~39세 남성의 학력별 혼인 인구 비율이다. 1990년까지만 해도 학력별 혼인율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는데, 해가 갈수록 혼인율 격차가 벌어져 2010년 현재는 고졸 미만 30대 후반 남성의 과반수가 혼인한 적이 없다. 학력차가 고스란히 경제 격차로 이어진 것이라 가정할 수 있으므로, 남성이 결혼을 못 하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경제력이라 할 수 있다.
    ‘그래프2’는 30~34세 여성의 학력별 혼인 인구 비율이다. 여성의 경우 1995년까지만 해도 학력별 혼인율의 차이가 미미했고 혼인율은 높았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경제위기를 겪은 후 크게 변했다. 여성의 학력별 혼인율 양상이 남성과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남성은 학력이 높을수록 혼인 확률이 높지만, 여성은 고졸 학력의 혼인율이 가장 높고 고학력자와 저학력자의 혼인율이 모두 낮은 뒤집어진 U자 곡선을 보인다. 늘 이랬던 게 아니라 21세기 들어 새로 생긴 현상이다. 고학력 여성의 노동시장 활동은 증가했는데, 정책적 지원 미비와 우리 사회의 반여성 문화로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양립할 수 없는 고학력 여성이 혼인시장에서 탈락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고학력 여성의 결혼 기피는 다른 선진국에서는 관찰하기 쉽지 않은 현상이다. 미국에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낮았던 1960~70년대에는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의 미혼율이 저학력 여성보다 확실히 높았지만, 여성의 노동 참여가 당연시되는 현재는 학력별 혼인율 차이가 거의 없다. 고졸자와 대졸자의 혼인율 격차가 2%p밖에 되지 않는다.  
    아마도 조만간 발표될 저출산 대책은 혼인장려정책을 담을 것으로 예상된다. 후진적인 반여성 문화를 청산하고, 여성이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양립할 수 있도록 가정, 직장, 사회 모두가 지원해야 혼인율을 높일 수 있다. 낮은 출산율이 지속되면 생산인구가 감소하고 생산인구에 의존하는 복지 시스템을 유지하기 어렵다. 페미니즘 없이는 복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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