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3

2013.04.15

관세음보살은 왜 두 승려를 유혹했을까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 정여울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입력2013-04-15 11: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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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여성의 모습으로 화한 관세음보살의 재치와 유머가 반짝이는 이야기인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 나온다. 관세음보살이 원래 남성이었는데 여성으로 변신했다기보다, 관세음보살 자체가 여성과 남성의 구분을 초월한 존재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죽마고우인 두 승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은 다른 암자에 살면서 도를 닦고 있었다. 성덕왕 8년(709) 저물어가는 어느 봄밤, 갓 스물 정도로 보이는 아름다운 여인이 온갖 향기를 풍기면서 달달박박에게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청했다. “걸음은 더디고 해는 떨어져 모든 산이 어둡고, 길은 막히고 성은 멀어 인가도 아득하네. 오늘은 이 암자에서 자려 하오니 자비하신 스님은 노하지 마소서.” 달달박박은 오랫동안의 청정한 수행생활이 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파탄 날 것을 염려한 나머지 그녀를 냉정하게 문전박대한다. “사찰은 깨끗해야 하니, 그대가 가까이 올 곳이 아니오.”

    오갈 데가 없는 아름다운 여인은 이번에는 노힐부득을 찾아간다. 한층 간절한 어조로 노힐부득에게 하룻밤 묵어갈 것을 청하는 여인. 노힐부득은 계율에 얽매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계율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임을 알았다. “이곳은 부녀와 함께 있을 데가 아니오. 그러나 중생의 뜻에 따르는 것도 보살행의 하나이고, 더구나 깊은 산골짜기에서 밤이 어두우니 소홀히 대접할 수 있겠소?” 자신이 받아주지 않으면 인적 없는 산골짜기를 혼자 밤새도록 헤매야 하는 그녀의 처지를 생각하니,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밤이 깊어가자 노힐부득은 끓어오르는 잡념과 싸우고자 열심히 염불을 했다.

    여인의 유혹 이기는 비결은 자비심

    그러나 아름다운 여인은 ‘얌전한 손님’이 아니었다. 그녀는 또 한 번 노힐부득을 시험한다. 자신이 곧 해산을 해야 한다며 도와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 여인은 바로 관세음보살로, 임신한 젊은 처자의 모습을 하고 두 승려를 찾아왔던 것이다. “부득은 그 정경을 불쌍히 여겨 거절하지 못하고 촛불을 들고서 은근하게 대했다.” 고통 받는 여인을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여인의 ‘유혹’을 극복하는 비결, 즉 ‘자비심’이었다.



    아름다운 여인의 유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낭자는 해산을 마치자 또 목욕하기를 청했다.” 해산을 마친 여인은 목욕을 하고 싶다는 핑계로 자신의 나신(裸身)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일까. 노힐부득은 남자로서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인간으로서 그리고 승려로서 ‘처자가 가엾다는 심정’을 더 강하게 느낀다. 노힐부득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마음속에 얽혔으나 가엾은 심정이 더욱 커져서”, 손수 목욕통까지 준비해 여인을 그 안에 앉히고 물을 끓여 정성스레 목욕까지 시켜준다.

    관세음보살의 현신인 여인이 목욕을 시작하자 목욕물에서 신비로운 향기가 피어오르더니 목욕물이 금빛으로 변했다. 거기에 아름다운 여인의 마지막 유혹이 더해진다. “우리 스님께서도 여기에서 목욕하십시오.” 노힐부득은 마음속으로 엄청나게 괴로웠겠지만 마지못해 여인의 말을 따른다. 여기까지 ‘여인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여인의 유혹’을 거절하는 노힐부득의 마음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아름다운 여인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그녀를 오직 ‘가련한 중생의 한 사람’으로 성심껏 대접한 노힐부득의 정성에 감동한 것일까. 드디어 관세음보살이 본색을 드러낸다. 금빛 목욕물에 노힐부득의 살이 닿자 그의 살결이 금빛으로 변한다. 이윽고 옆을 돌아보니 문득 연화좌(부처, 보살이 앉는 자리)가 나타났다. 아름다운 여인은 노힐부득에게 연화좌에 오를 것을 권하며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나는 관세음보살인데 이곳에 와서 대사를 보아 대보리(大菩提)를 이루어준 것입니다.” 그 말을 마치자마자 관세음보살은 홀연히 사라진다.

    한편, 달달박박은 여인의 유혹을 뿌리친 자신이 대견해 의기양양한 기분으로 노힐부득을 골리러 간다. “부득이 오늘 밤에 반드시 계(戒)를 더럽혔을 것이니 내가 가서 그를 비웃어주리라.” 그러나 달달박박의 예상을 깨고, 죽마고우였던 노힐부득은 어느덧 아름다운 미륵존상이 돼 오색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달달박박은 그제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그는 관세음보살에게서 ‘여인의 유혹’만을 보고 ‘부처의 광휘’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관세음보살은 왜 두 승려를 유혹했을까

    그림 제공·㈜우리교육 ‘동화로 읽는 삼국유사2’ 그린이 황성혜

    부처의 광휘 발견 못 해

    그는 땅을 치고 후회하며 미륵존상이 된 옛 친구에게 부탁한다. “나는 마음에 장애가 너무 겹쳐서 다행히 부처님을 만나고서도 도리어 만나지 못한 것이 되었습니다. 대덕지인(大德至仁)께서는 나보다 먼저 뜻을 이루었으니, 부디 옛날의 교분을 잊지 마시고 나도 함께 도와주셔야 되겠습니다.” 자비심 넘치는 미륵존상은 옛 친구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성불해 만백성을 향해 불법을 강의한 뒤 구름을 타고 홀연히 사라진다.

    관세음보살은 왜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용맹정진하던 두 젊은 승려를 시험했을까. 그것은 단순한 ‘유혹’이 아니라 남성의 마음속에 깊이 숨겨진 내면의 여성성, 아니마(Anima)의 존재를 형상화한 것은 아닐까. 심리학자 키를 구스타프 융은 아니마에는 네 가지 단계가 있다고 했다. 1단계는 원시적이고 야생적이며 유혹적인 여성성, 즉 하와 이미지로서의 아니마다. 2단계는 로맨틱하고 심미적인 여성성, 예컨대 헬레네와 같은 여성이다. 3단계는 마리아의 아니마, 즉 에로스적인 사랑을 신성한 헌신으로까지 고양한 여성이다. 4단계는 가장 성스럽고 숭고한 것으로, 지혜의 여신 아테네와 같은 여성성이다.

    관세음보살의 여성성도 바로 이 4단계의 아니마를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관세음보살은 ‘유혹’의 빛깔로 다가와 ‘자비’를 요구하고, 낭만적 사랑의 시선을 던지는 듯하다가도 모성의 손길로 존재를 감싸준다. 그리고 마침내 지혜와 해탈의 목소리로 깨달음의 길을 보여준다. 달달박박은 관세음보살의 아니마에서 1단계의 여성성, 즉 하와의 유혹만 본 것이다. 그가 자신의 힘으로 해탈하지 못한 것은 아름다운 여인에게서 관능과 유혹의 위험만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노힐부득은 소박한 친절로 시작해 너그러운 자비를 베풀고, 마침내 한 여인에게서 구원의 메시지를 실현해낸 것이 아닐까.

    그림 제공·㈜우리교육 ‘동화로 읽는 삼국유사2’ 그린이 황성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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