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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암과 함께하는 사람들

“직장암·간암·폐암 암 3종 세트도 꺾지 못한 도전 의지”

‘피자 왕’ 성신제의 매일 웃는 삶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직장암·간암·폐암 암 3종 세트도 꺾지 못한 도전 의지”

“직장암·간암·폐암 암 3종 세트도 꺾지 못한 도전 의지”
‘그 사람 앞에 주어진 운명은 처참했지만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성신제(67·사진) 지지스 컵케이크 대표가 언젠가 자신의 묘비에 쓰고 싶다고 한 글귀다. 지난 4년 동안 그는 직장암, 간암, 폐암 선고를 잇달아 받았다. 두 번의 대수술과 네 번의 간색전술, 22차례의 항암치료를 견뎌내는 사이 재발한 당뇨와도 싸워야 했다. 최근엔 급성심근경색으로 스텐트(혈관 내 그물관) 시술까지 받았다. 숱한 고통을 이를 악물고 참아내느라 잇몸이 내려앉고 치아도 상했다. 그러나 웃음만은 여전히 그의 곁에 있다.

창업신화의 주인공

치질을 치료하러 병원에 갔다 돌연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도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생각부터 했다는 그다. 그 순간 운명을 향해 “왜 내게 이런 일이…”라고 묻는 대신 “이 역경을 이겨낸다면 다시 도전할 기회를 다오”라고 말을 걸었다는 것이다.

돌아보면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등록금을 제때 내지 못해 친구들 앞에서 수모를 당해야 했던 중학생 시절부터 ‘이대로 주저앉지 않겠다’는 각오가 늘 그의 마음속에 있었다.



성 대표는 1980년대 중반 미국 피자전문점 ‘피자헛’을 국내에 들여온 인물. 1990년대 말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성신제 피자’를 론칭해 성공을 거뒀다. 종합소득세를 1년에 110억 원씩 내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부침도 심했다. 피자헛의 경우 점포가 52개에 이르던 시절, 미국 본사와 갈등이 생겨 사업에서 손을 떼야 했다. 이후 시작한 치킨전문점 ‘케니 로저스 로스터스’는 1997년 말 외환위기 속에서 문을 닫았다. 재기의 발판이던 ‘성신제 피자’도 2007년 최종부도를 맞았다. 집 안 곳곳에 빨간 딱지가 붙었고, 아내 패물까지 내다 팔아야 했다. 나이 50에 한 번, 그리고 60에 또 한 번 ‘처참한’ 실패를 맛본 것이다.

더욱 뼈아픈 건 두 번째 실패 때 건강까지 잃었다는 점이다. 2011년 암 선고를 받기 전까지 성 대표는 체력만큼은 늘 자신 있었다고 했다. 담배는 일찌감치 끊었고 술도 맥주 한두 잔 이상 마신 적이 드물었다. 운동을 즐겨 해외 출장을 가도 숙소 피트니스센터에서 땀을 흘렸고, 운동 도구가 없는 곳에 묵을 때는 동네라도 달렸다. 집에서 TV를 보면서도 덤벨을 들었다. 그러니 여럿이 함께 등산을 가면 늘 혼자 뛰어올라간다고 주위의 원성을 사곤 했다.

그런데 2011년 찾아온 암은 평생 자신하던 건강을 한순간에 앗아가버렸다. 77kg을 유지하던 체중이 순식간에 59kg까지 줄었고, 근육도 두 달 만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식스팩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누더기’처럼 기워진 수술 자국만 남았다. 그는 다시 일어나기 위해, 혼자 걷기 위해 ‘우드득’ 소리가 날 만큼 이를 악물어야 했다.

“1960년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뒤 늘 세상에서 믿을 건 나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살았어요. ‘내가 잘해야 한다, 나는 남과 다르다’는 마음으로 공부도 운동도 정말 최선을 다했죠.”

성 대표의 말이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다 독립해 사업을 시작한 뒤에도 그는 매순간 ‘아이들에게만큼은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절박함으로 살았다고 했다. 암수술을 한 뒤에는 그 ‘악’과 ‘깡’을 온통 두 다리에 쏟아부었다. 2012년 1월 어느 날의 일이다.

“직장암 수술을 받고 퇴원한 지 열흘쯤 됐을 때예요. 아침에 눈을 뜨니 밤새 눈이 내려 세상이 온통 하·#50604;어요. 문득 ‘오늘 저 길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후드점퍼를 걸치고, 지팡이 대신 큰 우산을 집어 들고, 홀로 집 앞 올림픽공원으로 향했다. 수술 전 30분이면 충분했던 거리가 한없이 멀게 느껴졌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진눈깨비가 내리는데도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숨이 가빠 더는 걸을 수 없을 때까지 계속 걸었다. 수 시간을 걸어 마침내 목표한 코스를 다 돌았을 때는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내 모든 걸 쏟아부으면 다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기쁨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 사업을 할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찾아왔다고 했다.

새로운 출발

“왜 또 사업을?” 많은 이가 성 대표에게 던진 질문이다. 평생 남편의 성취와 실패를 가까이서 지켜봐온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건강을 관리하며 ‘여생’을 살면 어떻겠느냐고 조언하는 이도 많았다. 하지만 성 대표는 늘 고개를 저었다. 실패한 채로 삶을 끝내고 싶지 않은 게 한 가지 이유라면, 사업을 할 때 비로소 자신이 진정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 또 다른 이유라고 했다.

50세에 큰 실패를 맛봤을 때 새로운 출발을 위해 컴퓨터를 배웠다는 그는, 이번에 그때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신사업을 물색했다. 미국에 있는 지지스 컵케이크 본사에 사업계획서를 보내고 마침내 계약을 맺기까지, e메일을 수없이 주고받았다. 간신히 비행기표 값을 구해 현지로 날아가 자신의 열정을 증명하기도 했다. 마침내 ‘가난하고 늙은 동양인’에 반한 본사가 그에게 사업자금까지 전액 지원하기로 하면서 성 대표는 또 한 번 ‘사업’을 시작했다.

1월 강남역 앞에 매장을 연 뒤 그의 삶은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빽빽이 채워져 있다. 서너 달에 한 번씩 암 추적검사를 하고 인슐린 요법도 받지만, 일상은 젊은이 못지않다. 출퇴근길엔 지하철을 탄다. 많은 사람이 뿜어내는 ‘살아 있는 자의 향기’가 그를 들뜨게 하기 때문이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남녀노소가 앞다퉈 계단을 오를 때 그들과 나란히 걸어가며 그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매일 메고 다니는 백팩 안에는 운동화 한 켤레가 들어 있다. 밤 10시 매장 문을 닫고 나면 강남역에서 강변역까지 지하철로 이동한 뒤, 집이 있는 잠실나루역까지 약 1시간을 걷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지금 ‘살아 있다’. 매순간 행복을 느끼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제가 ‘성신제 피자’로 재기했을 때는 동년배 중년 남성들에게 ‘나를 보고 용기를 내라’고 말했어요. 지금은 더 젊은이들에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나는 건강도, 젊음도 없지만 여전히 꿈을 꾼다고요. 요즘 많이 힘들죠. 하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면 누구나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나를 보세요. 그리고 용기를 내면 좋겠습니다.”

성 대표의 말이다. 최근 이런 메시지를 담아 자전 에세이 ‘달콤한 모험’을 펴낸 그는 할 수 있는 한 도전과 모험을 멈추지 않겠다며 또 한 번 활짝 웃었다.



주간동아 2015.08.17 1001호 (p48~49)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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