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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화의 밥꽃, 목숨꽃 사랑 ⑤

볼품없지만 사랑스러운 꽃

야성 그대로의 뽕나무꽃

  • 김광화 농부작가 flowingsky@hanmail.net

볼품없지만 사랑스러운 꽃

볼품없지만 사랑스러운 꽃
첫인상이 좋았다면 그 뒤에도 관계가 잘 풀리기 십상이다. 사람 사이 관계도 그렇지만 자연과 만남에서도 그런 것 같다. 그것도 어린 시절부터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면 더 말해 무엇하랴!

내게는 바로 뽕나무가 그런 보기라 하겠다. 어린 시절 맛본, 검은빛이 좔좔 흐르는 오디. 초등학생 시절 귀갓길에 실컷 따 먹고, 이따금 빈 도시락에 가득 담아와 어머니에게 드렸던 열매. 처음에는 풀빛으로 있는 듯 없는 듯하다 점차 손가락 마디만큼 굵어지면서 붉은빛이 돈다. 하지만 이때는 덜 익어 새콤하다. 검은빛으로 바뀌어야 다 익은 거다. 입안에 착 달라붙는 달짝지근한 과일. 여름 무더위를 이겨내게 해준다.

동심 자극하는 놀이터

오디가 달린 뽕나무는 아이들한테는 놀이터가 되곤 한다. 나무를 오르는 짜릿함, 한 손으로 가지를 잡고 또 한 손으로 열매를 따는 긴장감, 먹는 즐거움. 다 먹고 나중에 손바닥과 입을 보면 짙은 보랏빛으로 물든 모습에 깔깔대며 웃게 해주던 나무다.

또한 우리네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나무기도 하다. 내 고향 경북 상주는 양잠으로 유명했다. 마을 어머니들은 너나없이 5월이면 누에를 치기 시작했다. 아무리 바빠도 뽕잎을 따서 밤낮으로 누에를 길렀다. 누에가 지은 집인 누에고치는 그 당시 시골에서 만져보기 쉽지 않은 돈을 벌게 해주었다.



산골에 살면서 새롭게 알게 된 건 뽕순나물이다. 5월로 접어들면 들나물은 대부분 쇤다. 냉이는 꽃이 피고, 쑥은 쓴맛이 강하게 돈다. 그 대신 산나물이 우후죽순 돋아난다. 고사리, 두릅, 음나무순(개두릅), 가죽나무순…. 여느 산나물과 달리 뽕순은 굳이 산을 오르지 않아도 둘레에서 쉽게 얻을 수 있다. 제철에 먹을 만큼 먹고는 데쳐서 말렸다 겨울에 묵나물로 먹는다.

뽕나무 쓰임새는 계속 이어진다. 뿌리껍질은 약재로 쓰인다. 상근백피(桑根白皮)라고 하는데, 한의학에 따르면 ‘오줌을 잘 누게 하고 담을 삭이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앞뒤가 이렇다 보니 뽕나무와 관련한 기능성 식품이 많이 나온다. 뽕나뭇가지는 종이를 만들 수 있고, 줄기껍질은 염료로 쓰며, 껍질을 벗긴 하얀 줄기로 채반을 만들 수 있다.

가을 서리 맞은 뽕잎은 우려서 차로 마신다. 또 뽕나무는 잘 자라 겨울철 땔감으로도 요긴하다. 이처럼 사시사철, 뿌리부터 잎까지 버릴 게 하나도 없는 나무다.

볼품없지만 사랑스러운 꽃
거칠 게 없는 생명력

볼품없지만 사랑스러운 꽃

여름 더위를 이기게 해주는 오디 한 그릇.

사람한테 이렇게 쓰임새가 많다는 건 그만큼 생명력이 강하다는 건지도 모르겠다. 뽕나무는 굳이 여느 과일나무처럼 정성 들여 심고 가꾸지 않아도 된다. 둘레에 있는 으름덩굴, 칡, 찔레나무와 경쟁에서도 당당히 살아남는다. 뽕나무는 번식에서도 야성을 잘 보여준다. 보통은 사람이 접을 붙여 전문적으로 묘목을 생산하지만 자연 상태에서는 씨앗으로 번진다. 새들은 오디를 먹고 씨앗은 똥으로 내보낸다. 이 씨앗이 환경이 맞으면 싹이 터 자란다. 하여 이 산 저 산, 이 들 저 들에 뽕나무가 저절로 자란다.

뽕나무는 밑동을 잘라내면 이듬해 그 둘레에 더 많은 새 가지가 우르르 자란다. 생장점까지 자르거나 뿌리째 캐내지 않는 한 쉽게 죽지 않는다. 이렇게 생명력이 강하고 사람한테 쓰임새가 많으니 뽕나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정작 그 꽃을 보기는 쉽지 않다. 설령 보더라도 밋밋해 별다르게 매력이 없다. 뽕나무와 비슷하게 피기 시작하는 으름덩굴꽃은 꽃도 예쁘지만 향이 멀리 퍼진다. 하지만 나는 오디와 첫인상을 좋게 맺었으니 볼품없는 꽃마저 사랑스러울밖에. 수꽃은 이게 꽃인가 하고 봐야 할 정도로 밋밋하다. 겉모양은 오디처럼 생겼지만 연둣빛이라 그 많은 봄빛에 가려 그냥 스쳐 지나기 쉽다. 암꽃은 수꽃보다 더하다. 이건 누가 알려줘도 쉽지 않다. 푸른 오디 표면에 하얀 실 같은 게 조금 돋아나 있는데 이게 바로 암술이다.

뽕나무는 꽃도 가지가지 피운다. 암꽃만 피는 암나무가 있고 수꽃만 피는 수나무가 있지만, 한 나무에서 암꽃과 수꽃이 같이 피는 암수한그루도 있다. 이렇게 뽕나무를 알다 보면 참 거칠 게 없는, 야성 그 자체의 나무구나 싶다.

내가 모르는 뽕나무 성질과 쓰임새는 얼마나 더 있을까. 겉보기와 달리, 알면 알수록 더 무궁무진한 세계를 보여준다. 생명의 경이로움을 일깨워주는 뽕나무야, 정말 고맙다. 내가 너희 곁에 함께 사는 동안 이 마음은 쉽게 바뀌지 않으리.

뽕나무 : 뽕나뭇과 뽕나무속, 잎이 지는 큰키나무로 원산지는 중국과 지중해 연안.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가꿔왔으며, 전국 어디서나 자란다. 쓰임새가 많다. 잎, 열매, 줄기, 줄기껍질, 뿌리껍질을 고루 이용함은 물론 상황버섯 같은 기생식물도 얻을 수 있다. 꽃은 녹황색으로 5월에 잎과 같이 핀다. 꽃잎과 꽃받침이 또렷이 구별되지 않는 화피 조각으로 돼 있다. 암술대는 거의 없고, 암술머리는 2개다. 수꽃은 마치 오디처럼 생겼지만 수정하고 나면 떨어져 없어진다. 암꽃은 이삭꽃차례고, 수꽃은 꼬리꽃차례. 열매인 오디는 6월 무렵 검은빛으로 익는다. 오디는 다화과(多花果·겹열매)로, 여러 꽃으로 된 많은 열매가 모여 한 개처럼 보인다.



주간동아 2015.05.04 986호 (p68~69)

김광화 농부작가 flowingsk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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