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4

..

갑작스러운 금융위기 남의 일 아냐

핵심과 비핵심 자산 분류하고, 보유 자산과 처분 자산을 구분하라

  • 이상건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

    입력2015-09-07 11:5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갑작스러운 금융위기 남의 일 아냐

    빚을 내 집을 마련하는 사람이 늘면서 올 들어 집값이 상승세로 돌아섰다.

    가계부채 관련 수치가 발표될 때마다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올해 2분기(4~6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1130조5000억 원이다(그래프 참조). 국민 5000만 명으로 나누면 1인당 약 2260만 원 빚이 있는 셈이고, 국민 전체가 아닌 핵심생산인구(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한 시기인 25~49세 인구)를 기준으로 하면 5800만 원가량 된다. 규모도 규모지만 증가 속도와 질(質)도 썩 좋지 않다. 2000년대 초 이후 연평균 약 12%씩 부채가 늘고 있다. 내수경기가 침체를 보이고 실질소득이 감소하는 가운데 저소득층이 고리 대출을 쓰고 있는 점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부채의 나쁜 영향 3가지

    부채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로는 대략 3가지다. 부채는 금융회사, 그중에서도 특히 은행을 매개로 이뤄진다. 은행은 담보나 상환 능력 여부 등을 고려해 돈을 빌려준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돈을 갚지 못하면, 그것도 대규모로 그런 일이 발생하면 은행권이 부실화된다. 소위 말하는 ‘금융위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전형적 사례가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다. 부채로 쌓아 올린 탑은 바벨탑처럼 순식간에 무너졌다. 일부 전문가가 과도한 부채를 걱정하는 가장 큰 이유가 금융 시스템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부채는 금융 시스템뿐 아니라 내수 소비와도 관련이 깊다. 먼저 부채의 긍정적인 측면을 예를 들어 살펴보자. 돈이 없는 사람이 신형 자동차를 사려면 어떻게 할까. 할부금융을 이용하면 된다. 자동차 할부금융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동차 판매량이 늘어난다. 자동차는 부품이 2만 개가량 들어가는 제품이다 보니 자연스레 부품회사들의 실적도 좋아진다. 자동차 업종의 실적이 개선되면서 근로자들의 급여도 인상된다. 근로자들의 소득 증가로 씀씀이가 커지면서 내수경기도 좋아진다. 그런데 할부금융도 부채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이자를 내야 하고, 언젠가는 모두 갚아야 한다. 자동차 할부금융 외에도 나가는 돈이 많은데, 소득이 늘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이때부터 사람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할 것이다. 이번에는 부채로 소비가 위축되는 국면이 나타난다. 부정적 측면이 도드라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단할 수 없지만 지금 한국 사회의 부채는 내수경기에 긍정적 영향보다 부정적 영향을 더 많이 미치는 것 같다.

    갑작스러운 금융위기 남의 일 아냐
    빚을 내 집을 마련하는 사람이 늘면서 집값은 상승했지만 다른 분야의 소비는 여전히 한겨울이다. 과거에는 건설경기가 살아나면서 내수경기도 좋아졌지만 최근에는 이런 연관관계도 크게 약화된 듯하다. 주택가격 상승이란 ‘자산효과’가 소비로 잘 연결되지 않고 있다.



    부채 규모가 일정 단계를 넘어서면 금리 민감도가 매우 높아진다. 1% 변화에 따라 이자 금액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금리인상에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 여기 있다. 비정상적이고 특수한 상황에서 이뤄진 양적완화 정책은 언젠가는 종료돼야 한다. 연말이나 늦어도 내년까지 미 연준이 금리를 올리게 되면, 다른 국가들도 금리를 올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만일 자국 경기가 어렵다고 금리인하를 고집하다가는 자본 유출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똑같이 3% 이자를 받을 수 있다면, 다른 나라에 투자하는 것보다 미국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최소 미국보다는 조금 높은 금리를 제공해야만 해외 투자자들을 잡아둘 수 있다. 미국 금리인상이 남의 일이 아닌 이유다.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자 금융 당국도 발 벗고 나섰다. 7월 ‘가계부채 종합관리방안’을 발표하면서 향후 가계대출을 연착륙시키기 위한 방안을 내놓았다.

    관리 방안은 크게 4가지인데, 그중 일반인과 직결되는 것은 2가지다. 하나는 거치식·일시상환 방식에서 ‘처음부터 나눠 갚아나가는 방식’으로 대출 구조를 바꾸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담보 위주에서 빚을 갚을 수 있느냐를 따지는 ‘상환능력 심사 방식의 개선’이다. 달리 표현하면 내년부터는 원리금 분할 방식의 대출이 주류를 이룰 것이고, 소득이 적은 사람은 대출을 받기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자금 여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올해 안에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고 하는 것도 내년부터 대출 조건이 까다로워질 것을 염려해서다.

    재정 소방 훈련과 가계부채

    갑작스러운 금융위기 남의 일 아냐

    한국 경제는 본격적인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어 소득 증가가 어려운 상황이다.

    부채 문제의 본질은 상환 능력이다. 소득이 늘면 부채가 많아도 상관없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본격적인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고, 경기 침체로 소득 증가가 어려운 상황이다. 소득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부채가 계속 늘어난다는 것은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내수경기 활성화는 빠른 시간 내 오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다른 방법은 부동산이나 주식 등 자산의 가격이 올라 소비로 연결되는 ‘자산효과’를 기대하는 것인데, 이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실물경제는 좋지 않은데 자산만 오르는 ‘자산가치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면 경제에 더 큰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가계부채에 대한 완벽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쯤은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이런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만일 가계부채로 한국 경제가 흔들린다면 나는 내 재산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부채가 있는 사람은 다른 것에 앞서 상환 전략을 짜야 한다. 우선순위 재조정을 통한 가계 내 비용 절감 노력도 절실하다. 그리고 위기가 오더라도 보유하고 있어야 할 자산과 그 전에 처분할 수도 있는 자산을 구분해놓아야 한다. 핵심 자산과 비핵심 자산을 사전에 나눠놓는 이유는 위기 상황 발발 시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서다.

    가계부채발(發) 위기가 왔을 때를 대비해 가정 내에서 재정 소방(消防)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설령 그런 상황이 오지 않더라도 그런 훈련은 부채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준다. 꼭 불이 나야만 소방 훈련을 하는 것은 아니다. 불이 날 수도 있기 때문에 훈련을 하는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