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7

2015.07.20

달콤, 매콤, 졸깃…자극의 경연장

서울의 변형 냉면

  • 박정배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5-07-20 14: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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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콤, 매콤, 졸깃…자극의 경연장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서 바라보면 낙산과 창신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안암동에 있는 교회를 다니던 내게 낙산에 있던 ‘낙산냉면’과 ‘깃대봉냉면’의 졸깃한 맛은 여름의 별미였다. 시간이 꽤 걸렸지만 냉면집들은 교회까지 배달을 해줬다. 당시에는 그 냉면들이 밀가루와 고구마전분을 섞어 불어터지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다. 매콤하고 달달한 육수와 졸깃한 면발은 청소년에게 특히 인기가 많았다.

    30년 세월이 흘렀지만 난 여전히 안암동에 살고 있고 ‘깃대봉냉면’도 건재하다. ‘깃대봉냉면’은 낙산에서 숭인1동주민센터 근처로 자리를 옮기면서 예전보다 찾는 이가 더 많아졌다. 이곳 냉면 육수는 채소와 과일로 우려내 깊지 않지만 달달한 맛이 난다. 면발은 함흥냉면 면발과 비슷한 탄력과 질감을 가졌다. 매운맛 또한 초창기 함흥냉면의 특징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식 원조 함흥식 냉면이 육수를 반드시 곁들여 먹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깃대봉냉면’이 그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집에서 냉면을 고를 때 가장 어려운 것은 매운맛 정도를 정하는 일이다. 가장 순한 ‘하얀 맛’에서 제일 매운 ‘아주 맵다’까지 여섯 가지 매운 강도가 있기 때문이다. 달콤하고 매콤하며 졸깃한 이 집의 냉면은 말 그대로 ‘자극의 경연장’이지만 먹고 나면 속이 개운하고 기분도 좋아진다. 은근한 맛과 조화를 내세우는 평양식도, 국물 없는 함흥식도 아닌 변형된 냉면이 서울에 의외로 많다.

    서울 청량리시장통에 있는 ‘할머니냉면’도 매운맛으로 유명하다. 청양고추, 마늘, 생강, 양파 같은 매운맛을 내는 재료들이 총동원되는 것은 기본. 면에는 설탕이, 고명에는 참기름이 들어가 있다. 강한 맛을 내는 식재료가 망라된 매운 비빔냉면은 중독성이 강해 단골이 많다.

    30대 중반 무렵 20대 후배들에게 평양냉면을 사준 후 “이렇게 심심한 냉면은 냉면이 아니다”는 핀잔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후배들이 진짜 냉면맛을 보여주겠노라고 데려간 곳이 보광동 ‘동아냉면 본점’이다. 여전히 내겐 이 집의 매운맛과 면발이 어렵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20, 30대는 이 집을 자주 찾는다. 매운 냉면을 이야기할 때 송파구 잠실본동 ‘해주냉면’도 빼놓을 수 없다. 1983년 포장마차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커다란 매장을 가진 매운 냉면 맛의 본좌급으로 성장했다. 매운맛을 즐기는 사람은 물론, 더 매운맛에 도전하려는 사람까지 가세해 냉면집인지 매운맛집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지만 젊은이들이 북적된다. 가격도 저렴하다.



    달콤, 매콤, 졸깃…자극의 경연장
    중국과 일본에는 우리처럼 차가운 육수에 면을 넣어 먹는 문화가 없다. 그렇다고 차가운 면을 먹지 않는 것도 아니다. 중국인은 량미엔(凉麵)이나 깐빤미엔(乾拌麵)이라는 면을 차게 해서 먹는데, 면을 삶은 뒤 얼음물에 씻어 참깻가루 등을 넣어 비벼 먹는 일종의 비빔면이다. 요즘 국내 중식당에서 나오는 중국 냉면은 차가운 국물에 면을 넣어 먹는 한국 음식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름철 한정 메뉴가 대부분이다. 중국 냉면이 언제 정확하게 만들어졌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1960년대 초반 신문에 중국 냉면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적어도 60년대 중국 냉면이 개발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중국 냉면의 공통된 특징은 면발을 얇게 뽑고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한 육수에 고소한 땅콩소스와 매콤한 겨자를 넣는 것이다. 호텔 중식당들에서는 1980년대부터 중국 냉면을 취급했다. 더 플라자 중식당 ‘도원’에서도 오래전부터 중국 냉면을 팔았고 고척동에 있는 중식당 ‘실크로드’의 중국 냉면도 제법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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