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 창작공동체 아르케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은 냉혹하고 무질서한 세상의 모순을 역설적이면서도 날카롭게 꼬집는다. 그리고 거기에는 항상 말이 안 되는, 더욱 황당한 해학적 웃음이 동반된다. 처녀작인 ‘전쟁터의 소풍’은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 때문에 전 세계에서 다양한 해석으로 공연되는 대표적인 블랙코미디 레퍼토리다. 연출자 김승철은 ‘비정한 전쟁의 허무함’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이고 강렬한 무대방식으로 선사하며 관객을 압도한다.
사진 제공 · 창작공동체 아르케
엉겁결에 징집당한 자뽀와 제뽀는 전쟁의 당위성에 강한 의문을 품고 전쟁을 그만둘 의외의 방법을 알아낸다. 집으로 돌아갈 생각에 환호를 지르며 모두 한바탕 춤판을 벌인다. 그러나 공습 사이렌이 울리고 축제장은 화염에 휩싸인다. 벅찬 기쁨으로 춤에 열중하던 그들은 한 명씩 포탄에 쓰러지고 무대에는 적막이 흐른다. 위생병(김관장 · 정다정 분)이 거둬들이는 죽은 이의 신발과 바닥을 뒹구는 철모는 무자비한 전쟁의 실상을 보여준다.
배우의 침묵이 대사 이상의 예술이 되고, 음악 역시 또 다른 무대언어다.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 중 ‘라르고’,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 중 ‘환희의 송가’,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천국과 지옥’ 중 ‘캉캉’ 등 귀에 익숙한 선율이 흐르는 동안 배우들은 섬세한 표정과 절묘한 움직임을 곁들이며 극적 긴장도를 높인다. 극장을 가득 채운 소리와 몸짓의 열기로 관객 역시 극 중 인물과 혼연일체 돼 연극에 흠뻑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