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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확산일로, 메르스 후폭풍

슈퍼 바이러스는 없다

‘한국형 메르스’ 만든 건 정부의 부실 대응과 보호자·간병인이 환자 돌보는 병원 문화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슈퍼 바이러스는 없다

슈퍼 바이러스는 없다

메르스 집중치료기관으로 지정된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의 관계자들이 6월 10일 메르스 의심환자를 사전에 선별하기 위한 예진시설을 응급실 앞에 설치하고 있다.

“6월 9일 밤 호흡기내과학회, 감염내과학회, 중환자학회 등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관련 분야 모임 소속 의사들이 서울에서 모였어요. 우리끼리라도 메르스 얘기를 좀 해보자는 취지였죠. 이 자리에 메르스 환자를 진료한 분이 엑스레이 사진을 몇 장 들고 왔는데, 의사라면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전형적인 패턴이 있더군요. ‘정부는 대체 왜 이런 기본적인 정보조차 의사들에게 알려주지 않는 거냐’는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메르스 의심환자 선별진료소’를 운영하는 서울시내 한 대형병원 호흡기내과 전문의의 얘기다. 그는 “모두가 메르스 대응에 전력을 다하는 시점에 불협화음을 내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 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오면 직접 진단하고 조치를 취해야 하는 나조차 관련 정보를 언론을 통해 인지하는 상황이 정상은 아니지 않느냐”며 “동료 의사가 공개한 엑스레이 사진을 보기 전까지 한 번도 공식적인 정보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가 6월 7일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한 병원명 등 관련 정보를 모두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선언한 뒤에도 현장에서는 정보 부족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정부가 뭘 알리고 뭘 알리지 말아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메르스 확산 초기 의사들이 기본 정보만 갖고 있었어도 사태가 이 지경까지 확산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정부가 공식 발표하는 메르스 관련 정보에 계속 오류가 드러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는 당초 메르스는 환자와 2m 이내에서 1시간 이상 접촉해야 전염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기 평택성모병원에서 병실 밖 2차 감염이 발생한 사실이 확인됐고, 서울아산병원에서는 확진 환자와 10분 정도 접촉한 20대 청원경찰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메르스 바이러스가 한국에서 변이를 일으킨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 대부분은 이에 대해 “그럴 리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바이러스 변이는 없다”

전병율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세계보건기구(WHO),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를 비롯한 국내외 전문기관과 전문가들이 이미 해당 바이러스를 분석해 변이가 아니라고 밝힌 상태다. 세계에서 메르스 바이러스를 가장 많이 본 사우디아라비아 연구진도 ‘한국에서 확산한 바이러스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다르지 않다’고 확인했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러스 변이 가능성을 얘기하는 건 과학을 부정하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염호기 인제대 서울백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도 “현재로서는 ‘한국형 메르스’라는 건 없다. 공기 감염에 대한 우려도 근거가 없다. 오히려 눈여겨볼 것은 현재 입원 치료 중인 메르스 확진환자 상당수가 경증이고, 중증에 이른 이들 중에도 바이러스가 신장에 침범한 사례가 드물다는 점”이라며 “메르스 바이러스가 위험한 건 패혈증을 일으키고 혈압을 떨어뜨려 궁극적으로 신장을 망가뜨리기 때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환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의료진이 적절한 처치를 하고 있으니 메르스 예방에 최선을 다하되, 감염력이나 치사율을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중동에서 발생한 것과 다르지 않은 바이러스가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처럼 많은 감염자를 낳은 걸까. 이에 대해 설대우 중앙대 약학과 교수는 “전적으로 정부의 초동대응 실패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첫 환자가 발생했을 때 꽁꽁 에워싸 그물망에 넣었다면 모든 사태가 거기서 끝났을 거다. 그걸 못 해서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영국 의학전문지 ‘랜싯(Lancet)’ 온라인판 6월 3일자에 실린 ‘메르스’라는 제목의 논문에 따르면 미국,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북미와 유럽권 국가에서도 메르스가 발생했지만 환자 수는 1~4명에 그쳤다. 설 교수는 “메르스는 세상에 알려진 지 3년밖에 안 됐고, 관련 연구도 사우디아라비아 쪽에 집중돼 있다. 우리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기후, 환경이 크게 다른 만큼 같은 바이러스라도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는데 정부가 그에 대한 준비 없이 ‘전파력이 높지 않으니 문제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안이하게 대응한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전병율 교수도 보건당국의 비전문적인 대응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질병관리본부가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이다 보니 인력 운용에 일관성이 없다. 일 좀 잘하는 직원은 전부 보건복지부가 뽑아가는 식”이라며 “우리나라가 2003년 사스와 2009년 신종플루 때 대응을 잘했다는 평을 받는데, 계속 사람이 바뀌니 그때 노하우가 전수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또 그는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현장에 출동해 상황을 파악하고 원인을 밝히는 역학조사관을 공중보건의가 맡고 있는 것도 큰 문제”라며 “식중독이나 이질처럼 우리가 정보를 충분히 갖고 있는 전염병의 경우는 신입 직원이라도 원인을 찾아낼 수 있겠지만, 메르스 같은 신종 외래 전염병에 대한 대응 역량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정예요원을 2년에 한 번씩 바꾸면 무슨 수사가 되겠나”라고 안타까워했다.

슈퍼 바이러스는 없다
“국가적 감염병 대응체계 세울 때”

안전전문가인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한국방재안전학회 상임고문)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질병 대응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조 명예교수는 “현대사회에서 전염병은 국가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지난해 세월호 사고 이후 대대적으로 만든 국민안전처가 바로 이런 때 제구실을 해야 하는데, 정부 내 한 부처, 그 안에서도 특정 본부에 모든 걸 맡겨놓고 수수방관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질병관리본부를 보건복지부에서 분리해 국민안전처에 두고 국무총리가 직접 관할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외에도 많은 전문가가 질병관리본부의 독립과 전문기관화를 주장한다.

설대우 교수도 “세계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바이러스 유행이 더욱 잦아질 것으로 내다본다. 이번 메르스 사태가 진정된다 해도 제2, 제3의 바이러스가 언제든 확산할 수 있다”며 “전문가 중심으로 국가적 감염병 대응 태세를 갖춰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번 기회에 보호자와 간병인 등이 환자를 간호하는 우리나라 병원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입원실 안에 환자와 보호자, 간병인, 문병객 등이 뒤섞여 있는 환경이 메르스 확산의 한 원인이 됐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안형식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함께 전국 26개 의료기관(환자 36만2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보호자와 간병인이 상주하는 병동의 병원 내 감염 위험은 간호사가 간병 업무를 전담하는 병원에 비해 2.87배, 폐렴 위험은 6.75배 높았다. 이에 대해 안 교수는 “전국 모든 병원에서 간호사가 간병 업무를 담당하게 하는 포괄간호제를 도입하는 데는 예산이 3조 원 정도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건강보험예산의 6~7% 수준”이라며 “현재는 간호사 수 부족 등 현실적인 한계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포괄간호제를 확대하는 게 병원 내 감염을 줄이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2015.06.15 992호 (p18~19)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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