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병사들이 경기 의정부 미군기지 캠프 스탠리에서 땅굴 전투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주한미군]
인민군 최고사령부 야전지휘소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이 땅굴 전투 훈련에 대해 브리핑을 받고 있다. [주한미군]
미 육군 정보보안사령부(USAINSCOM)와 중앙정보국(CIA)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땅굴 굴착 능력은 세계적 수준이다. 북한은 593부대, 667부대, 744부대 등 땅굴을 전문적으로 파는 군부대를 보유하고 있다. 북한은 미얀마,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 등에 땅굴 굴착 기술을 수출했는가 하면, 핵 공격과 벙커버스터 방어를 위한 이중 돔형 기술까지 개발했다.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 등 북한 수뇌부는 한미연합전력의 정밀 타격에 대비해 평양 인근을 비롯해 북한 전역에 지하벙커를 구축해놓았다. 현재 북한은 핵 · 미사일 시설뿐 아니라 산을 뚫어 전투기 격납고까지 건설해놓았으며, 지하 군시설만 6000~7000개 이상인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북한 수뇌부의 지하 전쟁지휘소와 도주용 대피처의 규모는 어마어마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일본으로 망명한 북한 정찰총국 소속 대좌(대령급) A씨는 평양 외곽에 있는 김정은의 지하벙커 위치를 공개하기도 했다. 평양 삼석구역 대성산 국사봉에 있는 이 지하벙커는 인민군 최고사령부 야전지휘소로, 유사시 군 수뇌부를 위한 대피시설로 활용된다. 대성산 북쪽으로 이어진 자모산에도 김정은이 애용하는 특각(전용별장)이 자리하고 있는데, 핵 공격과 벙커버스터를 막아낼 수 있도록 지하 100m 깊이에 임시지휘소가 마련돼 있다. 이들 지하벙커는 강화 콘크리트와 강철재로 건설됐다. 지하벙커는 핵·미사일 전력을 총괄하는 전략군과 일선 주요 부대를 김정은이 직접 지휘할 수 있는 통신망, 물 · 식량 등 전쟁물자, 회의실, 핵·화생방 방호시설을 갖춘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또 수뇌부 대피용 땅굴망도 구축해놓았다.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는 2009년 평양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지하 300m 깊이의 거대한 김정일 전용 땅굴에 대해 밝힌 적이 있다. 황 전 비서는 “수십 년 전 평양 지하철과 연결된 비밀 땅굴에 직접 가봤다”며 “지하철에서 다시 150m 정도 더 내려갔다”고 말했다. 북한은 중국 접경지역에서 수십km 떨어진 곳에도 지하벙커들을 건설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미국 전략폭격기와 스텔스 전투기가 한국에 대거 전개됐을 때 김정은이 북 · 중 접경지역의 지하벙커로 피신했다는 설이 나돌기도 했다.
특히 북한은 핵무기를 비롯해 생화학무기와 탄도미사일들을 지하시설에서 생산하거나 보관하고 있다. 게다가 장사정포와 각종 로켓, 야포, 탄약 등을 휴전선 일대 지하갱도에 은닉해놓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휴전선 인근 지하갱도에 신형 122mm 방사포와 170mm 자주포, 240mm 방사포 등 장사정포 330여 문을 배치해 유사시 서울 등 수도권의 핵심 시설을 공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 상태다.
북한 핵무기 찾으려면 지상군 투입 해야
지하 깊숙이 건설된 북한 평양 지하철역의 모습. [위키피디아]
미군은 최근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해 휴전선 인근 북한군의 지하시설 파악에 나섰다. 더그 윌치 육군 신속능력처(Rapid Capabilities Office · RCO) 처장 등이 지난해 9월 한국을 방문해 북한군의 지하시설 위치 등을 조사했다. 윌치 처장은 “북한은 지하갱도에 로켓과 야포, 탄약은 물론 화학무기 등을 은닉해 개전 초 집중 포격에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주한미군은 이미 북한의 지하시설과 벙커 등에서 전투할 것에 대비해 관련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주한미군은 지난해 12월 경기 의정부 미군기지 캠프 스탠리에서 지하에 은닉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를 제거하는 ‘워리어 스트라이크 9’이라는 땅굴 전투를 실전처럼 훈련했다. 주한미군은 이 훈련에서 새로운 통신장비인 MPU5를 시험했다. 이 장비는 지하에서도 와이파이(Wi-Fi)와 유사한 통신 환경을 조성해 땅굴을 탐색하는 병력끼리 문자메시지나 사진을 주고받을 수 있다. 미군의 최정예 특수부대인 육군 델타포스와 해군 네이비실 6팀, 75 레인저 특공연대, 그린베레도 김정은 참수작전 등을 위해 땅굴 전투 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지하는 지상·해상·공중에 이어 제4의 전쟁터다. 특히 제2 한국전쟁이 발발할 경우 북한이 구축해놓은 땅굴이 가장 치열한 전장이 될 수 있다. 미군 합동참모본부의 전략 담당 부국장인 마이클 듀몬트 해군 소장은 “북한이 지하 깊숙이 은닉하고 있는 핵무기들을 찾아내 완벽하게 확보하는 유일한 방법은 지상군들을 투입하는 것밖에 없다”고 밝혔다. 미군이 땅굴 전투 훈련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