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0

2015.06.01

영화처럼 떠난 천재 수학자

게임이론 선구자 내시 박사의 불꽃같은 삶

  • 이승헌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ddr@donga.com

    입력2015-06-01 11:2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그야말로 영화 같은 인생이었다. 정신분열증(조현병)을 극복하고 게임이론으로 20세기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천재 수학자 존 내시 박사가 5월 23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향년 87세.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작 ‘뷰티풀 마인드’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내시 박사는 20대 후반부터 30년간 정신분열증에 시달렸지만 이를 지성의 힘으로 극복하며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거머쥔 인물. 이날 사고도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부르는 아벨상을 받으러 노르웨이에 다녀온 뒤 미국 뉴저지 주 뉴어크 국제공항에서 귀가하던 중 타고 가던 택시가 가드레일을 들이받아 발생해 안타까움을 더한다.

    내시 박사는 22세 때인 1950년 ‘비협력 게임’이라는 27쪽짜리 논문으로 명문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며 인생의 정점으로 치닫는 듯했다. ‘내시 균형’이라고도 부르는 그의 게임이론은 개인 간 관계에서 상대방의 대응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하는 과정을 반복하면 어떤 시점에 균형이 형성된다는 것으로, 매사추세츠공과대(MIT)로부터 교수직을 제안받을 정도로 독보적인 성과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소련과 냉전을 치르던 미 정부는 그에게 신문과 잡지에 숨겨진 소련의 암호를 풀어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수락한 그는 소련 스파이가 자신을 미행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투병 생활을 이어갔다. 이날 사고로 함께 숨진 평생의 반려자 얼리샤 내시도 간병에 지쳐 그의 곁을 떠났다 2001년 다시 돌아왔다.

    내시 박사는 정신분열증을 극복한 뒤 언론 인터뷰에서 오로지 이성과 수학의 힘으로 고통의 나날을 떨쳐낼 수 있었다고 회고하곤 했다. 그는 최근 미국 공영방송 PBS와 인터뷰에서 “어떤 숫자를 집중적으로 보다 보니 나중엔 하늘에서 숫자를 통해 어떤 계시를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때론 자신이 ‘남극의 제왕’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혔으며, 어느 날엔 자신이 일본 중세시대 봉건 영주가 아니었을까 하는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이런 병력 때문에 수학계에서는 그가 남긴 천재적인 성과에도 ‘내시 박사는 이미 죽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내시 박사 본인도 “나도 내가 죽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성의 힘으로 환각 이겨내



    내시 박사가 정신분열증과의 싸움에서 결국 이긴 데는 한때 자신의 제자였던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가 컸다. 그는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기 전 인터뷰에서 “아내의 도움으로 지성의 힘이 서서히 환각을 거부했고 다시 내 안의 이성을 작동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사망 소식에 미 현지 언론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이론의 창시자이자 인간 승리의 상징이 우리 곁을 떠났다’고 애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내시의 게임이론은 경제학, 국제정치학, 심지어 생물학 등 모든 유형의 갈등이 존재하는 곳에서 적용 가능한 이론’이라고 평가했다. 관련 기사에는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루게릭병이라는 육체적 한계를 극복했다면 내시는 정신분열증이라는 정신적 한계를 이성으로 극복한 인물’이라는 등의 댓글이 잇따랐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내시 역을 맡았던 배우 러셀 크로는 5월 24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트위터에서 ‘존과 얼리샤는 경이적인 파트너십을 보여줬다’고 애도했다. 아내 얼리샤 역을 맡았던 배우 제니퍼 코널리는 성명을 내고 ‘두 사람은 나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