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중식 기자]
10월 22일 경북 구미시 산동면 구미국가산업4단지에 자리한 구미전자정보기술원(GERI)을 찾아간 기자에게 박효덕(58) 원장은 대뜸 이렇게 말을 건넸다. 인구 42만 명의 구미시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의 국가사업을 유치해 지원하는 연구개발(R&D) 기관이라길래 아담하리라 생각했는데,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곳 본원은 총 7개 건물로 각 건물은 태양광테스트베드센터, 디스플레이 핵심부품 국산화지원센터, 경북과학기술진흥센터, 아파트형 공장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구미국가산업1단지와 인접한 분원에는 IT의료융합기술센터, 3D 디스플레이 부품소재 실용화지원센터, 모바일융합기술센터, 웨어러블 스마트 디바이스 상용화지원센터 등이 들어서 있다. 본원과 분원의 연면적을 합치면 6만5000여㎡로 축구장 9개 규모다. 박 원장은 “GERI 직원이 총 131명인데, 박사급 인재가 33명, 석사급 인재가 51명”이라고 소개하며 “기초자치단체가 이만한 규모의 R&D 기관을 보유한 사례가 구미 외에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현재는 전국 기초자치단체 수출 1위라는 타이틀을 내놓은 구미지만, 국내 최대 전자산업단지다운 면모가 여전히 엿보이는 대목이다.
GERI는 구미전자산업진흥원과 구미전자기술연구소가 통합해 2007년 출범했다. ‘지역기업의 동반자’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지역의 부족한 R&D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 산업의 기술경쟁력을 제고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기술 구미’의 연구개발 友軍
경북 구미시 산동면 구미국가산업 4단지에 자리한 구미전자정보기술원 본원(왼쪽)과 구미국가산업 1단지와 인접한 분원. 디스플레이 핵심부품 국산화지원센터, IT의료융합기술센터, 웨어러블 스마트 디바이스 상용화지원센터 등을 갖춘 구미전자정보기술원의 연면적은 축구장 9개 크기에 달한다. [사진 제공 · 구미전자정보기술원]
또한 GERI는 기술개발을 위한 프로젝트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대형 프로젝트 사업으로는 △해외통신사업자인증랩 구축사업 △SW융합클러스터사업 △웨어러블 스마트 디바이스 상용화지원센터 구축사업 △전자의료기기 부품소재산업화 기반 구축사업 등이 있다. 11월 2~3일 구미에서 개최되는 ‘2018 대한민국 스마트 국방·드론 산업대전’에서는 GERI로부터 지원받은 구미지역 국방 및 드론 분야 전문 기업들의 앞선 기술을 볼 수 있을 예정이다.
2007년 출범 이후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GERI가 일군 성과를 요약한다면.
“그간 첨단 R&D센터, 장비 등 인프라 구축에 매진했다. 또 이를 활용해 지역 기업의 R&D 역량 강화를 지원해왔다. 창업, 인력 양성, 마케팅, 애로기술 해결 등 맞춤형 지원을 통해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고 있다.”
구미 지역경제가 어렵다고 알려졌다.
“대기업의 생산기지 해외 이전, 수도권 규제 완화 등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외부 원인만 탓하고 있을 수는 없다. 구미에서 전자산업이 시작된 게 50년 전이다. 시대 흐름에 따라 기술은 진보했고, 산업 구조도 바뀌었다. 그에 비해 구미 산업계는 이런 흐름에 맞춘 미래지향적 준비가 부족했다. 현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기술과 산업을 선보이기 전 진통을 겪는 시기로 봐달라. 구미는 다시 일어설 잠재력이 충분하다.”
구미 산업의 기초 체력은 튼튼하다?
“구미에는 삼성, LG 등 대기업과 매출 1000억 원이 넘는 중견기업, 그리고 중소기업까지 3200개의 다양한 사업체가 있다. 전통적으로 금형·사출 등 제조 기반이 강하지만, 화학·소재·섬유 분야에서도 실력 있는 기업이 많다. 한마디로 구미는 ‘종합기술력’을 갖췄다. 이들 기업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사업화하려는 의지도 매우 강하다. 개인적으로는 제조를 기반으로 정보통신기술(ICT)이 융합된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등 웨어러블 스마트 디바이스, 전자의료, 전자농업(스마트팜), 차세대 국방, e모빌리티(전기자동차), 그리고 5G 기반 융합산업 등에서 구미가 새롭게 두각을 나타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구미의 미래발전전략 ‘GERI 2025’를 추진한다고.
“그간 구미가 강점을 보였던 모바일(휴대전화)과 디스플레이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술과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전략에 대해 고민 중이다. GERI 혼자 하는 게 아니고 금오공대, 구미대, 경운대 등 지역 대학과 구미상공회의소, 구미중소기업협의회, 구미국가산업단지 등 산학연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있다. 크게 4개 분야 기술을 들여다보고 있다. 일례로 탄소산업은 향후 항공·자동차 분야에서 경쟁력이 크게 기대된다. 자동차 외장 부품을 탄소로 가볍게 만들면 내구성이 좋아지고 연비도 올라간다. 이미 구미에는 세계 1위 탄소섬유기업인 일본 도레이와 코오롱 등 40여 개 탄소 관련 기업이 있다. 몇 가지 세부적인 아이템을 정하고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마련해 ‘GERI 2025’를 차근차근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시점을 ‘2025년’으로 설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정부 출연 연구소가 자리 잡는 데 30년이 걸린다. GERI는 지난 10년간 인프라를 구축했다. 앞으로 5년은 신산업을 발굴·육성하고, 이후 5년은 발굴·육성한 신산업을 확산하고자 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모바일, 디스플레이를 넘어선 새로운 산업이 구미에서 꽃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것이다. 내가 전자부품연구원(KETI)에서 24년을 근무했다. GERI는 구미시가, KETI는 기업들이 설립했다는 차이가 있지만 ‘신산업을 육성해 지역 중소기업을 리딩하라’는 미션은 동일하다. 미션은 잘 이해하고 있는 만큼 열심히 하겠다.”
그러한 포부에 맞춰 GERI 구성원들도 새롭게 각오하는 바가 있나.
“유연하고 열린 조직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출퇴근시간을 자유롭게 하고, 복지도 강화해가고 있다. 최근에 기술개발 인센티브 한도를 없앴다. 이제 누구든 성과를 거두면 원장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 각종 세미나 등 외부와 교류도 늘려가는 중이다. GERI를 경북지역 최고 연구소로 키워 지역 인재들이 서로 오고 싶어 하는 조직으로 만들고 싶다.”
혁신형 강소기업 육성에 ‘사활’
[홍중식 기자]
“GERI가 구심점이자 창구가 돼주길 원한다. 기업이나 대학이 각자 하는 기술개발 가운데 서로 연관이 있거나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을 한데 엮어주고, GERI를 포함해 국가 연구기관으로부터 지원 받을 수 있게끔 GERI가 나서달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구미지역 창업가들을 위해 투자조합 결성과 에인절투자 자금 마련도 추진하고 있다.”
구미의 재부상, 기대해도 좋나.
“구미의 평균연령은 37세로 대한민국의 젊은 도시 가운데 하나다. 기술인력도 풍부하고, 잘해보려는 의지도 매우 강하다. GERI는 R&D 역량을 강화하고 핵심 원천 기술, 신성장에 꼭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면서 지금까지 축적해온 연구개발 및 기업 지원 노하우를 바탕으로 기술혁신형 강소기업을 육성해갈 것이다. 구미 기업, 유관기관 등과 적극 소통하고 협업해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지역사회에서 신뢰받는 최고 중소기업 육성 전문 연구기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