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 스마트팜이 바꾸는 농촌

‘케어팜 ’ ‘스마트팜’으로 네덜란드 농업 진화 중

장애인 등 돌보고, IT 접목으로 한국보다 생산량 10배

  • | 임지영 푸르메재단 기획팀장 jay@purme.org

    입력2018-07-17 11: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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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 알미르에 들어설 예정인 스마트팜 공동체 마을 레겐빌리지 개념도 [ Regen Village@EFFEKT ARCHITECTS]

    네덜란드 알미르에 들어설 예정인 스마트팜 공동체 마을 레겐빌리지 개념도 [ Regen Village@EFFEKT ARCHITECTS]

    네덜란드는 농업강국이다. 국내총생산(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2%도 채 되지 않지만, 세계 농업에서 네덜란드의 위상은 매우 강력하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농업수출국(미국과 네덜란드의 농지면적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순위)이고, 세계에서 수입하는 농산물 물량의 7%가 네덜란드산이다. 네덜란드는 남한면적의 40%밖에 되지 않고 이 중 3분의 1은 간척지다. 물도 부족하고 바람도 많이 불고 염분까지 많아 비옥한 땅과는 거리가 먼 네덜란드는 어떻게 농업강국이 됐을까. 네덜란드는 일찍부터 시설농업을 통해 환경을 극복해왔다.
     
    6월 7일 네덜란드 농업의 현재와 신진 농업기술을 파악하고자 그곳을 찾았다. 

    “이곳에는 연구실과 현장이 따로 없습니다. 작물에게 최적의 환경을 찾아내는 빅데이터, 내부 환경을 자동제어하는 정보기술(IT), 우수 품종의 개발·활용 등 농업과 관련된 모든 분야를 정부, 대학, 농부, 기업이 함께 연구합니다.” 

    헤이그시 인근 베스틀란트에 자리한 리서치센터 월드호티센터(World Horti Center)의 에르빈 카르돌(Erwin Cardol) 총괄디렉터의 설명에서 네덜란드 농업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매년 2만5000명의 전 세계 농업전문가가 이곳을 방문해 시설농업에 대한 최신 기술과 트렌드를 배워간다. 

    네덜란드 농업은 여전히 진화 중이다. 대학, 기업은 더 나은 재배 기술과 노하우를 끊임없이 연구한다. 농민들은 친환경 농업을 위해 재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이웃농장에 공급하며 물과 에너지를 재활용하는 등 무엇 하나 허투루 낭비하지 않는다. 네덜란드의 농업 네트워크는 매우 유기적이고 긴밀하게 작동된다.

    네덜란드 농업의 발전은 크게 두 축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기존 농업에 새로운 가치를 결합한 케어팜 모델과 대형 시설투자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구현한 스마트팜 모델이다.



    상생하는 사회적 농업의 결정체 ‘케어팜’

    케어팜이란 사회적 돌봄의 케어(care) 서비스와 농장(farm)이라는 단어를 합성한 것으로 치매노인, 중증장애인 등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농장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고 이들이 농장에서 보내는 시간을 치유와 재활을 위한 서비스로 인정, 국가에서 케어 비용을 지불하는 시스템이다. 

    케어팜은 농장 운영만으로 생존이 어려운 소규모 가족농장을 중심으로 처음 시작됐다. 바헤닝언대에서 사회적 농업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 중인 얀 하싱크(Jan Hassink) 박사는 “간호사 경력을 가진 여성 농장주들이 농사가 정서적 안정과 치유에 힘이 된다는 점에 착안해 수익사업의 일환으로 케어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케어파밍이 치매노인이나 중증장애인, 문제청소년 등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많은 사례연구를 통해 밝혀졌다”고 덧붙였다. 

    처음에는 의료계의 반발과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으나, 실제 케어파밍의 긍정적 효과가 입증되고 농가에도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자 1997년 정부 차원의 케어팜 지원센터가 설립됐다. 현재 네덜란드에는 1100개에 달하는 케어팜이 운영되고 있다. 

    케어팜 수익의 상당 부분은 케어 서비스 지원에서 나오지만 농산물 판매와 가공, 레스토랑 등의 매출도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농장경영, 축산, 제조 등의 사업을 하는 케어팜 에이크후버(Eekhoeve)의 수석 코디네이터 헬런 스휘링(Helen Schuring)은 북적이는 농장을 보여줬다. 

    “우리 농장에서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만큼 하면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농사일을 하거나 동물을 돌보거나 가공 업무를 하는 등 원하는 일을 하죠. 다양한 일을 개발하다 보니 사업도 늘어나고, 자원봉사자와 방문객도 증가해 성수기에는 한 주에 1500명이 방문하기도 해요.” 

    스마트팜은 케어팜과 정반대로 농업 자체의 경쟁력을 극대화함으로써 최대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목적이다. 네덜란드 스마트팜의 생산성과 효율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 농부들이 약 3300㎡에서 거둬들이는 토마토 물량을 네덜란드에서는 330㎡에서 생산하고 있다.

    두 방향으로 진화해가는 네덜란드 농업

    네덜란드 딸기 스마트팜의 유리온실 내부 모습.(왼쪽) 네덜란드 스마트팜의 생산성은 우리나라의 10배로 농업 경쟁력을 극대화했다. 스마트팜 수확 작물들. [사진 제공 ·푸르메재단]

    네덜란드 딸기 스마트팜의 유리온실 내부 모습.(왼쪽) 네덜란드 스마트팜의 생산성은 우리나라의 10배로 농업 경쟁력을 극대화했다. 스마트팜 수확 작물들. [사진 제공 ·푸르메재단]

    암스테르담 북쪽 미덴메이르 지역에 세워진 아흐리포르트(Agriport) A7은 간척지에 신규 조성된 최첨단 유리온실 단지로, 총면적이 약 450만㎡(135만 평)에 달한다. 아흐리포르트의 매니저 벤 톱스는 “이곳은 처음 식재와 수확할 때를 제외하면 사람 손길이 거의 필요 없다. 입력된 데이터 값에 따라 센서와 컴퓨터가 최적의 환경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이곳은 네덜란드 온실 중에서도 최첨단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33만㎡ 농장에서 매일 3000kg의 파프리카를 수확하지만 수확을 위한 직원들을 제외하면 농장 전체를 상시 관리하는 직원은 농장주 내외와 농업 전문가 1명, 수확 관리자 1명 정도다. 수확된 파프리카는 무인 카트에 실려 자동으로 옮겨지고 분류, 포장돼 시장으로 나간다. 누가 얼마만큼 수확했는지도 실시간으로 관리된다. 

    농장의 모든 것은 센서와 폐쇄회로(CC)TV, 컴퓨터로 자동제어되고, 작물의 안전을 위해 온실은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는다. 견학을 원하면 에어샤워를 한 뒤 방진복을 입고 들어가야 한다. 작물이 식재된 코코넛껍질이나 암면(rock wool)으로 만든 작은 큐브에는 최적의 물과 양액을 공급하고 대기를 측정하는 센서가 달려 있어,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조절하면서 식물의 생장을 지원한다. 자연에서 필요한 건 풍부한 햇빛뿐. 그마저도 부족하다면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통해 보충해준다. 척박한 자연환경과 부족한 인력을 극복하는 건 수십 년간 축적해온 첨단기술과 네덜란드인의 끈질긴 도전정신이었다. 

    농업강국 네덜란드에서 이처럼 농업의 극단적인 두 발전 방향을 보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무엇 하나 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며,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해결 방법을 사회가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 네덜란드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스마트팜이 공장 같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면서 안전하고 더 좋은 농산물을 공급하려는 인류의 노력과 첨단기술이 접목된 미래 농업의 대안에 가깝다. 

    지구 위 모든 땅을 농사를 위해 개간할 수는 없다. 비옥한 땅도 계속 농사를 지으면 척박해지기 마련이고, 수확량이 적으면 소비자는 비싸게 살 수밖에 없다. 네덜란드가 3.3㎡당 연 800kg에 달하는 양송이 재배기술을 개발하지 못했다면 유럽인은 양송이를 송로버섯 가격으로 사 먹어야 했을 수 있다. 

    농업은 생명을 키우는 일이다. 우리가 네덜란드 농업에서 주목하는 것은 높은 수익성이 아니라 농업이 맡은 사회적 가치와 역할이었다. 네덜란드 농업은 그 두 가지 모두를 포기하지 않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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