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 장면. 사진공동취재단
일반적으로 개인의 죽음은 현세에 실존하던 한 주체가 이승을 떠나 저승길로 접어든 것이기에 ‘단절’을 의미한다. 그러나 유력 정치인의 사망은 개인적으로는 단절이지만, 그를 추종하는 세력 또는 그와 함께했던 세력에게는 단절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가 그랬다. 2007년 12월 대통령선거(대선)에서 600만 표라는 큰 차로 패한 이후 ‘폐족’을 선언했던 친노무현(친노) 세력은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국민적 애도 분위기 속에서 정치적으로 완벽하게 부활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과 같았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노 전 대통령 추모 열기에 힘입어 차기 대선주자로 급부상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 국민참여당 후보로 경기도지사에 나섰고, 제1야당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김진표 후보와 후보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하며 야권 단일후보로 경기도지사에 도전했다. 그러나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에 패한 뒤 차기주자로서 지지율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지방선거 패배 이후 유 전 장관이 정치적 쇠락의 길로 들어선 데 반해,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 ‘좌광재 우희정’으로 불리며 최측근으로 여겨지던 이광재, 안희정 두 사람은 각각 강원도지사와 충남도지사에 당선하며 화려하게 정치권에 복귀했다.
노무현 효과는 2010년 지방선거에만 그치지 않았다. 2012년 총선과 대선으로도 이어졌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 출범 과정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등 친노 세력이 대거 정치권에 유입된 것. 2012년 1월 치른 민주통합당 전당대회 때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한명숙 전 총리가 초대 당대표로 선출됐고, 19대 총선 패배에도 그해 12월 대선에 나선 후보 역시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 문재인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최소한 친노 세력에게는 ‘끝이 아닌 시작’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