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47

2022.07.08

뇌와 기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아주 긴밀한 연결

[궤도 밖의 과학] 생각만으로 기계를 조종하는 특별한 인터페이스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입력2022-07-1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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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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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하면서 싸우는 만화 속 거대 로봇처럼, 멀리 있는 무언가를 생각만으로 조종할 수 있다는 상상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법하다. 단순히 레버를 올리거나 버튼을 누르는 것을 넘어 생각으로 조종한다면 정교하면서도 빠른 작동이 가능하다. 다만 이때 생각을 어떻게 물리적 움직임으로 연결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럴 때 사용하는 신호가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뇌파다.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지 잘 알지 못해도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이 종종 있는데, 뇌파도 그중 하나다. 뇌에서 나오는 비밀스러운 신호 정도로 인지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뇌의 신경세포 사이에서 신호가 전달될 때 발생하는 전기적 흐름이다. 이걸 통해 뇌와 기계를 연결하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계속돼왔다. 하지만 연결된 로봇 팔을 움직이는 정도를 넘어 사용자 의도를 섬세하게 파악하고 정교하게 팔 움직임을 조종하는 기술은 정확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최근 정재승 KAIST(한국과학기술원) 교수 연구팀은 3차원 공간에서 생각만으로 가상의 로봇 팔을 정확히 조종하는 뇌-기계 인터페이스 시스템을 개발했다.

    최근 KAIST 연구팀은 3차원 공간에서 생각만으로 가상의 로봇 팔을 정확히 조종하는 뇌-기계 인터페이스 시스템을 개발했다. [GettyImages]

    최근 KAIST 연구팀은 3차원 공간에서 생각만으로 가상의 로봇 팔을 정확히 조종하는 뇌-기계 인터페이스 시스템을 개발했다. [GettyImages]

    먼저 조종 방향에 대한 사용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 연구자들은 사용자의 뇌 활동만으로 정확히 어떻게 움직이고 싶은지를 해석할 수 있는 인공지능 모델을 개발했다. 대뇌 심부에서 측정한 뇌파는 개인마다 차이가 크고, 미약한 파동이 뒤섞여 거대한 전기적 신호로 나타나기에 정확한 신호를 읽어내기가 매우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개별 뇌파 신호의 주요 특성을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학습할 수 있게 설계했고, 이를 효율적인 방식으로 활용해 3차원 공간의 24개 방향으로 꽤 정확히 움직일 수 있도록 구현했다. 여기엔 찰스 다윈의 적자생존 이론을 기반으로 한 계산 모델인 유전자 알고리즘도 포함된다. 우선 해석하고자 하는 뇌파에 대한 가능한 결론들을 정해진 형태의 자료 구조로 표현한다. 이후 이를 조금씩 변형해가면서 최적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통해 연구자들은 뇌파만으로 평균 90% 이상 정밀도의 움직임을 완성했다.

    뇌파를 통해 알아낼 수 있는 수많은 정보

    기존에는 공학적 신호 처리를 기반으로 뇌파를 해석해 로봇 팔을 움직이는 방식이었지만, 이번엔 실제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구조를 모방한 인공신경망을 통해 개선된 형태의 인터페이스 시스템을 완성했다. 성공적인 시뮬레이션 결과를 얻었기에 실제 기계적인 로봇 팔을 움직이는 현장에도 당연히 적용할 수 있다. 사고로 팔이나 다리를 잃은 환자, 사지가 마비된 환자가 생각만으로 의수나 의족을 움직이고, 스마트폰이나 휠체어 같은 외부 전자장비를 쉽게 조종할 수 있다면 일상에서 광범위하게 사용 가능하다는 말이다.

    실제로 뇌파를 통해 먼 거리에서 컴퓨터나 로봇을 제어하는 방식을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고사양 하드웨어가 필요하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 대신 뇌-기계 인터페이스 시스템을 적용하는 데 최적의 환경이 있는데, 바로 메타버스라는 확장된 세계다. 가상이나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가 합성된 메타버스는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지만, 애초 현실과 가상을 연결한다는 핵심 본질이 어디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크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개인의 아바타를 생각만으로 움직이거나 온라인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할 수 있다면 비로소 메타버스는 진정한 의미에서 또 다른 내가 존재하는 초월적 세상이 될지 모른다.

    뇌파를 검출하는 기술이 점점 정밀해진다면 이를 통해 만성피로나 우울증 같은 신체적·정신적 상태 변화에 미리 대비할 수 있고, 간질이나 치매처럼 심각한 뇌 기능 장애를 예측하고 진단하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개인이 보유한 뇌파의 신호별 특성을 파악한 뒤 기존에 기록된 정보와 차이가 발생하면 뇌와 관련된 의료 진단을 조기에 간단히 시작해 더 큰 위험이 도래하기 전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얼마 전 나온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면 중 수집된 뇌파로 미래 건강을 예측하는 일까지 가능해질 전망이다. 잠자는 동안에는 호흡이나 심박수 같은 중요한 생체 신호들을 통해 건강 상태를 지켜볼 수 있다. 이뿐 아니라, 수면 중 뇌파 측정을 통해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를 신경질환, 정신질환, 심혈관질환이나 사망률까지 알아낼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이제 오랫동안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기 위해 서는 앞으로 수면 데이터를 꼼꼼히 모으는 것도 중요해졌다.



    뇌파를 해석하면 개인의 감성도 인지할 수 있다. 일례로 무의식을 분석해 마케팅에 적용하는 ‘뉴로 마케팅’은 사용자 감성에 맞는 맞춤형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한다. [GettyImages]

    뇌파를 해석하면 개인의 감성도 인지할 수 있다. 일례로 무의식을 분석해 마케팅에 적용하는 ‘뉴로 마케팅’은 사용자 감성에 맞는 맞춤형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한다. [GettyImages]

    뇌파를 해석해 개인의 감성을 인지하는 것도 가능하다. 무의식을 분석해 마케팅에 적용하는 ‘뉴로 마케팅’은 뇌 신경세포를 뜻하는 뉴런(neuron)과 마케팅(marketing)의 합성어로, 사용자 감성에 맞는 맞춤형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한다. 뇌파를 통해 측정한 정보를 자세히 분석해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소비자의 솔직한 마음을 읽어내면 제품 가격이나 디자인에 대한 선호도, 소비 태도를 정확히 파악해 판매 현장에 적용할 수 있다. 심지어 뇌파를 이용하면 외모 선호도 관련 연구도 가능하다. 혹시 선호하는 배우자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상태라면 뇌파를 통해 깊은 내면에 숨어 있는 진짜 이상형을 발견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아마도 미래에는 직접 펜을 들거나 키보드를 두드릴 필요 없이 생각만으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과 컴퓨터가 어떠한 입력장치도 없이 오직 생각만으로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빠르게 정보를 교환하게 될 테고, 나아가 사람끼리도 아무 말 없이 생각만으로 대화하는 시대가 열릴 수도 있다.

    자기장으로 뇌 기능 제어하는 연구 등장

    뇌에서는 뇌파라는 전기적 신호 외에도 미세한 자기장의 변화까지 나타난다. 뇌파가 만들어내는 미세한 생체 자기장이 뇌 속 양성자를 공명시키는 뇌파 자기공명 현상을 측정하면 서로 떨어진 뇌 부위의 기능적인 연결 상태를 시각화할 수 있다. 최근에는 자기장으로 뇌 기능을 제어하는 연구까지 등장했다. 뇌파 혹은 뇌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의 변화를 측정한다는 기존 연구의 상식을 뛰어넘어, 반대로 외부에서 자기장을 통해 어쩌면 뇌를 조종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는 아마 영화 ‘엑스맨’에서 타인의 생각을 조종하는 프로페서 엑스의 능력과 자기장을 제어하며 무시무시한 위력을 뽐내는 매그니토의 능력이 자연스럽게 결합해 현실에 등장한 형태라고 볼 수 있겠다.

    철새는 계절에 따라 서식지를 이동하고, 연어는 성체가 되면 다시 강을 거슬러 올라가 상류에서 알을 낳는다. 이렇게 회귀 본능 있는 동물들은 뇌 속에 나침반 역할을 하는 자기 수용체가 있다, 이걸 모방한 나노 나침반을 기초과학연구원 연구팀이 개발했다. 이 작은 나침반은 자기장을 걸면 회전하는데, 고작 회전하는 나침반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마 상당히 생소한 단어일 텐데, 피에조 이온 채널(piezo ion channel)이라는 게 있다. 이 채널은 물리력에 반응해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유입되는 이온 양을 조절하는데, 이온이 다량으로 들어가면 그만큼 세포가 활성화된다. 쉽게 말해 내부에서 뭔가로 피에조 이온 채널을 건드리면 특정 세포가 열심히 일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이제 쥐의 우뇌에 있는 운동신경세포에 피에조 이온 채널을 만들고, 바로 이곳에 아까 개발한 나노 나침반을 붙인다. 이후 자기장 생성 장치로 쥐가 있는 곳에 자기장을 걸었더니 가만히 멈춰 있던 쥐가 갑자기 왼발의 운동신경이 활성화돼 반시계 방향으로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놀라운 건 이때 쥐의 평균 속도가 일반 쥐의 5배였다는 점이다.

    만드는 방식도 간단하진 않다. 여기 쓰인 방식이 코로나19 백신 가운데 mRNA 백신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기술이다. 독감 바이러스인 아데노바이러스에서 그리 좋지 않은 부분을 제거하고, 그 대신 여기에 코로나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집어넣어 mRNA 백신을 제조하면 성공이다. 그리고 만약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 대신 피에조 이온 채널을 만드는 유전자를 넣는다면, 몸속에 들어간 아데노바이러스는 유전자를 해석해 이번엔 mRNA 백신 대신 피에조 이온 채널을 만든다. 여기에 특수 주사기로 500㎚ 크기의 나노 나침반을 붙이면 된다. 자기장으로 나노 나침반을 돌릴 때도 굉장히 조심해야 하는데, 회전력이 너무 크면 세포나 이온 채널이 손상될 수 있고, 너무 작으면 이온 채널이 아예 열리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주 정교하게 힘을 줘야 하는데, 이걸 해낸 것이다.

    뇌와 기계 사이에 일어나는 긴밀한 연결

    결국 쥐 우뇌의 채널을 열어 왼발의 운동신경을 활성화하거나, 좌뇌를 자극해 오른발을 활성화한다면 각각 회전하는 방향이 달라진다는 결과도 확인했다. 과거에는 이런 식으로 뇌와 연결된 운동신경세포의 활성화 정도를 조절하려면 외과적 수술을 통해 작은 칩을 뇌에 삽입하거나 광섬유를 연결해 빛으로 명령을 내려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번거롭고 위험한 절차 없이 간단하게 운동을 시킨다. 심지어 자기장은 빛보다 인체 침투력이 높기에 신체 곳곳에 존재하는 이온 채널을 원격으로 조절하는 게 가능할 수도 있다. 혹은 운동신경세포 대신 시각세포나 청각세포 등 다른 세포로 영역을 넓혀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독일 물리학자이자 불확정성 원리를 주창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자연과학이란 자연을 단순히 묘사하고 설명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을 잇는 중개자”라는 말을 남겼다. 이론과 실험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은 사람과 자연을 이어주고 있으며, 이제 한층 발전된 과학기술은 뇌 자체를 세상과 직접 연결하고 있다. 여전히 뇌는 미지의 영역이고, 뇌파도 끝없이 연구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그만큼 뇌 과학과 관련된 연구 범위도 점차 넓어지고 있으며,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활용 방법이 등장한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새로운 세계와 연결될지 기쁜 마음으로 기대하며 기다려보자.

    궤도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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