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김민경]
2 을지로 맥주 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맥줏집 OB베어의 복어포와 맥주.
3 사람과 맥주로 가득한 을지로 맥주 골목.
나는 서울 토박이다. 하지만 서울은 갈수록 낯선 얼굴을 보여줘 점점 이방인이 되는 기분이다. 서울에서 함께 나고 자란 친구들은 나이가 들수록 서울 밖으로, 섬으로, 외국으로 터를 옮긴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있다고 자주 어울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 둘 서울의 경계를 넘어 떠날 때마다 헛헛하다. 떠나지 않았다면 언제 볼지 몰랐을 친구를 떠난다는 이유로 만나는 모순적 약속 장소는 언제나 을지로다.
을지로 골목에는 없던 추억까지 불러일으키는 색다름이 있다. 큰길가에는 고층빌딩이 늘어서 있지만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시간을 거꾸로 되짚어놓은 것 같은 풍경을 만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복닥거리는 삶의 현장이지만, 내겐 복닥거리는 삶을 잊게 하는 골목 여행이 시작되는 곳이다. 미로 같은 을지로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사랑스러운 맛집을 만나게 되는 것도 여행의 목적 가운데 하나다. 그중 이별과 만남이라는 뭉클한 자리를 갖기에 적합한 곳이 맥주 골목이다. 다가올 앞날, 또 지나간 일들에 축배와 응원을 보내기에 맥주만큼 좋은 게 없는 데다, 축축 처질 수 있는 기분을 다잡는 데도 골목의 분위기가 큰 도움이 된다.
맥주 골목은 서울지하철 2·3호선 을지로3가역 4번 출구로 나와 왼편으로 난 길로 들어가면 있다. 늦은 밤에 처음 간다면 골목 초입에서 ‘응? 어디? 컴컴한데? 문 닫았는데?’ 싶다가도 이내 막다른 길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억’ 하고 놀라게 된다. 특히 요즘처럼 ‘신나게’ 더운 여름밤이면 골목 흥취가 터질 듯 차오른 기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골목 안은 가장 오래된 OB베어를 중심으로 초원, 만선, 뮌헨 호프와 골뱅이집, 프랜차이즈 치킨집까지 얽히고설켜 있다. 길을 막고 즐비하게 깔아놓은 좌석은 손님 처지에서 보면 어디가 어느 집 테이블인지 모를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다. 간이 테이블마다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맥주잔과 노가리, 양념장, 땅콩이 놓여 있다. 여기 모인 사람은 누구나 같은 것을 마시고 먹으며 흥에 겹다. 할아버지도 많고, 아저씨는 몇 부대가 있으며, 눈길 사로잡는 패션 피플과 이제 맥주 걸음마를 뗀 앳된 청춘도 보인다. 집집마다 묵은 맥주가 없으니 술맛이 좋고, 안주 값도 부담이 없으며, 목소리 높여 떠들어도 눈치 주는 이 하나 없다. 지나치게 사람이 많고, 시끄럽고, 분주하다 보니 오히려 잡생각이 가시고 내 앞에 앉은 사람만 보이고 들린다. 게다가 이 골목 안에 차오른 열기는 같은 극의 자석처럼 폭염을 밀어내는 힘이 있다.
얼마 전 ‘대구치맥페스티벌’, 제주 ‘짠 페스티벌’ 등 맥주로 폭염을 잊게 하는 축제의 장이 펼쳐졌다. 8월 9~11일에는 전북 전주 명물인 ‘가맥축제’, 8월 15~19일에는 ‘창원비어&뮤직페스티벌’, 8월 24일~9월 1일에는 인천 송도의 불꽃놀이를 감상할 수 있는 ‘송도맥주축제’도 개최된다. 8월 31일~9월 1일에는 서울 신촌 ‘기차역 맥주 페스티벌’이 열린다. 9월 1~2일에는 경기 가평군 청평역 부근의 ‘쉬엄 수제맥주마을’에서 ‘가평수제맥주축제’가 열려 전국 16개 브루어리의 맥주를 맛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9월 7~9일에는 신촌 연세로에서 음악과 함께하는 ‘신촌맥주축제’가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