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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어느 밭에 씨 뿌리나 01

선거구 획정에 울고 웃다

공중분해·통폐합·분구, 246곳 중 62곳 재조정 불가피…시험 범위도 모르고 ‘열공’하는 격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선거구 획정에 울고 웃다

선거구 획정에 울고 웃다
고향에서 출마할 뜻을 갖고 있던 A씨는 지난해 말 수도권으로 출마 지역을 바꿨다. A씨가 출마 지역을 바꾼 것은 헌법재판소(헌재)의 선거구별 인구 편차 위헌 결정과 무관치 않다. 헌재 결정으로 A씨가 당초 출마하려던 지역 선거구가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 인구 편차를 2 대 1 이하로 조정하면 인구 하한선에 미달하기 때문에 선거구 재조정 과정에서 현 지역구가 분할돼 다른 지역구에 병합될 가능성이 높다. 수도권으로 지역구를 옮겨 총선을 준비하는 A씨는 “선거구 획정 여부와 상관없이 당원과 국민만 보고 열심히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병합이 예상되는 인접 지역구까지 돌면서 표밭갈이를 하느라 평소보다 더 많은 발품을 팔고 있는 입지자도 적잖다. 일찌감치 지역에 내려가 총선을 준비해온 B씨. B씨는 지난해 선거구 인구 편차에 대한 헌재 판결이 나온 뒤 인접 지역까지 신경 쓰고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에서 선거구 획정안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인구 상·하한선을 맞추려면 인접 지역구 일부와 병합이 불가피하다고 보기 때문. B씨는 “현 지역구에 인구 2만 명 정도의 1개 동만 옮겨오면 인구 하한선을 넘어설 수 있기 때문에 무난하게 선거구가 조정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구 상한선을 초과한 지역에 출마하려는 이들도 어떻게 선거구가 조정될지 몰라 마을을 졸이는 것은 마찬가지. 헌재 판결에 맞춰 인구 기준을 2 대 1로 하려면 인구 30만 명 이상 선거구는 분구해야 한다. 하지만 분구로 지역구를 늘리기보다 선거구가 증가하지 않도록 인접 지역구와 재조정할 공산이 크다. 수도권 출마를 준비 중인 C씨는 “어느 지역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해야 할지 모르는 불확실한 선거구와의 싸움이 가장 힘들다”며 “어떤 경우에도 선거구가 변하지 않을 핵심 지역 위주로 선택과 집중을 해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신인들뿐 아니라 현역 의원들도 자기 지역구의 통폐합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선거구 재획정으로 선거 지형이 크게 달라지면 유불리가 크게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정수 늘리고 싶지만…



선거구 획정에 울고 웃다
헌재의 위헌 판결로 선거구 조정이 불가피한 지역은 전체 246개 지역구 가운데 62개에 달한다(표 참조). 이 가운데 인구 상한을 초과한 선거구가 37곳, 인구 하한 미달로 통폐합 대상이 되는 선거구가 25곳에 이른다. 인구 상한을 초과한 선거구가 많아 그만큼 지역구가 더 늘 수 있다. 그러나 선거구 획정위원회(획정위)가 어떤 기준과 원칙에 따라 선거구를 조정하느냐에 따라 증가폭은 달라질 전망이다.

선거구 조정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큰 변수는 국회의원 정수 조정 여부다. 의석수를 동결할 것인가, 증원할 것인가에 따라 선거구 획정안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국회 정개특위는 국회의원 의석수를 기존 273명에서 299명으로 전격 증원한 바 있다. 의석수를 늘리면 인구 상·하한선 역시 의석수 변동 폭에 따라 줄거나 는다.

5월 27일 국회 정개특위가 선거구 획정 기준을 논의하려고 마련한 공청회에서 야당 의원들은 의원 정수를 확대하자는 주장을 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세비를 지금의 절반으로 줄이는) ‘반값 국회의원’을 감수하더라도 의원 정수를 늘려 제대로 민의를 대표하는 선거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했고,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의원도 “선거구 획정위가 (인구 편차를 2 대 1 이하로 하라는) 헌재 결정을 따르려면 지역구가 10석 이상 증가하는 결과를 용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정원을 늘리지 않고 지역구 의석을 늘리려면 비례대표 의석을 축소하는 방법이 있다. 지역구 의원의 경우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고자 선거구 획정에 사활을 걸지만, 비례대표 의원들은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많지 않아 정원 축소가 상대적으로 손쉬운 면이 있다.

의원 정수 조정 없이 인구 편차를 2 대 1 이하로 맞추라는 헌재 결정에 따라 선거구를 조정하려면 서울의 경우 은평을과 강남갑, 강서갑 등 세 곳이 인구 상한을 초과해 분구 필요성이 있다. 이에 반해 성동을과 중구는 인구 하한에 미달한다. 인구 상한을 초과한다 해도 선거구를 하나 더 늘리는 분구까지 가지는 않을 공산이 크다. 인접 선거구와 조정을 통해 선거구가 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선거구 재획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은평을의 경우 은평갑과 선거구 재조정만으로 인구 상한 초과를 해소할 수 있다. 현재 은평갑의 유권자 수는 21만 명, 은평을은 29만 명이다. 은평을로 돼 있는 인구 5만 명의 역촌동을 은평갑으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은평을의 인구 상한 초과를 해소할 수 있다. 인구 하한에 미달하는 성동을과 중구의 경우도 마찬가지. 성동을은 인접한 성동갑과 인구 재조정을 통해 인구 하한 미달 문제를 해소할 수 있고, 중구의 경우 종로구 또는 용산구와 합쳤다가 선거구를 둘로 나누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부산은 해운대기장갑이 인구 상한을 초과하고, 서구와 영도구는 인구 하한에 미달한다. 해운대구와 기장군의 경우 대규모 아파트 단지 등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대폭 늘어 선거구 증가가 불가피하다는 게 지역 여론이다. 부산에서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는 한 인사는 “현재 해운대기장갑과 을 두 곳으로 돼 있는데 해운대갑과 을, 그리고 기장군을 별도 선거구로 나눠 셋으로 만들고 서구와 영도구를 하나의 선거구로 통합하거나, 아니면 중·동구, 서구, 영도구 등 구도심을 한데 묶어 2개 선거구로 나누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예상했다.

부산의 경우 통폐합 선거구로 거론되는 선거구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영도구)와 정의화 국회의장(중·동구) 등 이른바 실세들의 지역구라 선거구 재획정 결과에 대한 지역 내 관심이 뜨겁다.

경기도의 경우 52개 선거구 가운데 16개 선거구가 인구 상한을 초과해 분구 등으로 지역구 증가가 불가피하다. 이에 반해 경북과 전북, 전남과 충남·북, 강원 등 농촌지역이 많은 지역구는 인구 하한 미달 선거구가 많아 재조정 과정에서 큰 진통이 예상된다. 특히 경북의 경우 15개 선거구 가운데 현행 의석수대로 인구 기준이 조정되면 영천시, 상주시, 문경시 예천군, 군위군·의성군·청송군, 영주시, 김천시 등 6곳이 인구 하한선에 미달하게 된다. 다만 혁신도시가 들어선 김천시의 경우 선거구 획정 이전에 유입 인구 증가로 인구 하한선을 넘길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정치관계법 개정과 관련해 선거구 획정 외에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제시한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 도입 여부도 내년 총선에서 영향을 끼칠 주요 변수 가운데 하나다. 선관위는 국회의원을 전국 6개 권역별로 인구 비례에 따라 나누고 의석을 정당 득표율에 따라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을 2 대 1 범위에서 나누도록 권고했다. 즉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정된 의석수에서 지역구 당선인을 제외한 나머지를 권역별 비례대표 순위에 따라 배분하게 한 것. 권역별 비례대표와 함께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지역구 후보를 일부 등재해 지역구 당선자를 제외하고 석패율이 가장 높은 후보를 당선하게 하는 석패율제도 제안했다.

선거구 획정에 울고 웃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 변수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에서 적극 추진하고 있다. 새정연 박영선 의원은 “선거에 국민 의사가 최대한 반영될 수 있게 하고 지역대표성을 보완하기 위해 비례대표 국회의원 의석 정수를 4개 권역에 균등 할당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이 필요하다”며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내용으로 한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실제 도입될지는 미지수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열린우리당(현 새정연)에서 비례대표 의석을 대폭 늘리는 것을 전제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한 일이 있다. 그러나 당시 다수당이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의석 정수를 늘리지 않는 대신, 지역구가 늘어난 만큼 비례대표 의석수를 줄인다는 당론을 고수했다. 결국 여야 협상 끝에 의원 정수를 26명 증원해 지역구 16석, 비례대표 10석을 배분하기로 결론 났다. 즉 자신의 지역구를 지키려는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이해와 요구가 관철됐을 뿐 지역구도 해소를 위해 필요한 정치제도는 뒷전으로 밀렸다.

3월부터 가동에 들어간 국회 정개특위는 총선 6개월 전인 10월 13일까지 선거구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국회는 30일간 심의를 거쳐 11월 13일까지 이를 확정할 계획이다. 그러나 선거구가 예정대로 확정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역대 총선 때마다 선거구 획정안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이 총선을 코앞에 두고 국회를 통과한 전력 때문이다. 15대 총선 때는 총선을 50여 일 앞둔 1996년 1월 27일 선거법이 통과됐고, 16대 총선에서도 총선 두 달 전인 2000년 2월 8일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17대 총선의 경우 선거일을 30여 일 앞둔 2004년 3월 9일, 18대 총선은 2008년 2월 15일, 19대 총선도 2012년 2월 27일 등 총선 두세 달 전에야 공직선거법이 국회를 가까스로 통과했다.

김상진 뉴코리아정책연구소장은 “2015년 국회 모습은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있던) 11년 전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정당의 당리당략과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현재 같은 논의 구조 하에서는 선거구를 조정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선거구 획정위를 선관위 소관으로 이관했다고는 하지만, 정작 국회가 의원 정수를 확정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며 “더욱이 국회 정개특위가 공전되기라도 하면 강제력이 없는 선거구 획정위 논의 역시 공전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국회 한 관계자도 “과거와 달라진 점은 선거구 획정위가 마련한 초안을 국회 정개특위에서 내용을 수정하지 못하고 찬반투표만 하게 한 점”이라며 “내용을 수정하지 않으면 국회 통과 시점이 그만큼 빨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연내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만약 연내에 처리하지 못하더라도 그에 따른 처벌규정이 없어 선거구 획정안에 대한 국회 심의 과정에서 반대에 따른 재논의를 반복하다 보면 결국 해를 넘길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5.06.29 994호 (p16~18)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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