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7

2015.07.20

초비상! 환율 압박에 수출은 비명

경쟁국 반영하면 2007년 이래 최악…단기 해법 없어 더 막막

  •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hybae@lgeri.com 이지선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jiseonlee@lgeri.com

    입력2015-07-20 11:3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초비상! 환율 압박에 수출은 비명
    수출 부진이 장기화할 조짐이다. 올해 상반기 수출은 지난해 대비 5% 감소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부진한 상황. 특히 세계 교역 부진이 우리 수출에도 타격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2년부터 선진국의 수요 회복 속도가 더뎌지고 내구재를 중심으로 수출 효과가 큰 품목들의 수요 비중이 낮아지면서, 세계 교역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국제유가 급락으로 수출단가마저 하락해 세계 교역은 올해 10% 이상 감소했다.

    여기에 더 큰 부담을 주는 것이 바로 원화절상이다. 올 들어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100원 내외 수준에서 등락하는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로와 엔화가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원화 가치가 절상되고 있는 상태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산정하는 실질실효환율 지수는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다. 한 나라의 화폐가 상대국 화폐에 비해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 구매력을 갖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교역상대국의 환율을 교역량으로 가중 평균한 뒤 물가변동을 감안해 산출한다. BIS에 따르면 원화의 실질실효환율 지수는 과거 평균 수준에 비해 이미 고평가된 상황. 최근 원화의 실질실효환율은 지난 20여 년간 평균 실질실효환율보다 4.3%가량 더 높은 수준이다.

    경쟁관계 반영하면 압박 더욱 가중

    이 때문에 올 들어 통화가치가 원화에 비해 큰 폭의 약세를 나타내고 있는 유럽이나 일본으로의 수출이 20% 가까이 감소했다. 통화 약세와 실물경제 부진이 동시에 나타나는 브라질, 러시아 등 거대 신흥국 시장에서는 우리 수출이 30% 이상 감소했다. 요컨대 환율에 의한 타격이 점차 심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우리 수출이 체감하는 원고(高) 압박이 과거에 비해 더 커졌다. 일반적으로 세계 경기가 호황일 때보다 부진할 때 수출이 환율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수요가 활력을 잃었고, 중국을 중심으로 공급 능력이 확대되면서 가격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더욱이 중국, 인도 등 신흥국 기술력이 선진국을 빠르게 추격하는 상황이다 보니 기술력만으로 제품우위를 지켜나가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가격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데 주요 요소로 떠올랐고, 환율의 중요성이 한층 부각되고 있다.

    앞서 살펴본 기존 실질실효환율 개념은 이 같은 경쟁 요인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물가가 경쟁력을 대변하긴 하지만 그 가중치가 교역 상대국에 국한될 뿐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세계 시장에서 의 경쟁은 이 지표만 봐서는 충분히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대만은 우리나라 교역에서 그 비중이 5% 내외로 크지 않지만, 세계 시장에서는 전자부품이나 반도체 같은 품목에서 우리와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대만달러의 가치가 하락할 때 우리나라의 수출가격 경쟁력을 얼마나 잠식하는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을 반영한 새로운 실질실효환율 지수를 계산해보자. BIS가 실효환율 지수를 산출하는 61개 국가와 권역을 대상으로, 우리나라와의 교역 비중에 경쟁 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서 수출유사성 지수를 곱한 다음 가중치의 합이 1이 되도록 조정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나타나는 지수는 최근 BIS 기준의 실질실효환율 지수에 비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그래프 참조). 근래 들어 대폭 절하된 유로화와 엔화 사용권, 즉 유로존 국가와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와 경합도가 높아 새 지수에서 가중치가 더 커졌다. 그 결과 평균적인 원화가치가 기존 지수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나타난다.

    눈여겨볼 사실은 이렇게 도출된 새로운 지표가 이미 지난해 하반기 최고치를 찍었다는 사실이다. 2007년 원화가치의 실효환율이 최고 수준을 기록했던 시기와 유사한 수준까지 절상된 것이다. 쉽게 말해 지금의 환율 상황은 리먼브라더스 사태 직후 우리 외환시장의 불안이 크게 증폭했던 시발점에 해당하는 수준이라는 의미다.

    결국 내수가 근본이다

    초비상! 환율 압박에 수출은 비명
    이러한 결과는 수출 일선에서 선진국이나 신흥국과 경쟁하는 우리 기업들이 이미 심각한 수준의 원화절상 부담에 시달리고 있음을 방증한다. 더욱이 2005~2007년 당시에는 기존 BIS 기준의 실질실효환율 지수가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을 고려한 새로운 지수보다 더 높았다. 이때만 해도 유로화나 신흥국 통화가 강세를 보이고 세계 경제가 고성장을 구가하는 시기이다 보니, 우리 기업들이 환율로 입는 수출 타격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2012년 이후부터 최근까지는 정반대 양상이다. BIS 기준의 실질실효환율 지수보다 경쟁을 고려한 실질실효환율 지수가 더 높게 나타난다. 원화 절상이 수출에 주는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커졌음을 의미한다.

    업종별로는 제품 차별화가 상대적으로어려운 석유제품이나 철강 같은 품목이 환율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더욱 치열해진 단가경쟁 때문이다. 자동차의 경우 일본에 이어 유럽 기업들도 유로화 약세를 수출 단가에 반영하면서 우리나라 수출이 10% 가까이 감소했다. 최근 일본과 독일 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이 개선되면서, 향후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리고 신제품 출시를 통해 우리 업체들을 더 압박할 개연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원화절상 압력을 완화한다는 목표만 놓고 환율정책을 펴기에는 여건이 만만치 않다. 올해 1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경상수지 흑자와 점진적으로 증가세를 보이는 외환보유액 때문에 외환정책이 운신할 폭이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으로부터 절상 압력이 가해질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원화절상 압력을 완화할 수 있는 한층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당장은 해외 금융투자 확대를 통해 원화절상 압력을 완화하는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상 허가제에 가깝다고 평가받는 해외 부동산 구매나 이와 관련한 외환관리 규제도 좀 더 자유롭게 만들 필요가 있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내수경제의 성장활력을 높임으로써 대외 불균형을 시정해나가는 일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