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8월 12일 임시정부 내무부 산하 초대 경무국장으로 임명돼 3년간 경찰조직을 이끈 백범 김구. [사진 제공 · 경찰청]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남 경찰국장 안병하 치안감(당시 경무관)은 경찰을 무장시켜 시위대를 강경 진압하라는 신군부 의 명령에 반발했다. 안 치안감은 경찰 총기 회수만을 지시했다. 이후 신군부 측은 ‘사태 진압 실패 총책임’ 등 직무유기 혐의로 안 치안감을 체포했다.
이준규 당시 목포경찰서장은 경찰과 시민군의 정면충돌을 피하고자 총기를 아예 배에 싣고 목포 인근 고하도로 향했다. 그 역시 ‘도피’를 이유로 체포됐다.
이들은 보안사령부에 구금돼 모진 고문을 당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1988년 사망한 안 치안감은 2005년에야 순직 처리됐다. 역시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이 서장은 파면 38년 만인 올해 7월 5·18 민주 유공자가 되면서 불명예를 씻었다. 유족은 현재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해 형사 재심을 신청하고 재판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때 신군부의 명령에 불복하고 시민의 편에 선 경찰 68명이 징계되고 123명이 파면됐다. 그러나 이들은 ‘관(官)’이었다는 이유로 별로 조명받지 못했다.
백범의 길, 경찰의 길
경찰청 소속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추진TF팀 멤버들. 왼쪽부터 박상구 경정, 김경훈 경장, 김기영 경위, 박홍주 경위, 염윤진 경사, 이용상 경정, 팀장 이영철 총경, 한준섭 경정, 현은영 경장, 편승화 경사, 최현명 경장, 김재윤 경사. [조영철 기자]
TF팀장인 이영철 총경은 “경찰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재정립해 경찰이 현장에서 자긍심과 책임감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총경은 “경찰의 역사를 왜곡하거나 자의적인 해석으로 미화하려는 게 아니다”라며 “사회에 공헌했으나 존재마저 잊힌 이들을 발굴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이 밝혀낸 히트작은 백범 김구(1876〜1949)가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과 함께 초대 경무국장을 맡았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담은 영상을 8월쯤 사내 인트라넷인 폴넷에 올리자 반응이 폭발적이었고 일부 언론에도 보도되며 화제를 모았다.
한준섭 경정은 “‘백범 김구 선생님이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이셨다니 30년 이상 경찰을 한 것에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됐다’ ‘김구 선생님이 남기신 애국안민의 경찰 유지를 받들어 열심히 하겠다’는 동료들의 댓글을 보면서 일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뿌듯했다”고 말했다.
이용상 경정은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보냈다’는 말처럼 김구 선생의 삶을 들여다보며 ‘백범 김구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으니 경찰들에게 일을 나눠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힘줘 말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의 후원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내부에서도 무관심 일색이었다. 이 때문에 이 사업의 의미와 중요성을 아는 경찰관들의 자원을 받았다. 그렇게 모인 경찰들은 때로는 고고학자처럼, 때로는 다큐멘터리 PD처럼 시시때때로 사무실을 벗어나 ‘증거’를 찾고자 애썼다. 이영철 총경은 “과장과 계장급은 행정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고 실무자 중에는 역사학 전공자가 많다. 중국어와 일본어, 영어 자료도 많아 외국어를 좀 하는 멤버들이 모였다. 덕분에 조기에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경훈 경장은 임시정부 경위대의 제복을 고증해 재현하고자 노력했다. 달랑 사진 한 장 들고 생존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퍼즐 조각을 맞춰나갔다.
광복군 훈련을 받고 경찰에 몸담은 백준기 경위도 TF팀에서 찾아낸 숨은 영웅 가운데 한 명이다. 임시정부 경위대 제복을 찾기 위해 자료를 보던 중 광복군 동지회 책에 실린 회원들의 사진을 발견했다. 모두 군복 차림인데 한 명만 경찰 제복을 입고 있었다. TF팀은 보훈처에서 자료를 찾아 그가 대전경찰서 소속으로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고 6·25전쟁 중 전사한 백준기 경위임을 알아냈다.
역사학계에도 의미 있는 결과물 내고파
TF팀 멤버들이 경찰 관련 사료를 살펴보고 있다.(왼쪽) TF팀에서 발굴한 다양한 경찰 관련 사료. [조영철 기자]
TF팀은 2020년까지 역사 발굴과 기념사업을 지속할 계획이다. 이용상 경정은 “임시정부 당시 경찰과 광복 이후 경찰의 역사에 대한 연구가 마무리되는 대로 연말에 세미나를 열 계획이다. 경찰대 교육 교재에도 관련 내용을 반영할 예정이다. 경찰 내부 차원의 연구를 넘어 역사학계에도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동안 발굴한 사료를 바탕으로 언제 어디서든 경찰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온라인 박물관을 만드는 것도 구상 중이다. 내부적으로 경찰의 자긍심을 끌어올리는 것을 넘어 국민에게도 경찰의 여러 모습을 알리고 싶다는 것이 이들의 소망이다. 의병들의 활동을 재조명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처럼 언젠가는 드라마나 영화로도 역사에서 잊힌 경찰들의 활약상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