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 그랩]
그랩은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동창생인 앤서니 탄과 탄 후이 링이 공동창업한 모바일 콜택시 회사다. 2012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시작해 6년 만인 올해 7월 현재 동남아 8개국 225개 도시에서 사업을 하는 거대 기업이 됐다. 기업 가치는 6조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비스 범위도 광범위하다. 택시뿐 아니라 자동차, 자전거, 오토바이, 셔틀버스, 심지어 삼륜차(trike)까지 다양한 ‘탈것’을 서비스하고 카풀과 히치하이킹도 중개한다. 이러한 모빌리티 서비스에 더해 식사, 배송, 전자지갑 서비스도 제공한다.
7월 10일에는 ‘그랩프레시(GrabFresh)’를 출시했는데, 식료품을 주문하면 한 시간 내 문 앞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그랩은 스스로를 승차공유 회사가 아닌,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O2O(Online to Offline) 모바일 플랫폼’으로 정의한다. 한국에선 규제에 막힌 승차공유가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더없이 좋은 실례(實例)다.
“택시기사는 그랩의 핵심”
그랩은 6년만에 기업가치가 6조 원에 이를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사진 제공 · 그랩]
밍 마 사장은 싱가포르 본사에서 그랩의 전략적 파트너십 및 투자, 신규 시장 전략 개발과 실행, 그랩의 전체 자본 구조 관리 등을 총괄하는 인물이다. 그랩 전에는 골드만삭스, 소프트뱅크 등 미국과 아시아 기업에서 12년간 재무 및 투자 전문가로 경험을 쌓았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학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달 승차 횟수 20억 회를 기록했다. 10억 회를 달성하는 데 5년 4개월이 걸렸지만, 그 2배가 되는 데는 9개월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이처럼 빠르게 성장한 비결을 꼽자면.
“도시마다 안고 있는 문제가 다르다. 그랩의 성공은 해당 지역 고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이퍼로컬(hyperlocal)’ 전략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랩은 현재 동남아 225개 도시에서 서비스하는데, 모든 서비스가 동일하지 않다. 각 도시는 자신들에게 적합하고 필요한 그랩 앱을 가졌다고 보면 된다.”
지역마다 구체적인 서비스·기술을 달리하자면 매우 수고로울 텐데.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다. 225개 도시에 제공하는 우리 기술이 확장성을 지니고, 신뢰할 만하며, 안전하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동남아 어느 기업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술 및 연구개발(R&D)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랩의 글로벌 R&D센터가 6개나 된다. 벵갈루루, 베이징, 호찌민, 자카르타, 시애틀, 싱가포르에 있다.”
동남아 각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규제 때문에 곤란을 겪진 않았나.
“그랩이 역동적이고 복잡하며 경쟁적인 시장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규제당국과 한편에 서서 지속적으로 대화한다. 규제당국이 해결하고자 하는 도시 문제가 바로 우리가 해결하려는 그것이다. 교통 혼잡을 해소하기 위해 대안적인 대중교통 서비스를 투입하거나,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는 수백만 동남아인에게 금융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는 것이 그 예다. 이런 노력으로 그랩은 많은 지역에서 규제당국과 좋은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일례로 싱가포르에서 그랩은 여러 정부기관과 파트너십을 맺고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실현하고 있다.”
택시나 버스업계와 갈등은 어떻게 극복했나.
“그랩의 첫 사업은 택시 호출(Taxi-Hailing)이었다. 사업 초기부터 우리는 택시 회사 및 택시기사들과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이들은 현재도 그랩 플랫폼의 핵심 이해당사자다. 싱가포르에서 그랩은 택시 회사에 효율성을 높여주는 예약 플랫폼을 제공한다. 택시기사들은 그랩 앱을 사용함으로써 더 많은 승객을 태우고 더 많은 수익을 올린다.”
정부나 택시업계와 공통의 목표를 설정하는 게 항상 가능한가.
“그랩의 사명은 교통과 관련된 큰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는 그랩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 및 교통 회사들과 함께 노력해야 가능하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같은 메가시티는 폭증하는 대중교통 이용객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러니 사람들은 개별 교통수단인 자동차나 오토바이 등을 선호한다. 그러나 모두가 이러한 이동수단을 선호한다면 교통난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교통 혼잡을 해결하려면 반드시 정부와 산업계 전반이 협력해야 한다. 그랩의 솔루션은 이런 식이다. 먼저 해당 지역의 기존 대중교통 수단을 좀 더 안전하고, 사용 가능하며, 모바일 앱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그랩은 현재 택시, 자동차, 오토바이, 심지어 삼륜차까지 제공 중이다. 혁신은 그다음이다. 최근 개시한 저스트그랩(JustGrap)은 내 주변의 그랩 택시와 그랩 자동차를 자동으로 예약해주고, 고정 금액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그랩의 예약 알고리즘 덕분에 기사와 승객이 매칭되는 횟수가 30%가량 증가했다. 그랩 이용자는 더 빨리 택시를 타게 됐고, 택시기사들은 더 많은 매출을 올리게 됐다.”
그랩은 그랩페이(GrabPay)라는 모바일 지갑도 출시했다.
“그랩의 교통 분야 목표는 ‘원스톱 모빌리티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통합된 결제 플랫폼이 있어야 사용자들이 끊김 없이(seamless) 이동할 수 있다. 한 여정에서 택시든, 자전거든, 셔틀버스든 몇 개의 교통수단을 이용하더라도 클릭 한 번으로 이 모든 이용요금을 결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다.”
‘개방’ 통해 ‘모두의 성장’ 추구
그랩은 최근 승차 횟수 20억 회를 돌파했다. 10억 회 돌파 후 9개월 만에 거둔 성과다. [사진 제공 · 그랩]
“그랩의 생태계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그랩은 승차공유 앱에서 시작해 지금은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매일 사용하는, 일상생활에서 필수불가결한 슈퍼앱(super app)으로 발전했다. 오픈 플랫폼은 그랩을 더욱더 슈퍼앱이 되게 할 것이다. 그랩 파트너들은 자사 사업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확장하고, 그랩 이용자는 더 많은 서비스에 접근하게 되며, 660만 그랩 운전자와 에이전트 등 소규모 기업가들은 더 많은 수익 기회를 얻을 것이다.”
그랩의 미래 전략은?
“현재 그랩은 승차공유 서비스에서 훨씬 멀리 나와버렸다. 우리 목표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기에, 앞으로 좀 더 많은 서비스를 그랩 앱에 추가할 계획이다. 분야는 교통, 음식, 지불, 금융 서비스 등 다양하다. 오픈 플랫폼이 하이퍼로컬, 나아가 하이퍼퍼스널(hyperpersonal)한 서비스를 빠르게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왜냐하면 그랩 혼자 이런 서비스들을 다 구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과는 어떤 협업을 꾀하는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그룹과는 기술을 선의를 위해 사용하자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이들 한국 기업과 교류는 서비스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수백만 동남아인에게 큰 혜택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한다. 삼성전자는 우리에게 마이크로파이낸싱 등 디지털 솔루션을 제공할 것이고, 삼성전자 태블릿PC를 그랩 차량 내부에 설치함으로써 승객들이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 콘텐츠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자동차 산업계의 글로벌 리더이자 전기차 등 지속가능한 모빌리티에 혜안이 있는 현대자동차와 함께하게 돼 매우 기쁘다. 전기차가 동남아지역의 환경오염을 줄이고 운영 및 유지 비용을 낮춤으로써 교통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또 그랩은 SK그룹을 통해 차세대 모빌리티 서비스 분야에서 중요한 성장 기회를 잡고자 한다. 한편으로는 그랩이 한국 회사들의 동남아시장 진출을 위한 통로 구실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동남아에는 250억 달러(약 28조 원)의 대중교통 시장, 5000억 달러의 지급(payment) 시장이 형성돼 있다. 그랩은 이러한 동남아에서 수억 명의 사람으로부터 신뢰받는 브랜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