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돼 국내는 물론, 해외 주식시장도 전체적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동아DB]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폭탄은 대부분 대미 무역흑자가 가장 큰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 2015년 기준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3657억 달러(약 408조3000억 원)로 전체 무역적자의 49.6%에 달했다. 14년 전인 2001년 미국의 전체 무역적자에서 대중 무역적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0.2%에 불과했다. 미국이 두 번째로 무역적자를 많이 기록한 나라는 독일로 742억 달러(약 82조8400억 원)에 머물렀다.
미·중 무역전쟁은 우리나라에 직간접적으로 여파를 남긴다.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 물량 일부는 미국으로 수출하기 위한 원·부자재다. 따라서 중국의 대미 수출이 줄면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도 감소한다. 한국은행 분석 결과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품 가운데 다시 미국으로 향하는 비중은 5%로 나타났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한 보고서는 중국이 홍콩을 통해 다시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량까지 감안하면 실제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품이 미국으로 다시 수출되는 비중은 10% 전후로 높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미국이 관세를 높이면 우리나라 제품이 직접적인 영향권에 든다. 철강과 알루미늄의 경우 우리나라 제품에 대한 추가 관세가 발효됐지만, 자발적 수입제한 조치에 동의하면서 면제된 바 있다. 관세를 물지 않는 대신 매출 규모를 축소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처럼 미·중 간 무역전쟁 과정에서 우리나라 제품도 언제든 규제 품목에 포함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에 서둘러 나선 까닭은 이번 중간선거 결과가 임기 후반기 국정운영을 좌우할 것이란 점 때문이다. 또한 중간선거 성적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다.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정책 이슈를 11월 중간선거에 맞춰 진행하고 있는 것은 중간선거가 임기 후반 2년뿐 아니라 재선 임기 4년을 더해 6년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북핵 해결을 위한 북·미 정상회담 등 안보 이슈가 미국 유권자에게 심리적 안정을 준다면, 경제 이슈는 미국 유권자의 소득 등 삶의 질과 직결된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떻게 대중 무역적자 폭을 줄이려 하는 걸까.
7월 6일은 미·중 무역전쟁 개시일
미국 행정부는 1월 한국산 세탁기에 긴급수입제한 조치인 세이프가드를 발동했다. 사진은 LG전자가 최근 출시한 인공지능 플랫폼 ‘딥씽큐(Deep ThinQ)’를 탑재한 신제품 ‘LG 트롬 씽큐 드럼세탁기’(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사진 제공 · LG전자]
트럼프발 무역전쟁 선전포고에 중국도 맞대응하고 나섰다. 미국의 중국산 제품 관세 부과에 대한 보복조치로 미국산 제품 659개 품목에 7월 6일부터 25% 관세를 부과키로 한 것.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세계 교역량이 크게 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동아DB]
트럼프발 무역전쟁으로 세계경제가 후퇴할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은 또 있다. 세계은행은 6월 5일 선진국 성장 둔화와 주요 원자재 수출국의 경제회복세 약화 등을 이유로 향후 2년간 세계경제 성장률이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3.1%로 내다본 세계경제 성장률이 2019년에는 3.0%, 2020년에는 2.9%로 떨어지리라 예상한 것이다. 경제성장률 하락세의 영향으로 국제교역량 증가율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4.0% 증가율이 예상되지만 내년에는 3.9%, 내후년에는 3.8%로 해마다 0.1%p씩 하락할 것이라는 얘기다.
교역량이 많은 미국과 중국 두 나라가 관세를 통한 무역전쟁에 나서는 것은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점에서 세계경제에 악재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을 멈출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미국과 미국민의 이익, 일자리를 지켜 중간선거는 물론, 차기 대선 전망까지 밝게 만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산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관세로 무역장벽이 높아지면 세계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겠지만 미국 처지에서는 남는 장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는 보수적으로 투자하게 되고, 가장 안전한 미국에 투자하고 싶어질 것”이라며 “투자자들이 대미 투자를 고려하는 것만으로도 미국은 전략적 이점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무역전쟁 여파로 자동차 산업 유탄 맞나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악수하며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싱가포르=AP 뉴시스]
수입 자동차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이 현실화할 경우 국내 자동차 산업도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까지는 유럽연합(EU)산 수입 자동차를 겨냥하고 있지만, 결국 국내 자동차업계에도 높은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미 수출에서 자동차와 관련 부품의 비중은 다른 제품군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411만4913대였고, 이 가운데 84만5319대가 미국으로 수출됐다. 수출액으로 따지면 145억 달러(약 16조1890억 원)에 이른다. 지난해 전체 대미 수출액 670억 달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수치다. 자동차 부품까지 포함하면 그 액수는 200억 달러 이상으로, 대미 수출의 30%에 육박한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 자동차에 관세를 부과하면 국내 자동차 산업 전체에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다만 자동차에 대한 고율 관세가 현실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신중론도 대두되고 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까지 보도된 내용대로 관세 부과 조치를 실행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며 “자동차 고율 관세가 실현되면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에 문제가 생겨 미국 자동차 산업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우리나라 산업과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시장에서 중국산 제품과 경쟁관계인 우리 제품의 수출이 늘어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중 무역전쟁,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시작한 대중 무역전쟁은 대중 무역적자 폭을 줄이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다만 꼭 필요한 생활필수품을 놓고 무역전쟁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이 많다. 미국 국민에게 곧바로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에 미국 국민의 삶에 꼭 필요한 생필품 분야의 경우 우리 기업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값싼 중국 제품의 대미 수출이 줄어든 만큼 대체품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KOTRA는 지난해 펴낸 ‘미·중 통상관계 전망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미국의 대중국 무역구제 조치가 강화될 경우 한국의 대미 무역 기회는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시장에서 중국과 경합관계인 우리 제품의 수출 기회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독보적 경쟁력 확보만이 유일한 대안
중국이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한 주요 품목을 살펴보면 방직 원료와 제품이 15.6%로 가장 비중이 컸고 신발·모자·우산 등 7%, 비금속 5.7%, 플라스틱·고무 3.8%, 가죽·모피·가방 2.4%, 광물재료·유리제품 2.2% 수준이었다. 즉 중국이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한 품목에 미국이 높은 관세를 부과할 경우 이들 제품군을 생산하는 한국 기업에게는 오히려 미국 진출 기회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무역전쟁은 관세 부과로 수출을 억제하려는 것인 만큼 관세를 부담하고도 품질 우위를 바탕으로 수출 물량을 늘릴 수만 있다면 기회가 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미국, 중국 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나라라는 점에서 중국산 제품의 대미 우회 수출 창구가 되거나, 미국산 제품의 대중 우회 수출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재계 한 인사는 “미국시장에서 중국 기업과 경쟁관계인 우리 기업에게는 미·중 무역전쟁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며 “높아진 관세만 볼 것이 아니라 미·중 무역전쟁으로 벌어진 틈새를 공략하려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형주 연구위원은 “미국시장에서 중국산 제품과 경쟁하던 국내 기업 제품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다만 전체 수출 물량에서 그 비중이 크지 않다는 점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또한 “우리 기업들은 과거 일본 기업이 플라자합의 이후 경험했던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면서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 체질을 개선하고 기술과 품질 혁신을 통해 독보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유일한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무역전쟁에서 승리하는 투자법
미·중 무역전쟁의 직격탄을 맞는 곳은 기업만이 아니다. 주식시장에도 대형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불확실성이 커져 투자심리가 위축된 가운데 국내 주식시장은 전체적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유럽, 중국 등 전 세계 금융시장이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혼돈의 미·중 무역전쟁 속에서 어떤 투자 자세를 취해야 무역전쟁 포화가 그친 뒤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까. 구용욱 미래에셋대우 리서치센터장으로부터 무역전쟁에서 살아남는 투자 전략을 들어봤다.미·중 무역전쟁으로 국내 증시는 물론, 세계 증시도 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역전쟁이 어느 정도 규모로 언제까지 지속될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당분간 국내외 주식시장은 약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미·중 무역전쟁은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 이외에 주변국에도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크다.”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투자 전략을 어떻게 가져가는 게 좋은가.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클 때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며 미래 먹을거리로 떠오르는 분야로 눈을 돌려 새로운 투자처를 발굴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 분야는 어디인가.
“우리나라는 대중국 교역 비중이 크기 때문에 특정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다방면에서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래도 꼽는다면 중국에 원자재와 중간재를 수출하는 기업이 대표적이다.”
무역전쟁 속에서도 투자하기에 유망한 종목이 있나.
“미국 아마존이나 넷플릭스, 중국 알리바바처럼 글로벌 플랫폼을 갖춰 이익을 내는 기업은 성장세를 이어갈 공산이 크다. 글로벌 관점에서 필수소비재 관련 기업 역시 무역전쟁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식음료 등 경기 비민감주가 여기에 해당한다.”
국내 기업은 어떤가.
“실적이 견고한데도 무역전쟁 등 외부의 영향으로 주가가 많이 내린 기업이 있다. 이런 기업을 골라 저점 매수 기회로 삼는 전략이 필요하다. 불확실성이 제거되면 실적을 바탕으로 한 기업의 주가는 반드시 제자리를 찾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