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지난해 6월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미연합사령부를 방문해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문 대통령 왼쪽)과 함께 마크 클라크 제3대 유엔군사령관(미 육군 대장)이 정전협정문에 서명할 때 사용했던 책상을 만져보고 있다. [동아DB]
김 위원장은 북·중 정상회담 자리에서 “나의 첫 외국 방문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인 것은 너무도 마땅한 것이며 나의 숭고한 의무”라고 밝혔다. 미국 대북제재에 동참한 중국 측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던 과거와 사뭇 다르게 북·중이 혈맹관계임을 다시 한번 과시한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한미가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를 취하면 비핵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5월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폐기를 단숨에 끌어내려는 미국의 협상 전략에 견제구를 날리는 효과를 낳았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미국 정책 결정자 가운데 북한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 존 볼턴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한 데 대한 북한식 대응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원샷 타결’ 압박에 맞서 단계적으로 핵 폐기에 나서겠다는 뜻을 천명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반도 비핵화 협상 과정에 남북과 미국 3자 외에 중국까지 끌어들일 가능성을 열어뒀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의 대북 경제압박에 동참해왔다. 그래서 북·중 관계가 많이 소원해졌다. 그런 가운데 북·미 정상회담이 갑작스럽게 결정됨에 따라 북한에 대한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진 것에 당황하고 있었다. 그때 김 위원장이 방중카드를 미끼로 내놓자 이를 덥석 물었다. 북·미 관계가 급속히 가까워지는 것을 견제하면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자신들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다.
유엔사는 휴전선 관리 맡을 가능성도
중국은 그동안 북핵 폐기 대가로 정전협정을 종전협정 내지 평화협정으로 전환할 경우 중국도 참여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왔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군사정전협정이 유엔군을 대표한 미국과 북한, 중국 사이에 체결됐기 때문이다. 당시 남한 이승만 정부는 정전 자체에 반대한다며 협정 체결에 참여하지 않았다.북한은 이를 빌미로 군사정전협정을 종전협정으로 전환할 경우 남한을 뺀 3자 간 체결을 주장해왔다. 그러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과 미국의 3자 당사자 논리를 들고 나왔다. 중국의 입김을 배제하면서 남한과 미국을 북한 홀로 상대한다는 모양새가 강대국이란 나르시시즘을 충족해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갑자기 방중카드를 꺼내 듦으로써 게임 참여자 수를 다시 늘릴 듯한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3자가 됐든, 4자가 됐든 종전협정 내지 평화협정이 체결될 경우 남한은 2가지 문제에 봉착한다. 유엔군사령부(유엔사) 해체 문제와 주한미군 주둔 문제다.
유엔사는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 7월 7일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제1588호에 근거해 7월 24일 정식으로 출범했다. 또 유엔 안보리 결의 제1588호에 의거해 가장 많은 병력을 파견한 미국이 사령관 임명과 유엔 깃발 사용 권한을 부여받았다. 정전협정 체결 당시에도 미국은 유엔군사령관 자격으로 참여했다.
유엔사는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도 갖고 있었다. 1950년 7월 13일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작전 상태가 계속되는 동안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유엔군사령관인 미국 맥아더 원수에게 정식으로 이양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1978년 11월 7일 한미연합사령부가 창설되면서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령부로 이관됐고, 유엔사는 오직 정전협정과 관련한 임무만 맡게 됐다. 군사정전위원회 가동, 중립국 감독위원회 운영,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관할 경비부대 파견 및 운영, 비무장지대(DMZ) 내 경계초소 운영, 북한과 장성급 회담 등이다.
현재 유엔사에는 미국을 비롯해 호주, 캐나다, 프랑스, 노르웨이, 태국, 영국 등 6·25전쟁 당시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국가들이 소속돼 있지만 사실상 미국이 주요 역할을 맡고 있다. 주한미군 사령관은 유엔군사령관과 한미연합사령관을 겸임한다. 따라서 정전협정이 궁극적으로 평화협정으로 대체될 경우 유엔사는 존재 근거가 사라진다.
유엔사 해체가 한국 측에 군사적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미연합사령부가 이미 역할 대부분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6·25전쟁이 북한의 침략전쟁임을 뒷받침하는 동시에 유사시 유엔군 참전을 보장할 것이란 상징적 역할을 수행해온 기관이 해체된다는 점에서 국내에서 논란이 빚어질 여지가 크다. 구갑우 교수는 “정전협정을 대신할 협정에서도 휴전선 관리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남한 측에선 유엔사를 존속시키면서 그 기능을 맡기려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주둔은 북한도 용인
2015년 9월 김포 군하리 종합훈련장에서 열린 한미 해병대 연합훈련 도중 한미 해병대들이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해 서로 물을 부어주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북한은 1980년대 이후 줄기차게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해왔다. 그러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주한미군 주둔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한 뒤 실제 북한은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 ‘노동신문’ 등에서 주한미군 철수 표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이 공식적으로 주한미군 주둔을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한 적은 없다. 남북관계나 북·미 관계가 안 좋을 때는 다시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들고 나오긴 했지만 남북관계가 좋을 때는 여러 경로를 통해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한다, 묵인한다는 이야기를 계속해왔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할 가능성은 없다고 봤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이 정권 수립 70주년을 축하하는 9·9절에 앞서 이뤄질 8월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축소 내지 연기를 요청하는 식으로 군사훈련 축소와 전폭기, 잠수함 등 전략핵자산의 남한 배치 자제 정도를 요구할 가능성은 있어도 주한미군 철수나 병력 감축은 요구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구갑우 교수는 “한반도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북한은 물론, 중국도 주한미군 주둔 문제를 직접 거론할 개연성은 적다”면서도 “다만 평화협정 타결이나 북·미 수교 단계에 도달할 경우 주한미군 병력이나 기지 수 축소를 요구할 가능성은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