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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영국 보수·노동 양당제 역사 속으로?

5월 7일 총선 초박빙 접전 예상…커지는 군소정당 입김, 연정 시대 불가피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영국 보수·노동 양당제 역사 속으로?

영국 정치의 오랜 전통인 양당제(two party system)가 5월 7일 실시되는 총선을 계기로 사라질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 영국은 유럽 대륙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보수당이나 노동당이 총선 때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해 단독으로 집권해왔다. 영국 정치사에서 20세기 이후 지금까지 보수당이나 노동당이 단독으로 정권을 차지하지 못한 것은 1929년, 1974년, 2010년 3차례밖에 없었다.

영국에서는 총선 결과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없는 상황을 ‘헝 의회(Hung Parliament)’라 부른다.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의회’라는 뜻의 이 말은 어감만으로도 불안한 정치 구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로지 영국에서만 통용된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유럽 국가는 대부분 총선에서 승리한 정당이 제3당들과 연대를 통해 연정을 구성하지만, 영국에서는 연정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다.

그러나 앞으로는 얘기가 달라질 듯하다. 영국 정치사에서도 헝 의회 대신 연정(coalition)이라는 정치용어가 정착될 개연성이 높아진 것이다. 영국 언론은 이번 총선에서 보수당이나 노동당 모두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할 것으로 내다보며 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여론조사를 보면 보수당과 노동당은 박빙의 접전을 벌이고 있다. 두 정당의 지지도가 여론조사마다 33~34%에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언론들은 이번 총선을 두고 역사상 가장 근소한 차이의 승부가 될 것으로 예측한다.

왕실 후손과 좌파 지식인

이번 총선의 최대 이슈는 경제다. 보수당을 이끄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지난해 2.6%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가시적 성과를 거뒀다는 사실을 앞세우고 있다. 특히 캐머런 총리는 긴축을 통한 재정적자 축소와 함께 100만 파운드(약 16억 원) 이하를 물려줄 때 상속세를 없애는 방안, 소득세 최고세율 적용 기준을 높여 중산층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공약 등 감세 정책을 제시했다. 반면 5년 만에 정권 탈환에 나선 노동당의 에드 밀리밴드 당수는 15만 파운드(약 2억4000만 원) 이상 소득자에 대한 최고 50% 세율 재도입, 200만 파운드 이상 주택에 ‘맨션세’ 부과, 외국인 부호에 대한 면세혜택 중단 같은 상반되는 공약을 내놓았다.



두 당은 복지 문제에서도 정반대 정책을 내놓고 있다. 보수당은 근로연령 실직자에 대해 2년간 실업수당 등 복지혜택을 대폭 삭감하고, 이주민에 대해서는 4년간 사회복지 혜택을 중단하며, 실직한 이주민에 대해서는 2년간 실직수당을 중단하는 등 강도 높은 복지 긴축 정책을 내놓았다. 노동당은 영국 특유의 의료복지제도인 국민건강보험(NHS) 재정을 25억 파운드 증액하고, 의사와 간호사의 고용을 확대하며, 시간당 최저임금을 8파운드로 인상하는 등 복지 확대 정책으로 맞서고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여부도 첨예한 쟁점이다. 보수당은 이번 총선에서 승리하면 영국이 EU 회원국으로 남을 것인지 여부를 2017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반면 노동당은 국민투표 약속이 영국의 위상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며 EU 잔류를 지지하고 있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캐머런과 밀리밴드의 캐릭터도 상반된다. 2010년 43세 나이로 역대 최연소 총리가 된 캐머런은 부유한 주식 중개인의 아들로 태어나 이튼스쿨과 옥스퍼드대를 거친 전형적인 엘리트다. 영국 국왕 윌리엄 4세의 직계 후손이기도 한 그는 이번 선거운동 기간 핫도그를 먹으면서 포크와 칼을 사용해 지나치게 귀족적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반면 밀리밴드는 옥스퍼드대를 거쳐 런던정경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정통 좌파 지식인 출신. 부친은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영국에 이민 온 폴란드계 유대인 랄프 밀리밴드 전 런던정경대 교수로, 1960년대 유럽을 대표하는 마르크스 이론의 대가이자 영국 좌파운동을 이끈 인물이다. 어머니 마리온 코자크도 열성적인 좌파 운동가로 유명한 데다, 형 데이비드 밀리밴드는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 외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두 형제는 2010년 9월 노동당 당수직을 놓고 벌인 경선에서 4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을 벌여 동생이 형을 꺾었다. 올해 46세인 동생 밀리밴드는 형의 ‘제3의 길’ 노선을 반대하고 철저한 진보 노선을 강조해왔다.

“지각변동 시작됐다”

두 정당의 집권 여부는 연정을 어떻게 성사시키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추세로 볼 때 양당은 하원 전체 650개 의석 중 각각 270석 안팎을 차지하는 데 그쳐 과반 의석(326석)을 확보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대 정당 외에 우파 쪽에서는 극우 성향의 영국독립당(UKIP), 좌파 쪽에서는 스코틀랜드독립당(SNP)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보수당과 노동당이 각각 어느 당과 손을 잡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영국독립당은 반(反)이민·반EU의 기치를 내건 극우 정당이다. 1993년 창당된 이 정당은 지난해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영국 정당 가운데 1위를 차지하며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지지율 3위를 기록하고 있는 영국독립당이 이번 총선에서 의석을 얼마나 차지하느냐가 연정의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나이절 패라지 당수는 보수당 소속으로 정치에 입문했지만, 92년 EU 출범의 기초가 되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영국이 가입하자 보수당을 탈당하고 영국독립당 창립 멤버가 됐다. 2006년부터 당을 이끌어온 패라지 당수는 “영국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시작됐다”며 “총선 후 영국독립당이 의회 세력의 균형을 이루는 중추 세력이 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그간 보수당은 극단적 성향의 영국독립당과 그다지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 연정 성사가 쉽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보수당 처지에서는 2010년 연정을 구성했던 중도 성향의 자유민주당과 손잡는 그림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자유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약세를 보인다는 게 문제다.

반면 노동당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스코틀랜드를 주요 정치 기반으로 삼고 있는 지역 정당 스코틀랜드독립당이 노동당과 손을 잡을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독립당은 지난해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묻는 국민투표가 부결됐음에도 이 지역에서 높은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정당은 스코틀랜드 자치권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노동당과의 연정을 선호한다. 영국 언론들도 노동당이 스코틀랜드독립당, 녹색당과 연대를 통해 연정을 구성할 개연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양당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과 함께, 누가 정권을 차지하든 군소정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새로운 정치가 시작되는 셈이다.



주간동아 2015.05.04 986호 (p66~67)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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