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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판에서 유행하던 이 문구가 이제 P2P(peer to peer)업체로까지 번질 조짐이다. 핀테크(금융+기술) 산업의 선두로 불리던 P2P업체 일부가 투자금을 상환하지 않은 채 잠적하거나 부도를 내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 대형 업체로 불리던 곳이 도산하기도 해 일각에서는 과거 저축은행 파산 사태가 재발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은행과 달리 채권투자 상품인 P2P는 원금을 전혀 보장받을 수 없어 업체가 도산하면 투자자의 피해가 막심하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다. 관련법이나 규제가 미비해 부실 업체가 우후죽순 늘어났던 것. 한편 건실한 업체의 제대로 된 투자상품을 선택한다면 P2P 채권은 여전히 저금리 시대의 매력적인 투자처라는 지적도 있다.
부동산 신화, P2P에는 통하지 않는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6월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P2P대출 감독 강화를 위한 관계기관 합동 점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산업 태동기인 2010년대 초반에는 개인신용채권을 다루는 업체가 주류였다. 하지만 2016년 이후부터는 부동산이나 동산 관련 채권이 업계의 주류가 됐다. 개인신용채권 투자상품이 투자금 대비 연 10%가량 이익을 낼 수 있다고 광고하는 반면, 부동산채권의 경우 15~18% 수익이 난다고 광고하는 상품이 허다했기 때문.
개인신용채권 투자의 특성도 일부 투자자로부터 원성을 샀다. 투자자의 위험을 낮추고자 각 업체는 개인 채권을 작게 나눠 판매한다. 50만 원을 투자해 쪼개진 채권 100개를 사는 방식이다. 각 채권은 원금과 이자를 동시에 상환한다. 이 중 채권이 1개 라도 연체되면 예상 이율은 빠르게 떨어진다. 부실이 발생하면 원금을 잃을 수 있다. 각 업체에서는 이를 막고자 채권 추심 방안을 마련해놓고 있다.
물론 부동산채권과 동산채권도 연체, 부실 위험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이자를 먼저 상환하다 마지막에 원금을 갚는 방식이라 상환 중에는 연체가 발생하는 비율이 높지 않다. 업체 심사에 따른 자체 신용등급만 보고 투자를 결정해야 하는 개인신용채권과 달리, 동산이나 부동산의 담보 설정 및 채권자의 상환계획까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투자자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곳은 부동산채권, 동산채권 위주의 업체였다. 지난해 말 업계 3위를 달리던 ‘펀듀’의 대표가 연체율 90%를 넘어서는 상황에서 해외로 잠적했다. 6월 2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을 통해 동산채권을 다루던 ‘오리펀드’의 부실이 알려졌다. 이 업체는 100억 원가량을 투자자에게 제때 상환하지 못했다. 대표가 경찰에 자진출두해 조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6월에는 부동산채권 전문업체인 ‘2시펀딩’이 연체율 68.5%를 넘어서며 투자금이 상환되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다. 업체 대표는 일본으로 출국한 후 돌아오지 않고 있다. 5월에는 부동산 PF(Project Financing) 전문업체 ‘헤라펀딩’이 부도를 냈다.
이에 한국P2P금융협회는 6월 12일 임시총회를 열어 대출자산 신탁화와 불완전판매 금지, 가이드라인 준수, 개인정보 보안 관리 등을 따지는 전수 실태조사 및 자율규제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신화에 발맞춰 일부 업체가 무리한 투자를 유치해온 것도 문제”라고 짚었다. 그는 “높은 수익에는 높은 리스크가 따르기 마련이다. 꽤 많은 부동산채권이 연 18% 수익이라고 광고했지만, 리스크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사실상 관련 규제도 없었으니 함량 미달인 상품이 시장에 쏟아진 것”이라고 평했다.
업계에서는 부실을 피하려면 수익률을 먼저 보라고 조언한다. 수익률이 높을수록 위험한 상품일 수 있으니 담보와 상환계획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것. 업계 관계자는 “부동산채권 상품의 경우 일단 제대로 된 감정평가사에서 담보 감정을 했는지 확인한 뒤, 우선수익권 설정 등을 통해 투자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의외의 강자, 개인신용채권 상품
투자자가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하는 이유는 원금보장성 상품이라도 각 업체가 이를 공시할 수 없기 때문. 현행법상 P2P업체는 대부업체로 등록돼 있어 ‘원금보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다.아예 신용대출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도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실제로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신용대출 P2P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보다 높은 수익을 낼 수 있고 부동산에 비해 오히려 연체율이 낮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이 2월 P2P 연계대부업자 75곳을 현장 방문해 조사한 결과 개인신용대출 연체율은 1.2%, 법인신용대출은 2.4%였다. 이는 부동산 PF(5.0%), 부동산 담보대출(3.0%)에 비해 낮은 수치다.
업계 관계자는 “신용대출을 취급하는 업체는 대부분 연 10% 이상 이율이 난다고 광고한다. 하지만 연체율을 생각하면 실제 이율은 평균 연 5~8%일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P2P 개인신용채권은 은행권보다 이율이 높은 비교적 안전한 투자처다. 게다가 원리금 동시 상환 방식이라 채권 상태를 주기적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같은 장점 때문에라도) 고객에게 개인신용채권 상품을 추천하고 싶지만, 낮은 이율 때문에 관심이 많이 떨어진다. 게다가 담보가 없으니 부동산채권보다 위험하다는 인식이 커 고객의 반응도 좋지 않다. 하지만 채권투자에 대해 잘 아는 법인 투자자들은 안전성 때문에 신용대출을 선호해 일부 업체는 법인 투자자에게만 개인신용채권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고 밝혔다.
개인신용채권 상품에 투자했다 이율이 너무 낮아 손해를 봤다는 소비자도 종종 있다. 업체에서는 이들에게 중도 상환된 금액의 재투자를 추천한다. 원리금을 중도 상환해버리면 그만큼 받을 수 있는 이자 수익이 줄어든다. 이를 다시 비교적 안정적인 채권에 투자해 이익 감소를 최소화하라는 것. 이외에도 수익금을 재투자해 복리 효과를 노린다면 일부 채권 연체와 중도 상환으로 낮아진 이율을 회복할 수 있다.
개인신용채권 상품
개인의 신용대출 채권을 모은 상품. P2P업체는 채권자 상황에 따라 수익률과 손실 위험성이 각각 다른 부채를 금융권 대출, 혹은 직접 대출로 모은다. 이를 잘게 쪼갠 뒤 수익률은 높이고 리스크는 낮추는 방식으로 재조합해 판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