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한 11월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빈소를 찾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왼쪽)가 차남 김현철 한양대 특임교수를 위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문민정부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한양대 특임교수에 대한 재평가도 관심사다. ‘소통령’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문민정부 개혁조치 배후에 그의 입김이 짙게 밴 탓이다. 김 교수가 정치에 뜻을 둔 까닭에 재평가를 피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박근혜에게 버림받고 문재인에게 안기다
문민정부에 대한 재평가 결과가 호의적인 것은 분명 그에게 호재다. 공과가 엇갈리기 때문에 모든 공이 그에게 돌아가진 않겠지만, 그가 개입해 성과를 낸 분야에서는 얼마간 점수를 따는 게 가능할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개혁적 인사 발굴에 기여한 점이다.특히 1996년 15대 총선 당시 개혁공천에 김 교수가 기여한 바가 크다. 88년 중앙여론조사연구소를 설립해 여론조사로 선거 판세를 분석하기 시작한 그는 92년 대통령선거(대선)에서 이 기법을 활용해 아버지를 당선케 했고, 96년 총선 때는 공천 물갈이에 이를 적극 활용했다. 여론조사 공천의 원조인 셈이다.
2008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으로 정치권에 복귀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여론조사 전문가로 인정받은 까닭이다. 김 교수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 기득권의 저항이 너무 심했다. 그러나 여기서 밀리면 결국 개혁은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총대를 메고 밀어붙였다. 전략공천은 성공했다.”
김현철 교수에 대한 재평가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오는 것을 전제로, 그에게는 어떤 선택지가 놓여 있을까.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것은 어느 정당으로 출마할지다. 그는 이미 아버지의 고향 경남 거제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여러 차례 출마를 시도했다. 하지만 2008년 18대 총선 때는 비리 혐의자의 출마를 금지한 당헌·당규에 걸려 공천 신청조차 못했고, 2012년에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하에서 공천 탈락하고 말았다.
당시 그는 “이번 공천에서 박근혜 위원장에게 완전히 속았다. 철저하게 정치사기를 당했다”며 새누리당을 탈당했고, “민주화에 대한 아버지의 지금까지 열정이 욕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이번 선거는 민주세력이 이겨야 한다”며 야당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 문재인 후보 지지로 돌아섰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박근혜 대선후보에 대해 ‘칠푼이’라는 인신공격성 발언을 쏟아낸 것도 그즈음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 당시 상도동계를 움직여 이명박 후보를 지원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과 등을 진 바 있다. 그런데 2012년에도 이렇게 대립각을 세웠던 것이다. 대선 말기 김 전 대통령이 박근혜 후보 지지로 돌아서긴 하지만, 그 마음이 흔쾌했을 것으로 보긴 어렵다.
7·30 재·보궐선거(재보선) 때도 김 교수는 서울 동작을 출마를 시도했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연장선에서 새정연에서 공천받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동작을이 전략공천 지역으로 정해지면서 계파 갈등을 겪다 결국 박원순 서울시장의 측근인 기동민 전 서울시부시장으로 결정 났기 때문이다. 이때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했지만 결과를 번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11월 23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뉴스1
지역구는 동작을, 정당은 새정치민주연합?
당시 출마 희망 지역구를 거제에서 동작을로 바꾼 것과 관련해 그가 내세운 명분은 이랬다. “상도동으로 상징되는 이곳은 아버지의 기념도서관이 8월 말 완공되고, 동교동과 힘을 합쳐 1984년 민추협(민주화추진협의회)을 결성한 이후 흩어진 양 진영을 묶는 결정적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김 교수는 2016년 총선에서도 동작을을 먼저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거제로 다시 돌아가기엔 명분이 부족한 까닭이다. 새누리당을 이미 떠난 마당에 다시 돌아가는 것 역시 쉽지 않다. 명분도 명분이지만, 내년 총선까지 박 대통령의 공천 영향력이 여전할 것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새정연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김 교수는 아직 정식으로 새정연에 입당한 상태가 아니다. 하지만 새정연 문재인 대표에 대한 지지 행보는 여전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에 남긴 글에서 이것을 읽을 수 있다. ‘지금 야당을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다음 총선과 대선을 이길 생각은 있는 건지 의심스럽다. 똘똘 뭉쳐도 이길 수 있을까 싶은데, 그저 밥그릇이나 챙기기 위해 현 대표를 물어뜯고 있으니. 다른 대안도 없으면서 뭘 어쩌자는 건가. 형편없는 현 정권보다 더 한심하다.’
(9월 20일)
2012년 대선 국면에서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문재인 후보 지지로 돌아설 때 이미 문 후보 측과 상당한 교감이 오갔을 것이다. 그러나 7·30 재보선에서 문재인 대표는 김 교수에 대한 전략공천을 보장하지 못했다. ‘다행히’ 그 지역구에서 새정연 후보자가 패했다. 더욱이 부친 서거 이후 재평가까지 긍정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김 교수에게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진보세력 내에서 김 교수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바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아들은 별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상태에서도 문 대표가 김 교수의 공천을 지지할지 두고 볼 일이다.
김 교수도 여기에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다른 선택을 고려할 것이다. 박 대통령과 화해하고 새누리당에 복귀하거나 야권의 신당 창당에 합류하는 대안이 그것이다. 물론 그조차도 현재로서는 녹록지 않다. 특히 야권 신당 참여는 결단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