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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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트럼프의 ‘아마존 때리기’가 워싱턴포스트(WP)를 겨냥했다고?

온라인 유료구독자 100만 돌파한 WP는 쾌재

  •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입력2018-04-18 16: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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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시스]

    [뉴시스]

    최근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더 포스트’는 흥미로운 사실을 일깨웠다. 오늘날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함께 미국 3대 권위지로 꼽히는 ‘워싱턴포스트(WP)’가 1971년까지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나 읽히는 지역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영화는 WP가 전국지 반열에 오르게 된 사건을 다룬다. 1971년 6월 NYT는 케네디 행정부부터 닉슨 행정부까지 역대 미국 정부가 패전할 것을 알면서도 국민을 속이고 베트남전 파병을 강행했다는 펜타곤(미국 국방부) 문서를 폭로한다. 닉슨 행정부는 국익을 침해한다는 행정가처분 소송을 통해 NYT의 추가 보도를 금지시킨다. 

    그러자 WP 편집국장인 벤 브래들리(톰 행크스 분)는 다른 경로로 해당 문서를 입수했고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리프 분)의 용단으로 이를 보도한다. 노발대발한 닉슨 행정부는 그레이엄 발행인도 법정에 세운다. 침묵하던 다른 미국 신문들이 일제히 해당 내용을 받아 보도하고, 결국 무죄판결을 받는다. 

    정치권력에 의해 재갈이 물린 NYT를 대신해 수정헌법 제1조인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길 자처한 것이 전국지로서 명성을 안겨준 것이다. 하지만 무죄판결을 받고 법원을 나서는 순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NYT 사주와 편집국장에게 집중되고, 그레이엄과 브래들리는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한다. WP의 명성이 공고해진 것은 영화 말미에 살짝 소개된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를 통해서다. 

    WP는 워싱턴 워터게이트 호텔에 입주해 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를 대상으로 한 도청이 닉슨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임을 2년간 추적 보도했고, 1974년 미국 역사상 첫 대통령 사임 사태를 몰고 오며 명실상부한 전국지가 된다.



    트럼프의 근거 없는 비판

    2017년 6월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기술위원회(ATC) 회의석상에서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오른쪽)의 말을 경청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 [뉴시스]

    2017년 6월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기술위원회(ATC) 회의석상에서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오른쪽)의 말을 경청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 [뉴시스]

    영화의 이런 내용은 최근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에 오버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말부터 트위터로 아마존을 잇달아 때리더니 기자들 앞에서도 비난 공세를 이어갔다. 지역 소매점이나 미국 우체국(USPS) 일자리를 빼앗아가면서 세금을 제대로 내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비판은 근거가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자상거래업체에 세금을 매기지 않은 것은 아마존 출범 초창기 때뿐으로, 현재 아마존은 진출한 45개 주에서 모두 판매세를 내고 있다. 더군다나 미국 전체 소매시장에서 아마존이 차지하는 비율은 4%에 불과하다. USPS의 매출이 감소한 것은 주로 엽서, 편지 등 우편 서비스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며 오히려 상품배달 서비스는 계속 증가 추세다. 아마존 전체 배송 물량의 60%가 USPS를 통해 이뤄진다. 

    하지만 세계 최고 권력자의 집중 공격으로 아마존 주식은 3월 12일 주당 1598달러에서 한 달 뒤인 4월 11일 주당 1427달러로 171달러나 하락했다. 시가총액 기준으론 같은 기간 7700억 달러에서 6908억 달러로 792억 달러(약 84조9000억 원)나 빠졌다. 

    트럼프의 아마존 때리기는 2가지 이유로 설명된다. 첫 번째는 아마존 최고경영자인 제프 베이조스에 대한 개인적 질투심이다. WP는 “세계 최고 부호 명단에서 자신(트럼프)보다 순위가 높은 사람에게 경쟁의식을 갖고 있어서”라고 진단했다. 

    세계 부호 순위를 매기는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지난해 베이조스가 1120억 달러(약 120조 원)로 빌 게이츠를 제치고 세계 최고 부호에 등극했다고 발표했다. 반면 트럼프는 31억 달러로 766위에 머물렀다. WP는 트럼프 측근들의 발언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수년간 세계 부호 순위를 발표하는 경제전문지 포브스 편집자를 상대로 자신의 실제 자산이 집계 액수보다 많다며 로비를 한 사실이 있다”고 전했다. 

    두 번째는 앞선 이유를 보도한 WP의 소유주가 베이조스라는 데 있다. 베이조스는 2013년 현금 2억5000만 달러를 주고 그레이엄 가문으로부터 WP를 인수했다. 당시 WP 발행부수는 47만 부로 미국 신문 중 7위였다. 1993년 83만 부를 정점으로 계속 하락하자 80년간 WP를 소유해온 그레이엄 가문도 손을 놓은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창업자가 WP 인수에 나선 이유는 뚜렷했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오프라인 매체를 온라인 매체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전략이었다. 베이조스는 WP의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되 WP의 온라인화를 강력히 가속했다. 100명의 기자와 편집자를 더 고용하면서 온라인 광고 및 구독자를 늘려갔다.

    2018년은 WP 최고의 해가 될 것

    그 결과 지난해 9월 WP 온라인 유료 구독자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현재 30만 명 수준으로 추정되는 오프라인 독자 숫자의 3배가 넘는다. 미국 신문중엔 NYT 250만 명, WSJ 127만 명에 이은 3위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그해 1월까지만 해도 이 수가 50만 명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올해 안에 WSJ를 따돌리고 2위로 올라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로 인해 2016년부터 올해까지 WP는 3년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을 낳고 있다. 

    WP의 이 같은 약진은 ‘트럼프 때리기’의 효과다. WP는 2016년 대선 때 기자 20명을 투입해 트럼프 검증팀을 꾸렸고, 트럼프의 후원금 기부 약속 미이행, 음담패설 녹음파일을 특종 보도했으며, 지난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대통령의 실세 사위가 러시아 커넥션의 몸통’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것도, 지난해 11월 트럼프의 정당인 공화당의 텃밭 앨라배마 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성추문 폭로로 공화당의 패배를 가져온 것도 WP였다. NBC 방송은 니키 워셔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에 비판적인 사람에게 WP는 첫 번째 읽어야 할 매체가 되고 있다”며 “2018년은 WP에게 최고의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베이조스와 아마존은 트럼프의 공세로 주가가 출렁이는 타격을 입었음에도 정면 대응을 자제하며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다고 WSJ는 보도했다. 특히 베이조스가 임직원 전체가 참석한 회의에서 “시장은 단기적으론 투표기, 장기적으론 계량기”라는 증권분석의 창시자 벤저민 그레이엄의 말을 인용하며 회사의 장기적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할 것을 주문했다고 강조했다. 

    WP에선 1971~74년 닉슨 행정부 때 위기가 기회가 됐듯이, 2016~2018년 같은 공화당 출신 트럼프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제2의 부흥기를 열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감돌고 있다. 

    영화 ‘더 포스트’는 워터게이트 호텔의 도난 신고가 접수되는 마지막 장면 직전 닉슨 대통령이 WP를 향해 저주의 말을 퍼붓는 내용을 육성녹음으로 들려준다. 닉슨의 저주가 WP에겐 명성을 안겨준 복음이었던 셈이다. 저주에 가까운 트럼프의 공격이 지금 베이조스와 WP의 귀에 어떻게 들릴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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