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6

2015.07.13

대표의 의도를 알게 하라

기업 발전 위한 임무형 지휘의 원칙

  • 남보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elyzcamp@naver.com

    입력2015-07-13 13: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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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의 의도를 알게 하라
    한국 사회에는 “중요한 일은 오너가 직접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일례로 음식장사를 평가하는 주요 항목에는 ‘번창해도 주인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가’가 포함된다. 그러나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오너가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기 쉽지 않다.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때, 벌려놓은 일이 많아 주말도 없이 일할 때 등 생각지 못한 호황으로 사업 규모가 커지면 책임과 업무를 분담해야 한다.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오너를 대신해 사업의 일정 부분을 전담하는 직책이 늘어나고, 조직 성패가 달린 중요한 의사결정 자리에 임직원 등 책임 있는 대리인을 내보내야 할 경우가 많아진다. 이런 경우 미국 육군 야전교범 ‘OPERATIONS(작전)’의 ‘임무형 지휘의 원칙’은 참고할 만하다.

    임무형 지휘는 미 육군의 지휘통제(Command&Control)와 리더십의 기조다. 풀어 쓰면 ‘전장에서 예하부대를 지휘할 때 임무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과업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그 원류는 1800년대 프러시아(프로이센)군이며, 전 세계로 퍼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을 통해서였다. 전차군단의 강력한 기동력을 앞세워 유럽 전체로 전장을 넓힌 독일군은 임무형 지휘의 원칙을 통해 예하부대 지휘관들에게 행동의 자유와 융통성을 보장함으로써 효율적으로 전과를 확대해나갔다.

    승리를 위한 임무의 분권화

    미 육군의 기준교범인 ‘작전’에 명시된 임무형 지휘는 ‘임무 혹은 명령에 기초한 분권화된 지시를 통해 군사작전을 수행하는 것’이다. 성공적인 임무형 지휘는 모든 제대의 예하부대 지휘관들이 숙련된 주도권을 행사하고, 각 지휘관의 의도 내에서 임무 달성을 위해 공세적이고 독립적으로 행동하도록 요구한다.



    즉 임무형 지휘가 추구하는 바는 예하부대에 행동의 자유를 최대한 허락하는 것이다. 부여받은 권한에 따라 예하부대 지휘관들은 지휘관의 의도와 작전의 목적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다. 특히 ‘테러와의 전쟁’ 같은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는 최초의 계획이나 이를 실행하기 위해 준비한 방법과 수단이 무용지물이 되는 사례가 숱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그 유용성이 여실히 증명됐다. 그렇다면 이 임무형 지휘의 원칙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첫 번째 원칙은 상급지휘관의 의도를 명확히 주입하라는 것이다. 임무형 지휘가 예하부대의 세세한 통제를 지양한다고 해서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둔다는 뜻은 아니다. 임무형 지휘를 통해 상급지휘관은 오히려 현장의 교전이나 전술적 행동에서 분리되지 않고 현장감을 유지할 수 있다. 명확한 상급지휘관의 의도를 통해 상하 제대가 공히 해야만 하는 중요한 결심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무형 지휘가 복잡하고 불확실한 전장 상황에서 가장 이상적인 원칙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두 번째로 통제수단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는 상급지휘관의 의도를 명확히 주입하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군사적으로 통제수단이란 예하부대에 하달하는 작전계획과 명령상 시간, 장소, 대상 등을 특정하는 것이다. 이를 ‘통제형 지휘’라 부르기도 한다. 이는 승수 효과, 시너지 효과 등을 최대화하고자 과거에 사용하던 방법이다.

    통제형 지휘는 지금처럼 군사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고, 군인들의 지적 수준이 평균적으로 높지 않았을 때 사용하던 지휘방법이다. 최근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통제수단을 최소화하고 행동의 자유를 보장할 때 예하부대 지휘관의 독립성이 독려되고, 그렇게 할 때 창의적 아이디어와 공세적인 행동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예하부대 지휘관이 2단계 상급부대의 작전을 이해하도록 평시에 교육시켜야 한다. 부하를 육성하고 자기계발을 장려한다는 말은 무척이나 당연하고 평범한 진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야전부대, 회사 등을 망라한 현장에 가보면 대부분 현행 업무에 치여 이른바 ‘데이 바이 데이(Day by Day) 업무’에 허덕이고 있다.

    임무형 지휘는 상급지휘관의 의도를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는 예하부대 지휘관이 없으면 적용할 수 없다. 평소 질 높은 지휘관 교육, 세미나, 스터디 등을 통해 현재 하고 있는 업무의 수준보다 2단계 이상 높은 영역의 지식을 습득하지 않으면 막상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이 닥쳤을 때 상급지휘관은 부하에게 임무형으로 명령을 하달할 수 없다.

    조직 목표를 주지시켜야

    조직에서도 임무형 지휘의 원칙은 매우 실용적이다. 그러나 제대로 기능하려면 주의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첫째로 솔직하게 다 말하는 것과 의도를 밝히는 것은 다르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상급자로서 의도를 전달한다는 것은 숨김없이 속뜻을 내보이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다. 어떤 때는 정반대이기도 하다. 의도(意圖)의 한자는 ‘뜻’과 ‘그림’을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시화(visualization)와 같다. 그러므로 협상을 위임할 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이것’이라고 알려주기보다 ‘이번 협상에서 자네가 이 일을 하기 바라는 이유와 이를 통해 달성하기 바라는 목표는 이것’이라고 알려주는 것이 임무형 지휘에서 ‘상급지휘관 의도’에 가깝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본부장급으로 옮긴 사람이 있었다. 그는 대표에게 자신을 스카우트한 이유를 물었다. 대표의 대답은 이랬다. “당신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사업을 확장하고 싶은데 나처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사람은 2년을 못 채우고 퇴사했다. 대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았지만, 조직의 발전과 이익을 위해 필요한 목표와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은 몰랐기 때문이다.

    대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스스로 하면 된다. 권한을 위임한 대리인에게 필요한 건 대표 개인의 속마음이 아니라 명확히 그려진 조직의 목표다. 조직의 규모가 커질수록 리더는 감정과 속내를 제거하고 건조하게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짚어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둘째로 평소엔 세심하게 지도하고 결정적일 때는 간명하게 지시해야 한다. 통제수단을 최소화하고 협상의 제한사항을 모두 풀어준다는 것이 ‘알아서 잘 하도록 둔다’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임무형 지휘는 군이 수행하는 수많은 과업 가운데 ‘작전, 전투’ 시 사용하는 원칙이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자세히 지시할 것은 자세히, 간명히 할 것은 간명히 하는 게 당연하다.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조직의 결정적 이익이 달려 있는 협상 등에 대리인을 보낼 때, 그러한 일을 수시로 감당해야 하는 임원급 부하에게 지시를 할 때는 행동의 자유나 융통성을 제한할 수 있는 통제수단을 최소화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평소에는 오히려 미주알고주알 고려사항, 제한사항, 이전 사례나 노하우를 섞어서 지시해야 할 때도 있다. 그래야만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야 하는 업무들에 착오가 발생하지 않고, 결정적인 일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집중할 수 있다.

    셋째로 지식이 경쟁력이라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기업 내 교육훈련이 조직의 이익과 개인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한 논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기업 내 교육훈련의 실시 목적인 기업의 성장 발전과 직원의 자아실현을 위해 기업체가 조직적, 체계적으로 실시하는 기업체 훈련의 과정이다.’

    사실 조직 구성원에 대한 교육훈련의 필요성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상식이다. 하지만 실제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는 업장은 별로 많지 않다는 게 문제다. ‘지식사회의 개인 경쟁력은 질 높은 지식의 축적에 있다’는 말은 이를 현실 사회에서 실천할 때 의미가 있다. 경험과 지식은 얻어지는 게 아니라 개인과 조직의 공통된 관심과 노력이 있을 때 가능하다.

    신입사원이 시간이 지나 임원이 됐을 때 그에 걸맞은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지 않으면 회사에 손해다. 한두 해 장사하는 뜨내기 사업이 아니라면 조직을 잘 알고 인맥을 형성한 부하가 회사 안에서 역량을 계속 키워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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