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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사면초가 여의도 86세대

선수교체론에 입지 흔들

개혁 선봉대로 영입된 지 15년 만에 개혁 대상으로 눈총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선수교체론에 입지 흔들

선수교체론에 입지 흔들
‘혁신(革新)’의 사전적 의미는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 새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익숙한 것과 결별하는 것이 혁신인 셈이다. 정치에서 혁신은 크게 △법과 제도를 바꾸는 시스템 개혁 △정치를 주도하는 세력과 사람을 바꾸는 인적쇄신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시스템 개혁은 법과 제도 보완으로, 인적쇄신은 선거를 통해 주로 이뤄진다.

4·29 재·보궐선거 완패 이후 김상곤 혁신위원회를 출범한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은 두 가지 흐름으로 혁신을 진행 중이다. 하나는 당 운영과 공천 등 제도와 시스템 개혁을 위한 혁신안 마련이다. 가장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공천 방식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 방식을 내놓고 있지 않다.

혁신안 논의와 별개로 혁신위원들은 ‘공개서신’을 통해 인적쇄신 압박에도 본격 나섰다. 7월 중순 30대 청년 이동학 혁신위원이 포문을 열었다.

‘이제는 선배님께서 당이 찾아야 할 활로가 되어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중략) 정치인은 평소엔 정책으로 말하지만 선거 때는 출마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 이인영의 선택은 혼자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뿐 아니라 야권 전체의 혁신, 나아가 대한민국의 혁신이란 큰 태풍을 일으키는 나비의 날갯짓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부디 더 큰 정치인의 길을 가십시오.’

‘586전상서’로 시작되는 이동학 혁신위원의 공개서신은 새정연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15년 전 김대중 대통령이 ‘젊은 피’라며 수혈한 386세대가 이제는 후배들로부터 ‘적진 출마’와 ‘용퇴’를 요구받는 기성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에서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1기 의장 출신으로 586세대 대표선수로 꼽히는 이인영 의원은 ‘적진 출마’를 권한 이동학 혁신위원의 제안에 “지역구를 바꾼다고 혁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혁신위원회가 노동 문제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오히려 가치 혁신을 주문했다.



‘내가 살아야 사는 거다’

그러나 이 의원의 해명은 반년 전 “세대를 교체하라, 권력을 교체하라”며 당원과 국민에게 호소하던 자신의 주장이 부메랑이 돼 역풍을 맞았다. 2·8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 당시 이 의원이 내세운 슬로건은 ‘승리를 위한 길은, 정권교체를 위한 길은, 바로 리더십을 교체하는, 담대한 세대교체의 길뿐입니다’였다.

새정연 한 인사는 “2·8 전당대회에서 세대교체와 권력교체를 주장한 이 의원이 당 혁신과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헌신’을 요구한 후배의 얘기를 ‘가치’를 이유로 거부한 것은 자가당착 아니냐”고 말했다. 30대 청년과 50대 86세대 간 세대논쟁은 86세대 임미애 혁신위원이 가세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독재에 굴하지 않았던 우리는 결국 민주화를 이루어냈고 그 찬란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386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새로운 활력과 대안을 제시해줄 것이라 믿었던 86세대는 아직도 87년의 지나간 잔칫상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듯합니다. 86세대 국회의원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만들었으며, 그래서 사회에 어떤 공헌을 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혁신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지켜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의 모습은 자신의 문제에만 관심이 있고 정권교체를 갈망하는 국민의 요구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내가 살아야 사는 거다’ 딱 이 정도였습니다.’

임 혁신위원은 1987년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을 했다. 따라서 그의 정치권 86세대 비판은 ‘선수교체론’으로 이어졌다.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 이력을 발판 삼아 30대부터 일찌감치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86세대’ 대신, 각 분야 전문가로 성장한 86세대가 이제 정치 전면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요구가 터져 나온 것.

새정연 한 관계자는 “당을 개혁하고 앞장서 정치를 바꿔야 할 86세대가 보수화하고 기득권화했다는 비판이 내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 인적쇄신 요구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며 “후배세대는 세대교체를 요구하고, 동세대는 선수교체를 요구하고 있어 정치권 86세대가 안팎곱사등이 신세가 됐다”고 말했다.

이숙현 시사칼럼니스트는 “86세대가 1980년대 목숨을 내걸고 민주화를 이루는 데 공헌한 만큼 상대적으로 빠른 나이에 정치권 진입이 가능했다”며 “그렇다고 과거 민주화를 위한 노력과 헌신이 미흡한 정치활동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고, 돼서도 안 된다”면서 “‘화려한 과거’를 팔아먹는 꼴이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선수교체론에 입지 흔들
이동학 요구에 김태호가 답한 꼴

19대 국회의원 가운데 86세대는 88명이다(표 참조). 이 중 새정연 소속이 47명으로 가장 많고, 새누리당이 39명이다. 새정연 86세대는 이인영, 우상호, 오영식 등 김대중 대통령 재임 시절 ‘젊은 피 수혈’로 정계에 입문한 전대협 출신과 전해철, 박범계, 김현, 서영교 등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출신으로 크게 구분된다. 새누리당의 경우 학생운동이나 민주화운동 출신이 적고, 법조계와 학계 등 전문가 출신이 개별 영입으로 정계에 입문한 경우가 많다.

개혁 대상으로 몰린 새정연 86세대는 ‘혁신의 우선순위와 대상이 86세대에 국한되는 것은 새정연이 추구하는 진정한 혁신과 거리가 먼 일’이라고 항변한다. 86세대인 한 초선의원은 “86세대가 자성하고 반성해야 할 지점이 분명히 있지만, 지금 86세대를 둘러싼 논쟁은 소모적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세대논쟁이 커질수록 혁신위원회 활동이 무력화되고, 무책임하게 당을 흔들어대면서 수권능력을 떨어뜨리는 진짜 혁신 대상을 쇄신할 동력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선수교체론에 입지 흔들
그러나 86세대를 둘러싼 쇄신 논란은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동학-이인영 논쟁이 30대 청년과 50대 86세대 간 세대논쟁이라면, 그 사이에 낀 497세대(40대, 90년대 학번, 70년대 출생)까지 혁신과 쇄신 논쟁에 가세할 태세다. 497세대인 새정연 한 당직자는 “유치원과 초중등 자녀를 둔 497세대는 사회적 모순이 집약된 세대”라며 “보육과 교육, 주거, 부모 봉양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논의의 중심축임에도 이들 세대를 대변할 정치인이 없다”면서 “내년 총선에서 전문성과 창의성으로 무장한 새로운 세대가 정치 전면에 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새정연이 수권정당으로 가는 진정한 ‘혁신’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새정연이 86세대를 둘러싼 선수교체와 세대교체 논쟁에 휩싸인 사이, 이동학 혁신위원의 ‘586전상서’에 화답이라도 하듯 새누리당 86세대인 김태호 의원의 총선 불출마 선언이 나왔다. 김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차기 대권 도전을 위한 포석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지만, 진솔한 자기고백이라는 점에서 새정연에서조차 ‘우리 당 86세대가 먼저 했더라면 좋았을 자기고백’이라며 공감하는 이가 많았다.

‘초심은 사라지고,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귀가 닫히고, 내 말만 하려고 하고, 판단력이 흐려지고, 언어가 과격해지고, 말은 국민을 위한다지만 그 생각의 깊이는 현저히 얕아졌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은 텅 비어가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다음 선거에 출마를 고집한다면 자신을 속이고 국가와 국민, 그리고 누구보다 저를 뽑아주신 지역구민 여러분께 큰 죄를 짓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가 문을 열어놓고 무한경쟁을 하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민국이 살아남으려면 정치도 진정한 실력과 깊이를 갖춘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럽고 힘들었던 지난 세월 내 어머님, 내 아버님이 눈물로 걸어오셨고, 우리 후손들이 당당히 걸어갈 조국의 길에 최소한 걸림돌이 되는 정치인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인터뷰 | 새정치민주연합 86세대 A의원

“수권정당 향한 86세대의 혁신 노력 지켜봐달라”


30대 청년세대에게 ‘용퇴’ 주문을 받고 동세대로부터는 “한 일이 뭐가 있느냐”는 핀잔을 듣는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 86세대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할 말은 많지만 자칫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봐 말을 아끼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86세대의 선두격인 한 의원은 ‘자신이 86세대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고 86세대가 느끼는 요즘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말 한마디가 엉뚱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민감한 시기라 조심스럽다”며 익명을 요구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 86세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다.

“정치권에 들어온 86세대가 정치개혁의 주체로 나서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아프게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특정인 몇 사람을 겨냥한 인신공격성 비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정치와 정당개혁에 걸림돌이 되고 우리 당의 수권능력을 갉아먹는 낡은 정치인은 따로 있지 않나.”

86세대 출신 한 당직자도 “(혁신위원회가) 혁신안을 논의하는 시점에 ‘신당 창당’ 운운하며 당의 분열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은 ‘해당 행위’와 다를 바 없다”며 “혁신 대상과 본질을 호도하기 위해 86세대를 공격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학생운동을 주도한 86세대 외에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동시대 인물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선수교체’ 요구가 있다.

“누가 누구로 바뀌는 교체에 집착할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각 분야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 골고루 정치권에 들어와 외연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386세대는 86세대가 30대에 정치권에 진출했기에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지금 30대는 물론 40대에도 정치권에 진출한 이가 거의 없다. 먼저 정치권에 진출한 86세대의 폐쇄성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미래세대를 키우는 데 소홀했다는 점은 (86세대가) 반성할 부분이다. 그런데 386세대 역시 정치권에 시차를 두고 진출했다. 30대에 일찍 정치권에 들어온 이도 있지만, 40대 중·후반에 들어온 이도 적잖다. 어느 시점이 됐으니 정치권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시대적 요구를 반영할 이들이 정치권에 들어올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86세대가 내년 총선에서 어떤 메시지로 국민에게 지지를 호소할 예정인가.

“새정연에 몸담은 이들의 목표는 ‘수권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혁신위원회의 혁신 논의도 수권정당으로 가기 위한 몸부림이다. 86세대 의원들이 추렴해 ‘더미래연구소’를 꾸린 것도 현실성 있는 정책으로 국민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정당을 만들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논의해온 노력의 결과물을 국민 앞에 곧 선보일 예정이다. 특정인을 겨냥한 비판보다 수권정당을 향한 (86세대의) 진정한 혁신 노력을 좀 더 지켜봐줬으면 좋겠다.”




주간동아 2015.08.17 1001호 (p14~16)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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